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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30 15:50:34
Name   Tigris
Subject   유랑담 약록 #07 / 120608金 _ 아오모리의 신석기 유적
















 새벽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어두운 객실에서 혼자였다. 반대쪽 구석에 몸을 뉘었던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코골이를 견디다못해 ‘빌어먹을 놈’ 하고 투덜거리며 나가버리거나 했을 것이다. 배를 긁으며 갑판에 나가보았다. 수면부족의 육신이 갑판을 따라 비틀거렸다. 아사카제 5호는 검은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나아갔다. 나는 갑판 난간에 기대어, 찢겨나가는 물살의 포말에 사진기를 겨누었다. '물거품'이라는 단어를 소리내어 말할 때의 무력감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셔터를 열었지만, DSLR의 액정화면에는 그저 허연 물보라만 기계적으로 담겼다. 나는 사진을 지우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잿빛 하늘 저편에 조그맣게 혼슈가 보였다. 5시 30분이었다.

















《A》



 배는 곧 부두에 닿았고, 나는 화물용의 배 아가리를 통해 하선했다. 흐린 새벽의 아오모리항 페리터미널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부두에 잠시 발을 내려 닿아보았다. 혼슈였다. 길 막힌 반도이자 시대가 만든 섬에서 온 나에게, 배로 땅을 넘나드는 감각은 여전히 낯설었다. 지은지 얼마 안된 듯 멀끔한 페리터미널의 건물과, 그 위의 ‘아오모리항 페리터미널’이라는 깔끔한 입간판을 바라보았으나 딱히 도호쿠에 왔다는 실감은 들지 않았다.










 감색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직원―경찰처럼도 보였다―이 주차할 곳을 찾던 나에게 손짓했다. 단차전용(単車専用)이라는 표지판 앞에 이륜차용 주차선이 그어져 있었다. 헬멧을 벗는데, 손짓하던 직원이 다가왔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 좋은 아침입니다.

- 좋은 아침입니다. 바이크 여행입니까?

- 예. 남쪽으로 갑니다.

- 어디까지 가십니까? 홋카이도 분이신가요?

- 저는 한국인입니다. 일단은 큐슈로 가볼 셈입니다.



 직원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나는 그에게 아오모리 도심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 가까워요. 다리 하나 넘어가면 곧 중심가죠. 하지만 이 시각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과연 그럴만했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전자기기가 든 가방을 챙겨 터미널 건물로 들어갔다. 홋카이도에 도착했던 10개월 전과 달리 육지멀미는 없었다.








 터미널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2층에 마련된 대합실 장의자에 앉아서, 가방끈을 어깨에 감아맨 채 쪽잠을 잤다.











 사람이 들락거리는 작은 소음에 깨어났다. 일곱 시가 넘어 있었다. 하얀 벽에 기대어둔 뒷목이 뻣뻣했다. 정신을 차리려 화장실에 들렀다. 물때 한 점 없이 청결했다. 세면대 옆의 핸드드라이어가 비닐커버로 봉인되어 있었고 그 위에 녹색 글씨로 ‘절전에 협력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동일본대지진, 일본인들이 3.11이라 돌려 말하는 그 날로부터 이미 1년 반. 이제 다른 지역에서는 그날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건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핸드드라이어 하나조차 켤 수 없는 것이다. 그제야 도호쿠, 상처받은 땅에 도달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인터넷에서 아오모리 시에 대해 조사한 후, 나는 짐을 챙겨 터미널을 나왔다. 아까의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주차장에는 차가 늘어나 있었다. 곧 다들 아사카제 5호에 실려 하코다테로 갈 것들이었다.






 그 중 시선을 끄는 차가 있었다. 요코하마 넘버의 그 활어수송차는, 수조의 하얀 뒷판에 커다란 업체 로고와 일장기, 태극기를 나란히 그려놓고 그 주변에 일본한자로 ‘일한친선 활어환선단’, ‘대한민국 부산항’, 그리고 한글 해서체로 ‘대한민국 부산항 일한친선’이라는 글귀를 붙여두었다. 나는 마침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물었다.


