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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8 17:24
메이저리그에서 저정도 성적 찍어줄 한국투수 다시 보려면 얼마나 걸릴지..류현진에게서 희망을 봤는데 지난 2시즌을 쌩으로 날렸으니 말이죠
16/11/18 17:25
기록이 정말 엄청나군요. 저는 박찬호 선수 활동할때 어려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박지성 선수 맨유에서 뛸 때 처럼 모든 남자들이 중계 보고 그랬나요?
16/11/18 17:29
박찬호 토요일 오전 경기 잡히는 날엔 학교서 강제 단채관람 했던 기억이 납니다.
IMF 시기에 박찬호와 박세리가 국민들의 분위기 메이커였습니다. 사실 성적보다 그것 때문에 고마움을 더 느끼는게 있어요.
16/11/18 17:29
저도 그때 어렸긴 한데, 박찬호 인기는 엄청났죠... 박지성 맨유시절에는 수많은 2~30대들이 밤새워 해외중계를 찾아봤다면, 박찬호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4~50대 어르신들도 박찬호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스크림까지 나왔죠.. 찬호박이라고..
16/11/18 17:57
은행/법원/공공기관에서 경기 다 틀어줬습니다. 남녀노소 경기결과는 다들 알았을 정도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박찬호 경기보다 박지성 경기를 더 많이 봤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박찬호 경기 본 사람이 100배?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박지성 경기는 주로 새벽 4시 이런데, 박찬호 경기는 오전 11시 이랬거든요.
16/11/18 17:57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시청각 수업인가 뭔가의 일환으로 교실에 대형 TV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박찬호는 우리를 지배한 영웅이었습니다. 선님과 함께 땀을 쥐며 응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6/11/18 17:58
가장 인기있을때 고등학생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선생님부터 학생까지 모두다 라디오 이어폰 꼽고 수업 안했습니다 라디오 없는 사람을 위해 선생님이 칠판에 상황 요약해가면서 다 같이 그날 수업 날렸습니다...
16/11/18 18:01
저 당시는 지금처럼 24시간 방송하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밤에 12시 넘으면 방송 끝나고 애국가 나오고 새벽 5시인가 6시인가 애국가 나오고 IMF라고 방송 송출하는 전파도 아낀다고 오전 10시 이후부터 오후 4시까지는 또 방송 안하고 그러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박사장님 경기는 예외. 그리고 박세리선수 경기도 예외였죠. 박지성 선수는 여기에 붙이기가 힘들어요.
16/11/18 18:59
16/11/18 17:28
저때는 정말 순수한 야알못이라 저게 얼마나 잘한건지 체감이 안됐죠.
저 기록 그대로 크보에 엘지 투수가 저정도만 되도 감지덕지 입니다. ㅠㅠ
16/11/18 17:33
박찬호 대 선동열이 지금 생각하면 얼척없는 소리인데 저 때는 박찬호가 저런 성적 쉽게 찍으니까 다른 한국인도 저만큼 할 수 있는 건줄 알고 박찬호가 위라고 하면 욕먹고..
16/11/18 17:34
박찬호 FA 때 역대 최고액 갱신 예상도 나오고 무려 알렉스 로드리게스보다 더 높은 금액도 예상했었죠.
후반기 망하면서 5년 6500만불로 끝났지만
16/11/18 17:46
기록도 기록이지만 크게 체감 되는게, 2002년쯤인가 박찬호 연봉이 지단(당시 축구선수 연봉 세계1위)보다도 많았다는거죠. 뭐 당시 유럽축구리그가 지금과 자본규모 차이가 있긴하지만... 야구 잘 안보거나 해외축구 늦게보기시작한 친구/동생들한테 이 이야기 해주면 다들 놀라더라구요.
16/11/18 18:02
펌킨형님 더욱 놀라운것은 팔과 어깨 관련된 부상이 한번도 없다는거죠. 달리 95마일 이상을 찍어댄게 아닙니다.
어깨는 한국에서 다시나오기 힘든 어깨죠.
16/11/18 18:02
여러분, 최고의 선수을 영입했습니다. (였지만...) 다저스 막판 하반기때 통증을 참고 던졌다던데 그냥 부상자 명단으로 가서 쉬었으면 더 좋은 커리어를 찍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별개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불펜 투수로 불꽃투혼 보여준건 대단했어요.
16/11/18 19:05
그당시 다져스의 희망이였고 우리나라에선 영웅이였죠.
최훈작가 만화에도 나왔었는데 진짜 모든 국민적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선수생활했는데도 정말 메이저리그 정상급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시 구형 라디오되는 워크맨을 갖고 학교다녔는데 경기있는날은 최고의 인기 기기였습죠... 전 초 앞자리라 어차피 훼이크로 들을수 조차 없었던지라 안전권 좌석 친구들한테 빌려주곤 했습니다.
16/11/18 19:32
그때 스포츠 신문 1면은 대부분 박찬호였죠.
등판해서 승리한 날 : (대서특필)박찬호 11승 달성!! 등판해서 패배한 날 : (크게)9K, (작게)타선 침묵... 등판하기 전날 : (크게)박찬호 12승, (작게)오늘 출격 찬호형 그때가 그립네요.
