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3/01/18 22:10:09
Name par333k
Subject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2

정식 밴드부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연습에 매번 얼굴을 비칠 수는 없었다. 가끔 놀러갔을 때에는 오늘은 남자곡 연습인데? 하는 베이스의 옅은 비웃음만이 있는데, 그도 그럴것이 양 손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가득 사가고는 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잘 모르던 남자보컬은 베이스가 꾸며낸 '삼각관계'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기타를 치던 녀석은 사뭇 굳은 표정을 하고서는 억지로 웃으며 '너 걔한테 관심있었냐?'라고 물었다. 제딴에는 넌지시 묻는다고 던진 이야기지만 그 애의 표정이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하는 표정이었기에, 손사래를 치며 '미쳤냐~'고 둘러대었다. 베이스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 대며 계속 웃었고, 나는 그 친구의 귀에 마이크를 대고 '그만 쳐웃어!'라고 소리질러 주었다. 귀를 부여잡고 데굴대는 놈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렇게 학기가 지나고 방학을 맞이할 때 까지 그 아이와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때때로 음악실이나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그 아이의 그림자를 쫒아 두리번 대었지만 단 한번도 스치지조차 못하였다. 조금씩 그 아이가 희미해져 갈 무렵, 드럼을 치던 친구가 낙원상가에 같이 좀 가줄 수 있냐고 하였다. 자기 스틱도 새로 사고, 그 여자아이가 레코딩용 마이크를 사고 싶어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일종의 연습용 서브 보컬이기도 해서, 홈 레코딩이나 마이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었는데 드럼인 친구가 ' 단 둘이 가는건 영 어색하다'며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원래는 정식 보컬인 친구와 함께 가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싫다'고 퇴짜를 맞았다나.





여름은 좋은 계절이다. 옷이 얇다. 스니커에 청바지, 반팔을 입고 간 자리에 하늘하늘한 얇은 원피스 한장을 입은 그 아이가 나왔다. 해가 아직 뜨거워지기 전인 오전 열시였는데, 우리는 어색한 인사 이후에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어 서로 핸드폰만 만지작 대고 있었다. 드럼친구가 왜 안오지 안오지 하며 오분쯤 지나자, '스틱은 인터넷이 더 싸네 둘이 갔다와라'  라는 문자 한 통이 띠링, 하고 날아왔다. 그야말로 드럼스틱으로 치라는 드럼은 안치고 내 뒤통수를 친 것이다. '한여름에 흘리는 식은땀'을 처음으로 느끼면서,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후배를 쳐다봤다. 그 후배는 약간 더운 날씨에 뾰루퉁해져 있었는데 그게 또 한 귀여움했다. 한 십여초를 머리속에서 긴장하지 말자고 중얼대면서, '드..드럼치는 친구가 혹시 문자했니? 오늘 못 온다고 나한테 그러는데 어..어떡할래?' 라고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한심하게도, 첫 마디의 목소리가 떨린걸 분명히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 진짜요? 아 대박..뭐야..."

그 친구는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드럼을 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듯 했다. 그러나 금세, '전원이 꺼졌대요..대박..'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정말 셋이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마치 상황이 '꾸며낸 듯이' 보여서 등줄기의 식은땀만 두배로 늘었다. 남중, 남고를 다니는 내게 이 시련은 중1때 디아블로 2를 하며 12레벨로 노멀 안다리엘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에 충분한, 그런 어려움이었다.



"그럼 다음에 갈까?"



어렵사리 꺼낸 말에, 후배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그냥 둘이 가요. 다음에는 시간이 안맞을 수도 있고.. 마이크도 빨리 사고싶구..' 라고 말하였다. 오 신이시여. 나는 기쁨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그 아이와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그 당시 내 핸드폰은 아이스크림폰이었는데, 나는 네이트 버튼을 누르고 '여자애와 대화하는 법'을 검색하고 있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게 나올리가 없었다. 우리는 '날씨가 참 덥다 그지?' 같은 말을 하며 낙원상가로의 길을 재촉했다. 차라리 백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게 편할 거야. 라고 생각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하철이 텅텅 비어있길래 그 아이보고 앉으라고 하고 난 서서가려고 했더니, 뭐해요? 옆에 앉으세요. 라고 묻는말에 차마 '아냐 서있을께'라고 말을 할 수 없어서 '어..어 그래 응'하고는 앉았다. 다행히 정면을 보는 것 보다 훨씬 나았는데, 낙원상가가 있는 인사동까지는 지하철로 한 30분을 가야했어서 이대로 말 없이 계속 있을수는 없었다. 나는 넌지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고, 다행히 이건 정답이었다. 우리는 10분만에 자우림과 윤도현밴드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보면 자꾸 약간 파인 원피스의 가슴부분이 눈에 들어와 3초를 채 마주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면야 그게 파였다고 보기도 민망했을텐데, 그때는 그 애가 가진 '살색'자체가 너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음악얘기에 신이 난 덕에 내릴 때 쯤이 되서는 다행히 그 아이와 꽤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 날 나는 윤도현 밴드 앨범을 꼭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감사합니다 YB 롹앤롤 예! 라고, 혼자 머리속으로 감사함을 외쳤다. 여자아이의 툭툭 부딪히는 팔이 그렇게 야들거리는 거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낙원상가에서 간단히 마이크와 컴퓨터 선을 골라주었는데, 그 아이는 계속 이것 저것 물어보며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물어보았다. 나도 원래는 보컬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 라고 하자, '그럼 왜 같이 안하세요?'라고 물었다. 당시 밴드 메인보컬인 친구는 나와 초중을 같이 나왔는데, 그 애가 노래를 잘 한다는걸 고 1때 알고는 지기 싫어서 노래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 밴드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런걸 구구절절이 이야기 하자니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난 노래를 진짜 못해. 좋아하기만 하지' 하고 웃어넘겼다.