- 저는 여행 중인 한국인인데, 차가 멋지군요. 차 후면의 문구는 직접 넣으신 건가요? 이 차는 뭔가 부산과 관련이 있습니까?

 상대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아뇨, 저는 잘 모르는데요. 이거 제 차 아니에요.

 아마 그는 어딘가에 고용된 운전수이거나, 차를 배달하는 중이거나 한 모양이었다. 나는 ‘일한친선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인사를 덧붙여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이륜차를 몰고 일단 아오모리 역을 향했다. 역이라면 필경 관광안내소 정도는 있을 듯했다. 어쩌다보니 길을 잘못 든 탓에 꽤 돌아갔는데, 그 덕에 출근하는 아오모리의 시민들과 등교하는 아오모리의 학생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일본 어디나 그렇듯 출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새까만 수트에 새하얀 셔츠 차림이어서 몰개성해보였다. 아오모리 사람들은 남녀 모두 평균적으로 키가 크고, 삿포로만큼은 아니지만 피부 톤이 밝았다. 여성 중에는 비교적 미인이 자주 보였고, 학생들은 역시 자전거 등교를 하는 이가 많았는데, 어쩐지 다른 지역에 비해 치마가 조금 긴 듯한―사실 다른 지역의 치마가 짧은 거겠지만― 느낌이 있었다.








 역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아오모리의 도심이 대규모의 도로와 고층빌딩으로 가득하고, 역 주변 또한 수많은 일방통행로와 몇 개의 큰 교차로, 로터리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아오모리 역 자체는 아담했다. 건물 위에는 스즈키 이치로의 광고탑이 있었다. 잠시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역 주변을 헤맸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관광안내소 옆 인도 구석에 이륜차를 올렸다. 스탠드를 세우고 관광안내소로 걸어갔지만 잠긴 입구에는 9시부터라는 안내가 작은 글씨로 써 있었다. 손목시계는 8시 3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인도에 주차해둔 게 아무래도 신경쓰여, 일단 이륜차 옆으로 돌아갔다. 바로 옆 도로에 택시들이 한 대 두 대 와서 멈췄다. 가만보니 택시정류장 옆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중년의 기사가 나와 바이크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내가 목례를 하자 그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 자넨 어디까지 가는가? 번호판이 특이하네? 이거 어디 번호판이지?

 대뜸 말을 놓는 사람은 오래간만이었다.


- 이건 국제번호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 뭐? 그런 게 있어?

- 관광 목적이라면 자신의 차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으로 자기 차를 가져갈 수 있지요. 한국에서 운전하는 건 솔직히 권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 이야, 그런 게 있구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어.

 내가 모르는 일 따윈 없지, 하는 전제가 깔린 듯한 뉘앙스였다. 일본에서도 택시기사는 만물박사인 모양이다.


- 배를 이용해 가져와야하니까, 보통 자기 차를 가져와도 큐슈나 칸사이 정도만 다니는 모양입니다. 도호쿠까지 오는 사람은 좀체 없겠죠.

- 그렇겠구만. 혼다라고 되어 있군? 이거 혼다 차인가?

- 네, 혼다 겁니다.

- 역시 그렇군. 그럼 자네는 이제 홋카이도로 가는 건가?


 그러고보니 이 사람의 첫 질문은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이제껏 나에게 말을 건 일본인들은 언제나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는데, 처음으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Hokkaido와 rider를 합친 '홋카이더(Hokkaider)'라는 단어를 만들만큼 이륜차 여행지로 유명한 홋카이도에서는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반면 이곳 아오모리는 혼슈에서 이륜차를 끌고 북상한 이들이 홋카이도로 넘어가는 관문의 성격이 강할테니, 이륜차 여행자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홋카이도에 가는 중이라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 아니오, 저는 남쪽으로 갑니다. 하코다테에서 온 배에서 아까 6시 무렵 내렸습니다. 오늘은 아오모리를 다니려는데, 지도나 얻으려고 관광안내소에 왔더니 아직 안 열었네요.

