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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6/17 17:03:22
Name 날개달린질럿
Subject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 시 한편이 가슴을 때릴때...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군요.

여전히 1년 7개월 남은 군생활에 때론 좌절, 때론 그나마 돈주는게 어디냐고 자위하기를...

하루에 수십번씩 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역 공군 중위 입니다.

재미있는일이라곤 퇴근하고 챙겨보는 각종 스타리그/프로리그와...

주말에 서울가서 친구들과 기울이는 술한잔....간혹 들어오는 소개팅(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 맞선에 가깝군요)에 나가서 닿지 않을 인연이라도 하룻저녁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근엔 월드컵이라는 또하나의 즐거운 축제가 있어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이러저래 각종 업무로 바쁘던 요즘, 오랜만의 여유로운 주말 서울도 안가고 숙소에

짱박혀서 웹서핑이나 즐기던 중에... 우연히 검색의 검색을 걸쳐 다시 마주하게된

귀여니의 시집 관련 소식(물론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그 논의를

다시꺼내기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에 누군가가 달아놓은 리플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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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6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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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눈물이 핑도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냥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축제가 벌어지는 지금 우리나라의 힘들었던 시절

뭐 그런것에 대한 아련한 아픔일수도 있고, 마치 사회에서 떨어져나와 어쩔수 없이

온 군대생활속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외로움에 투영되는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오래된 시(?)는 '가시리'

이고 현대시라 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서정주님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이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와서 알고는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어서 다시보는

저 시는 정말 느낌이 다르거든요. 다른 피쥐알러 분들은 가끔 예전에 읽었던, 아니

정확하게는 그냥 "알고있었던" 시가 다시 읽혀지고 가슴을 때리는 일이 가끔 있는지..

어떤시가 그런지...괜시리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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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Killer
06/06/17 17:39
수정 아이콘
<감당할 만한 거리>

멀리서 보는 단풍은 아름답다.
욕심을 부려 가까이 다가가
잎잎을 보면
상하고 찢긴 모습을
만날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단풍든 잎잎의 상하고 찢긴 모습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는 일에
겁을 낸다.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감당할 만한 거리에 서 있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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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가슴을 때립니다.
예전에 인터넷강의로 들었선 시수업의 박상천교수님(시인) 시입니다.
이 외에 천양희 시인의 <비> 였던가... 소나타와 롯데가 나오는 시입니다. 궁금하신분 찾아보시길~~
구김이
06/06/17 19:42
수정 아이콘
<귀천>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오늘 날개달린질럿님 덕분에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나서 찾아보고 읽게 됐네요. 고맙습니다.^^
06/06/18 00:18
수정 아이콘
[반성100] - 김영승

연탄 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뭐.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 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 대단한 시입니다. 평범의 극에 달한 일상어로 이 정도의 감성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요. 언젠가 신문에서 본 순간 반해 버린 시지요.
Heart of Winter
06/06/18 00:48
수정 아이콘
글곰님/ 저도 김영승 시인의 '반성' 이 시집 굉장히 좋아합니다.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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