돌아가는 길에는 집에서 레코딩 할때의 이야기나 쿨 에디트 같은 레코딩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고, MR같은건 어디서 구하냐는 등의 이야기도 했다. 헤어지기 직전에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하고 MR같은것도 보내줄 수 있게 연락처를 교환하자' 라고 최대한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고. 그 후배는 아침과는 다르게 굉장히 살가운 느낌으로 흔쾌히 번호를 주었다. 지하철에 내려서 그 아이 아파트 단지앞까지 데려다 준 뒤, 헤죽헤죽 웃음이 비져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집까지 한달음에 뛰어왔다. 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만큼, 설레임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을 열자,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마이크 연결은 했는데 인식을 못해요. 어떻게 하면 되요?'


...........그 애의 집에 갈 일이 생긴 것 같았다.



-3부에 계속됩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03 11:11)
* 관리사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3/01/18 22:11
수정 아이콘
라면!
13/01/18 22:16
수정 아이콘
라면먹고갈래요?
13/01/18 22:19
수정 아이콘
흐흐....
Paranoid Android
13/01/18 22:26
수정 아이콘
라..라면을..먹을거야분명
때마침 배터리충전도 ..크크
13/01/18 22:30
수정 아이콘
라면을 먹으면 소라게넷에 올려야함................
13/01/18 22:33
수정 아이콘
제가 중학교때 사귄 여자친구는 고등학교때 가수 데뷔를 했었죠...
13/01/18 22:38
수정 아이콘
라, 라면은 언제인가요.
Star Seeker
13/01/18 22:38
수정 아이콘
밴드부 서브보컬보단 문학창작부같은데 가셨어야 했어~~으아아아아
Aquarius
13/01/18 22:44
수정 아이콘
오~ +_+ 흥미진진합니다!! ^^
가만히 손을 잡으
13/01/18 22:51
수정 아이콘
오~올, 좋네요.
13/01/18 22:56
수정 아이콘
와...좋네요 추천
13/01/18 23:01
수정 아이콘
곱창순대
13/01/18 23:07
수정 아이콘
라면 값, 하고 싶어요.
저글링아빠
13/01/18 23:44
수정 아이콘
문장이 좋아서 빨려들어가네요~

배고프네요. 라면이 어딨더라....
트릴비
13/01/18 23:48
수정 아이콘
칼같은 연재 분량 하아
Tristana
13/01/18 23:49
수정 아이콘
왜 여기서 끊는거죠
왜죠?
jjohny=Kuma
13/01/18 23:53
수정 아이콘
왜 벌써 끊었서요
더 붙여 써주세요
13/01/19 00:31
수정 아이콘
왜 여기서 끊긴거죠?

왜죠?
착해보여
13/01/19 00:31
수정 아이콘
빨리 3부 보여주세요!!!
13/01/19 00:41
수정 아이콘
학교 2013 작가 보고있나?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760 피의 적삼 - 완 [8] 눈시BBbr10210 13/01/25 10210
1759 피의 적삼 - 3 [11] 눈시BBbr9277 13/01/23 9277
1758 피의 적삼 - 2 [14] 눈시BBbr8483 13/01/23 8483
1757 피의 적삼 - 1 [10] 눈시BBbr9426 13/01/20 9426
1756 [LOL] 솔랭에서 애쉬로 살아남기 [26] 미됸13249 13/01/25 13249
1755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 Fin [48] par333k10291 13/01/20 10291
1754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5 [17] par333k8713 13/01/20 8713
1753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4 [18] par333k9599 13/01/19 9599
1752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3 [18] par333k9600 13/01/19 9600
1751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2 [20] par333k9660 13/01/18 9660
1750 여고생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주었지.-1 [11] par333k10730 13/01/18 10730
1749 [기타] 의식의 틈새 [24] The xian10327 13/01/15 10327
1748 [야구] 역대 최고의 제구력, 팀을 위해 불사르다. 이상군 [12] 민머리요정11696 13/01/14 11696
1747 추억의 90년대 트렌디 드라마들 [98] Eternity40106 13/01/12 40106
1746 [기타] 길드워2 리뷰 [19] 저퀴11657 13/01/14 11657
1745 [스포유,스압]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는가? [17] Alan_Baxter10924 13/01/11 10924
1744 월드오브탱크 초보자의 간단한 소감. [43] 구구구구구13484 13/01/08 13484
1743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 [55] 절름발이이리21034 13/01/09 21034
1742 [스타2] 자유의 날개 캠페인 공략 (2. 대피, 악마의 놀이터) [10] 이슬먹고살죠11366 13/01/08 11366
1741 [스타2] 자유의 날개 캠페인 공략 (1. 마 사라 임무) [25] 이슬먹고살죠12418 13/01/06 12418
1740 컴퓨터 부품 선택 가이드 [72] Pray4u16274 13/01/06 16274
1739 [스타2] 자유의 날개 캠페인 최후의 임무 공략 [11] 이슬먹고살죠10544 13/01/06 10544
1738 우리 아파트 물리학 고수님 [34] PoeticWolf12282 13/01/02 1228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