- 그렇구만. 저기 아홉 시부터 여는데…. 20분은 기다려야 할 걸. 근데 뭐 관광안내소에도 별 건 없을 거야.

- 그래도 기념삼아 안내지도 한 장 정도는 가져가고 싶습니다. 뭐 20분 정도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여기 주차해둔 것이 엄청 신경쓰이네요…. 역시 여기 주차하면 안되겠죠?

- 뭐? 그런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 괜한 걱정 하지 말라구.

 보통 일본인들은 말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한 편이라, 설령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상식적 당위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 택시기사의 털털한 성격이 개인적인 특성인지, 아니면 도호쿠 사람의 공통점인지 문득 궁금했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한 여성이 관광안내소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직원인 듯했다. 관광안내소로 따라 들어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도를 챙겼다. 택시 기사는 여전히 내 이륜차와 거기에 잔뜩 실린 짐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슬슬 아침식사를 해둬야 했다.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생각했다.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일단은 멀리서 재료를 공수해올 거 같은 맥도날드에 가기로 했다. 구글 네비게이터가 알려주는대로 맥도날드를 향해 가던 길에 동전 빨래방이 있었다. 당장 허기가 심한 것도 아니고, 오늘 아오모리 시를 나가면 당분간 빨래방을 볼 일도 없을 듯해서 빨래를 해두기로 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구석 의자에 앉아서, 빨래방에 비치되어 있던 만화잡지를 읽었다. 『건담 디 오리진』은 순조롭게 연재중인 모양이었다.








 구글 네비게이터가 맥도날드까지 앞으로 500m라 알릴 즈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 대형마트의 구석에 입점한 맥도날드에서 빅맥셋트를 먹으며 비를 그었다. 어쩌면 방사능의 영향으로 특정 메뉴를 판매하지 않거나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예상을 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당연하게도 빅맥의 맛은 언제나와 같았다. 몇 명인가의 손님이 햄버거를 먹거나, 마트에서 산 도시락을 먹거나 했다. 주부들이 많았고, 정비복이나 작업복 차림의 남성도 있었다. 어느새 정오였다.









《B》

 비는 한 시간쯤 내렸다. 갠 후 갓포공원(合浦公園)으로 갔다. 일본 100대 도시공원이라는 선정의 수준이 궁금했다.






 표지판을 따라 공원 주차장으로 갔더니, 웬 야구복 차림의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주차안내를 했다. 한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것이 ‘1학년이라 마땅히 잡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인상이었다. 유도에 따라 주차장에 진입하자 몇몇 학생이 모자를 벗고 고개숙여 인사를 해왔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를 했다. 헬멧을 벗었더니 어디선가 응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무슨 시합중인 모양이다. 팔다리의 안전장구를 벗는데 나를 쳐다보던 야구복 몇 명이 무어라 대화하며 키득거렸다. 아마도 OB인 줄 알고 인사했는데 아닌 거 같다든지, 혹은 안전장구가 우스워보인다든지―하코다테 '시루시루'의 영감님에게도 '이런 건 스케이브보드 탈 때나 쓰는 거 아닌가? 이게 바이크용이라구?'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일단은 알파인스타의 이륜차 기어다―, 무슨 피난 가듯 짐을 싣고 다니는 꼴이 웃긴다든지 그런 이유로 비웃은 것이리라.








 응원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봤더니 원형의 파란 건물에 ‘아오모리 시영 야구장’이라고 되어 있었다. 대진표가 붙어있었다. '제59회 춘계 동북지역 고등학교 야구대회'. 이른바 코시엔(갑자원)으로 가는 길목인 모양이다. 8강으로 가는 마지막 경기가 20분 전부터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간헐적인 함성을 들으니 고등학생 시절 동대문 야구장에서 응원에 동원되었던 기억이 났다. 대진표를 보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또 야구복 차림의 학생들이 서넛 모여서 나를 보더니 킥킥거렸다. 여행자가 수트를 차려입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쩌라는 걸까. 아무튼 운동부 녀석들은 무례하다, 라는 내 편견은 일본에서도 작동했다.