16/11/18 19:37
박찬호가 5이닝 무실점으로 첫승할때, 상대투수가 그 유명한 케빈브라운이었습니다.
마지막승도 3이닝 무실점으로 마치셨죠. 다저스시절 한해 부진했는데, 부진하면서도 13승 올리셨습니다. 18승하던해엔 20승에 2점대 투수 나오는줄 알았습니다.
16/11/18 19:42
99년인데 이 때 ERA 5.25인가 찍어서 아시안게임 후유증이란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마침 그 해에 팀 벨처와의 발차기 사건도 일어났고...
16/11/18 19:55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에이스랑 정말 많이 붙었습니다.
케빈브라운은 물론이고 커브의 마술사 데릴카일, 톰글래빈, 존스몰츠, 하비어 바스케즈, 웨이드 밀러, 알 라이터 리반헤르난데스, 맷 클래멘트....마이크 햄튼...케리우드하고 릭 엔키엘이랑 붙은 경기도 유명하구요 저 선수들 박찬호 전성기때 같이 잘나가던 1-3선발급 투수들이었거든요. 저 선수들이랑 맞대결 해서 이겼죠 문제는 첫등판하는 신인투수들에게 패한적이 많다는거;;;;
16/11/18 20:49
뭐 그게 당연한게 신인때는 5선발이어서 그랬고, 이후엔 최소 2-3선발급이었으니 순번상 당연히 상대 에이스급들과 많이 만날 수 밖에 없었죠.
박찬호는 한 시즌 32경기 이상 선발등판할 정도로 로테이션도 잘 지켰구요.
16/11/18 20:02
상당수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마음의 빚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분이죠.
IMF로 힘든 시기에 함께 응원하고 웃을 수 있어 좋았네요. 박찬호 선수가 승리하는 날에는 괜히 힘이 솟고 그랬습니다.
16/11/18 20:42
아마 이제는 축구에서는 발롱도르, NBA에서는 MVP, 야구에서는 사이영이나 MVP 상 타는거 아니면 저때 박찬호 인기만큼 전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할거 같습니다..시대도 변했고.
16/11/18 20:53
iTV 라고 전설의 인천방송(현 경인방송)이 박찬호 선수 최초 중계채널이었죠. 당시에는 인터넷 중계도 없던 시절이라서 iTV 안나오는 지역들 항의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덕분에 지역방송이던 iTV가 거의 전국에 방송되었습니다.
16/11/18 22:14
그리고 공중파님들의 노여움을 사서 얼마 못가서...
박찬호+중국드라마 투톱에 스타랑 애니메이션까지 참 알찬 방송국이였는데 전국방송 막히고 엄청 아쉬웠던 기억이납니다 흐흐
16/11/18 22:24
제 기억에는 iTV 이전에 박찬호 피칭과 경기 하이라이트만 KBS에서 녹화 중계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디본 화이트가 뛰던 시절로 기억하니 아마 99년즈음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2000년 iTV가 MLB 중계를 했는데 박찬호 최고의 전성기가 시작된...
16/11/18 23:01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997년에 KBS에서 유수호, 하일성 조합으로 처음으로 박찬호 중계를 했고, 98년에 itv가 중계권을 사서 정지원, 송재우 조합으로 2000년까지 중계했습니다.
2000년에 박찬호가 커리어하이를 찍자 mbc가 4년간 4800만 달러였나(당시 imf여파로 환율 올랐다 떨어진게 거의 1달러당 1400~1500원 수준인가 그런걸로..) 오버페이로 독점계약하고 지상파, 케이블 돌려가면서 방송했고, 이에 kbs가 빡쳐서 프로야구 중계권 독점하고 mbc는 그 기간 동안 프로야구 중계 하지도 못했죠. MBC도 처음에는 박찬호도 그럭저럭 잘해주는 와중에 김병현이 갑툭튀하더니 엄청난 활약을 해버려서 좋았나 싶었지만 03~04시즌 한국 선수들 처참하게 망해버리는 바람에 그 후 중계는 xports로 넘어가게 되죠. 그 기간 한국야구도 암흑기라 kbs도 망.. 결국 루즈-루즈게임으로 마무리..
16/11/18 21:26
재수학원에서 그가 홈런치는거 듣고 소리지르다가 앞에있는 초미인 여자애가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고 미래가 소중하지 않냐고 정색빨던 기억이 새록새록...
16/11/18 22:49
저도 당시 재수생이었는데, 박찬호 선수 등판하는 날은 항상 수업시간에 라디오를 몰래 들었었죠. 당시에는 케이블티비도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었던지라 공중파에서도 꼬박꼬박 중계를 해줬었죠. 메이저리그 하나도 모르는 고 하일성 해설의원이 그냥 감으로 "야구 몰라요" 이러면서 해설하고 흐흐
16/11/19 00:01
5일에 한번씩 중계하는 날 남자선생님 수업이면 오전에 무조건 야구봤죠
이때 한창 나오던 CF가 조여정의 송월타월(?)이던게 기억나네요.
16/11/19 09:32
선구자죠; 그 시절 참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셨지요; 그 때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안이 등판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죠...게다가 1/2선발급으로 케빈브라운과 어깨를 살짝 나란히 하기도 했으니 정말 후덜덜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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