 나는 야구장을 뒤로하고 바로 옆의 공원 입구로 갔다. 억지로 꾸며놓은 느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오래된 공원다운 울창한 녹음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상록수들이 있고, 포장된 길을 제외한 땅에는 이끼나 잡초, 잔디가 적당한 높이로 다듬어져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은 반절 정도가 연잎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에서 참새가 놀았다. 정자가 있고, 소나무가 있고,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애완견도 있었다.













 공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단연 노인의 무리였다. 잠시 걷는 동안에도 대여섯 조가 나와 마주지나갔는데, 모두들 그 인원구성이 비슷했다. 파스텔톤 피케셔츠 차림―아마 노인개호단체나 실버타운 등의 직원복일 것이다―의 인솔자 두세 명이 각자 휠체어를 밀며 무리를 이끌었다. 젊은 직원과 나이든 직원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고, 젊은 노인이 나이든 노인의 휠체어를 끄는 모습도 보였다.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도 효율적인 활동을 위한 조직성이 느껴졌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조마다 꼭 젊은 직원이 한두 사람은 끼어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에는 복지계열을 지망하는 젊은이가 꽤 많다. 그들이 복지를 지망할 수 있는 건, 물론 도덕윤리적인 신념도 기반되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복지 역시 먹고살만한 직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지가 유별나게 돈이 된다는 게 아니라, 어떤 직종이든 먹고 살만큼의 벌이가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피하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라, 힘든데 돈도 안되는 일이다. 과연 인건비가 높아지는 게 나쁘기만 한 일일까. 인건비라는 건 결국 그 사회에서 인간의 값어치를 어느 정도로 여기느냐에 관한 지표일지도 모른다.






 공원 한편에 있는 주차공간에 각각 다른 단체명이 붙은 휠체어용 승합차가 여럿 주차된 것이 보였다. 어쩌면 아오모리는 실버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향으로 조금 걸었다. 파도소리와 짠내가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갑작스럽게 해변이 나왔다. 풀밭과 소나무숲과 모래사장과 바다가 경계없이 이어지는, 특이한 풍경이었다. 원래 이곳이 조석간만이 적은 곳인지, 아니면 길었던 해안이 다 바다에 먹히고 이제는 해수가 숲의 코앞까지 전진해온 것인지 과객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공원을 거니는 노인들의 편안한 표정은 공원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읽은 「모래의 여자」의 도입부가 떠올랐다. 이곳의 파도소리는 어쩐지 작은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서쪽으로 이동했다. 도심에는 아케이드와 일방통행로가 많았다. 아침에도 헤맨 길이었다.








《C》



 아오모리 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관광물산관 '아스팜'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는 '아오이우미(青い海)' 공원을 걸었다. 벽돌이나 목재 등으로 잘 포장해두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삭막하고 조잡한 느낌이 들었다. 아스팜이라는 건물의 모양새도 그렇고, 어쩐지 급히 도시화된 곳 특유의 설익은 공기가 느껴졌다.







후타리(ふたり)라는 제목의 동상.











 이곳의 바다는 어쩐지 갑갑했다. 나는 한산한 공원을 지나는 얼마 안되는 사람들을 살피며 공원의 끝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공원 한편에 세모난 유리 전망대가 있어서 들어갔다. 전망대 바로 앞 벤치에는 검은 양복의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가 세워둔 하얀 자전거의 앞바구니에는 직장인 풍의 서류가방이 담겨 있었다. 가끔 옆을 돌아보는 그의 표정이 심란했다. 나는 한동안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서쪽 먼 곳에서 배가 기적을 울리며 항구를 떠나갔다.














공원 가운데 부근의 풀밭에는 한 그루의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그 옆의 말뚝에는 '한국배우 이서진 씨 식수 기념 - 2010년 8월 2일 사단법인 아오모리 현 관광연맹'이라 되어 있었다.
식수의 사연은 모르겠으나, 내게는 한국에 대한 일본 민인들의 우호감이 한창 고조되었던 시기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산관 아스팜의 정면 모습.
1986년에 준공된 건물이며, 세모난 모양은 Aomori의 A를 상징한다는 모양이다.









 다시 길을 재촉하기 위해 물산관 쪽으로 갔다. 그러고보니 물산관 주변 공터에 커다랗고 하얀 천막 구조물이 몇 채 이어져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쳐다보았는데, 천막의 틈 사이로 작업중인 사람들과 무언가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것이 보였다. 아마도 거대한 네부타(ねぶた)를 제작 혹은 보관하는 장소인 듯했다. 8월에나 열리는 네부타 축제를 벌써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공을 들이는 모양이었다.








《D》

 차를 몰아 시외로 나갔다.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三内丸山遺跡)은 세 곳의 너른 주차장을 갖추고 있었으나 차가 없어 한산했다. 나는 표지를 따라 이륜차 주차장으로 갔다.




 가로로 길게 이어진 입구건물의 가운데 문으로 들어갔다. 입장무료라는 표지가 세워져있었다.








 일본의 국가특별사적인 산나이 마루야마 유적은 1992년에 발견되었다. 아오모리 현립 야구장을 새로 짓기 위한 사전조사 과정에서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지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죠몬시대 중기(신석기 후기)의 각종 유물과 780 채에 이르는 건축물 자취가 발견되자 아오모리 현은 야구장 건설은 물론 장기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되고 있던 계획도로 시공조차 중단시키며 유적의 보존을 결정했다. 유적의 일부는 여전히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이미 연구가 끝난 일부 지역은 일반개방 중이다. 이곳은 죠몬인, 즉 선사시대 일본인의 문화를 밝혀내는 주요한 자료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건물 안의 영상관에서 틀어주는 안내영상을 잠시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그냥 유적지로 나왔다. 조명없는 작은 터널을 나오니 강렬한 주광과 함께 너른 풀밭이 펼쳐졌다. 유적지는 공원처럼 정비되어 있었다. 포장로를 따라 순회할 수 있는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고, 일반관람이 허가된 지역의 주변은 빽빽한 숲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유적지 전체를 덮고 있는 잔디는 모두 짧고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복원된 건축물과 그것을 둘러싼 원형의 길이 보였다. 나는 시계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가까이 가보니 수혈식 건물, 즉 땅을 파고 만든 움집들이었다. 움집은 모양이나 규모, 재질이 조금씩 달랐다. 크게 목재로 된 디아블로2에서 본 듯한 원추형 움집과 짚으로 만든 반구형의 움집으로 구분할 수 있을 듯했다. 움집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오랜 기간 존속된 취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원추형 움집의 입구는 나뭇가지를 걸어 출입을 막아두었는데, 그 내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기로 들여다보니 풀로 채워진 바닥 위에 빗살무늬 토기가 있었다. (청동기 시대의 다른 말이 '무문(無文)토기 시대'인 만큼, 이렇게 무늬가 빽빽이 찍혀있다는 것 자체로 청동기 이전의 토기임을 추측할 수 있다.)











 풀로 된 움집은 개방되어 있었고 그 입구 또한 포장된 길과 이어져 있었는데, 입구는 좁았지만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풀밭 속에 듬성듬성 놓인 움집이 제법 석기시대다운 모양새가 났다.








 좀 더 걸어가니 나무로 된 고상식 건물이 보였다. (고상식 건물은 창고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이곳의 고상식 건물은 그 수가 워낙 많아서 주거지였을 가능성도 있다.) 석기시대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지, 그 과정을 찬찬히 상상해보았다. 직사각형을 그리는 주혈에 여섯 기둥을 박은 뒤, 나무를 엮어나가 건물의 바닥을 만들고, 볏단으로 몇 층인가의 벽을 세우고, 움집의 지붕에 쓰던 빽빽한 볏단으로 커다란 맞배지붕을 올려서 완성…. 방금 움집을 보면서 '석기시대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이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석기시대의 이미지가 횡으로 팽창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게 나무와 석기가 주어지면 이런 집을 만들 수 있을까.








 도중에 유리지붕으로 덮어둔 공간이 있었는데, 안내문이 붙어있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온습도를 유지하는 기계장치도 함께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가 발굴된 터인 모양이다. 건물의 흔적이라기엔 너무 작았다. 겨우 줄 하나 둘러놓은 정도의 통제방법은 아무래도 일본인 방문객 만을 상정한 것처럼 보였다.








 고상가옥의 터도 재현되어 있었다. 혈의 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한 건물을 오랫동안 유지보수하며 살아온 흔적인 듯했는데, 안내판 같은 게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한쪽에는 철제 지붕의 트렌치가 있었다. 당연히 '관계자외 출입금지'를 예상했으나, 닫힌 문에는 '자유롭게 들어오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이곳은 외국인 방문객이 드문 모양이었다. 아오모리 자체가 해외에서 관광오긴 다소 애매한 동네긴 하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에어컨디셔너를 가동하여 토층을 보존, 전시하고 있었다. 아마 실제 유구가 발견된 자리인 듯 보였다. 유리벽 안의 토층은 수족관이나 개미집 모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사진의 중앙부 좌측 새시가 조금 내려간 자리에 사진기를 놓고 촬영했다.









 트렌치를 나오자 이번에는 옆으로 긴 건물이 보였다. 가로가 30미터는 될 듯했는데, 규모상 주거용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아마도 집회소로 쓰였을 듯했다.








 좁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보니, 과연 지표면보다 낮게 판 내부에 나무기둥 의자와 돌로 둘러싼 노지가 재현되어 있었다. 곧 족장회의라도 열릴 듯했다.








 나머지 실내공간은 따로 꾸며져 있지 않고 그냥 비어있었는데, 내 텐트를 열다섯 채쯤 설치하고도 공간이 남을 듯했다. 비탈길을 만들어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휠체어용의 길이겠거니 싶었다.








 밖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건물의 뼈대인 듯한 구조물이 서 있었는데, 세 층으로 되어 있는 그 높이가 상당했다. 다층 건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자재에 대한 이해는 물론 상당한 기하학적 지식이 필요할 터인데, 석기 시대의 사람이 이걸 어떻게 만든 것인지, 그리고 이 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다른 건축물은 재현해두었음에도 이곳만 뼈대 채로 남겨뒀다는 것은, 아마 이 모양 그대로의 망루였거나 이곳의 학자들도 그 용도를 추측할 수 없어서 반쯤만 복원해둔 것인 듯도 싶었다.








 부근에는 3층 건축물의 수혈을 보존해둔 돔이 있었다. 앞서의 트렌치와 마찬가지로 에어컨디셔너로 저온다습을 유지했다.





























780채에 이르는 건물 잔해가 발견될만큼 발달했던 이 취락지가
왜 고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갑자기 쇠락하였는지는 여전히 학계의 미스터리인 모양이다.













 들어올 때는 못 봤는데, 유적을 나오며 보니 입구건물에 네부타가 한 점 전시되어 있었다. 이런 화려한 조형물을 잔뜩 들고 달리는 축제라면 꽤 볼만하겠다 싶었다.








 주차장에서 시계를 보니 16시 40분이었다. 하늘이 다시 흐려졌다. 과연 해지기 전에 잠자리에 닿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다음 목적지인 고쇼가와라(五所川原) 시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고속도로라는 선택지도 있긴 했으나, 국도변의 풍경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서두르고 싶지는 않았다. 늦으면 늦는대로 느슨하게 다니면 그만이다. 어차피 아오모리 시를 벗어나면 대책 없는 깡촌이 계속될테니 어딘가에서 대충 텐트 펼치고 자버리면 그만이었다. 나는 주변의 주유소에서 천엔 어치의 휘발유를 넣고, 7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철마를 몰았다.




 101번 도로로 갈아타 길이 조금씩 북쪽을 향할 무렵부터 도로는 왕복4차선으로 좁아졌고, 좀 더 가니 왕복 2차선까지 좁아졌다. 허나 지방의 지선도로답게 다니는 차가 적어서 운전하기에는 무척 편했다. 도회적인 지역도 대여섯 번 나타났지만, 그 외의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구름은 많았지만 비는 올 거 같지 않았다.








《F》

 목적지인 아시노 공원(芦野公園) 오토캠프장은 호숫가에 있었다. 샤코탄에서 묵었던 야영장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나 수돗가 등의 간단한 시설만 있을 뿐 출입게이트나 관리사무소 같은 것이 없었다. 나는 캠프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캠프장은 대단히 깨끗해서, 쓰레기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공간도 꽤 넓어 캠핑카 70대 정도는 족히 수용할 듯했다. 금요일 저녁답게 인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하며 왔지만, 캠프장 전체에 주차된 차는 세 대 뿐이었으며 모두 빈 차였다.

 잠자리를 확보했으니 이제 배를 채워야 했다. 돌이켜보니 1시간 넘게 달려오면서 그 흔한 규동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샤코탄 못지 않은 벽촌인 모양이다. 그나마 오던 길에 대형 마트인 듯한 건물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나는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E》



 수백대 분의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광활함은 시골답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편의점 하나 없는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The Great Superstore대빵 큰 가게라는 상호가 인상적이다.


 '카나기 타운 센터'라는 메인간판이 달려있던 그곳은, 거대한 창고형 마트를 중심으로 길게 연장된 건물 안에 다양한 업체가 입점한 방식의 쇼핑몰인 듯했다. 아마 이 주변 십수 킬로미터 내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이 마트에 의존하고 있을 듯 싶었다. 나는 건물의 왼쪽 끝에서부터 한 가게씩 지나가보기로 했다. 보석상도 있고, 복권판매점도 있고, 카센터도 있고, 병원도 있고, 학원도 있고, 가전제품 양판점도 있었다.







서점도 있었다.
특이하게도 성인서적 코너가 없었다.








오락실도 있었다.
메달게임들과 미니슬롯머신 등을 아이들이 즐기고 있었다.








'전차로 GO! 2' 절찬가동중.













 마트에 당도했다.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이미 도호쿠에 와 있는 이상 그것은 기분상의 문제긴 했다. 무슨 일이든 간에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는 성격―나는 계획이 빗나가는 걸 무척 짜증스러워하기 때문에, 여간해선 계획이라는 걸 세우지 않는다―인지라, '이곳 사람들도 뭔가 수가 있으니 여기서 살고 있을테고, 나는 현장에서 그걸 캐치하면 될 것이다'하는 투의 막연한 속셈도 있었다. 현지의 마트에 온 것도 그런 맥락이었는데, 어떤 의미로 현실은 예상의 정반대였다.

 마트에서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의 영향을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과일도 야채도 가공식품도, 너무나도 평범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사람들도 태연하게 그것을 사갔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국내산 식품에는 구체적인 산지를 표기할 수 없고 무조건 '국내산'이라고만 쓸 수 있게 된 법률 때문에, 그것들이 어디에서 온 상품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혹시 다들 큐슈나 홋카이도 등 그나마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공수해온 상품이라서 이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비치되어 있는 과일상자들을 살펴보았지만 아는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단서가 없을지 생각하다가 과자와 빵이 있는 코너로 갔다. 그런 제품이라면 포장지에 제조지 주소가 써있으니 어디의 제품인지 간접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제조지가 아오모리 현내에 주소가 있었고, 가끔 아키타나 이와테 주소가 보였다. 결국 다 도호쿠에서 제조한 제품이었다. 나는 이들이 현실을 과감하다못해 산뜻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각 현의 관광안내 웹사이트마다 현지사(縣知事)들의 사진과 함께 올라와 있던 '저희 현은 안전합니다. 안심하고 놀러오세요.'하는 말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독단 혹은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지점도 없잖아 있었다. 이곳은 후쿠시마와 같은 도호쿠(東北) 지방에 속하지만, 거리로 따지면 도쿄보다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먼 곳이었다. 사람은 사실이야 어찌됐건 그저 믿고 싶은 걸 믿기 마련이고, 수도 도쿄의 위기를 믿고 싶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도쿄보다도 먼 아오모리가 위험하다는 발상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고보니 금요일 저녁의 대형마트치고는 손님이 너무 없었다. 떠날 이들은 떠나고 못 떠난 이들만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그것을 사는 사람들도 모두 떠나지 못한 이들이라고 생각하니 묘하게 화가 나면서 기운도 빠졌다. 이방인인 나는 무엇을 직시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직시해야 하고 무엇을 외면하는 것이 사람다운 일인가.

 나는 본디 낯선 지역의 대형마트를 둘러보는 일을 즐기는 편인데, 더 이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2리터 들이 에비앙 생수 한 병과, 즉석조리코너에서 팔고 있던 햄버그 스테이크 세 장 들이를 한 팩 사서 마트를 나왔다. 화가 나서 그런지 갑작스레 식욕이 돌았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푸드코트가 있었는데, 무슨 행사라도 하는 것인지 라멘을 310엔에 팔고 있었다. 이곳의 음식 몇 끼가 죽음을 부르는 독약이라면, 다들 태연히 그것을 먹고 있는 이상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의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어나갈 운명이었다. 나 또한, 앞으로 서일본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굶을 것인가, 아니면 확대경을 깨고 물을 마실 것인가. 굶고 다닐 정도로 동일본의 음식이 위험하다면, 서일본의 음식이라고 안전할 것인가? 서일본의 음식도 불안하다면 그보다 후쿠시마에서 더 가까운 한국의 음식들은 이제껏 어떻게 먹어왔는가. 안전과 불안전의 경계선을 알 수 없는 우리는, 대지가 아닌 각자의 마음에 경계선을 그어놓고서 자기방어적 외면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껏 만나본 수많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유럽인들이 공통적으로 '옆동네는 끝장이지만 여긴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현상은, 결국 이곳을 떠나지 못한 이들의 마음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자기위안이었던 건 아닌가. 맙소사. 위 아 더 월드.






 나는 돈코츠 라멘을 주문했다. 딱 가격에 걸맞는 저렴한 맛이었다. 햄버그 스테이크도 한 장 꺼내어 먹었다.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 반절 남은 해는 서녘에 겨우 걸려 있었다. 나는 어둑해진 논밭 사이의 도로를 따라 캠프장으로 돌아갔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와중에도 심란함은 가시지 않았다. 아오모리에서 고쇼가와라로 오면서 보았던 풍경을 생각하면, 이 지역의 대부분은 농지일 터였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이들에게는 농산물을 다 버리고 망하는 길밖에 없다. 이방인인 나는 여전히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다버릴 수가 없는 것이 삶이다. 나의 조잡한 합리를 근거로 부정하기에 그것은 너무 무겁다.








《다시 F》



 오토캠프장에는 차가 몇 대 늘어나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미 해가 졌기 때문인지 대부분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커튼을 내린 승합차, 캠핑카 등의 창문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내가 점찍어둔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텐트를 치고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씻었다. 혹시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싶어서, 가지고 간 이불압축용 초대형 지퍼백에 짐을 모두 넣고 텐트 아래에 두었다. 텐트에서 자는 건 두 번째였는데, 짐을 부릴 때마다의 시간낭비도 그렇고 언제까지나 우천과 도난에서 안전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으니,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다시 아까의 마트에 들러 이륜차용 레인커버를 찾아보기로 했다.

 텐트의 우레탄 바닥에 몸을 뉘였다. 가만 누워 있으니 방충망 밖에서 호수 특유의 물비린내가 흘러들어왔다. 낯선 곳이라는 실감이 새삼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하선하던 새벽까지만해도 지명조차 몰랐던 땅에 태연히 자리깔고 누워있던 것이다. 아침에 아오모리 페리 터미널에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고쇼가와라에는 다자이 오사무(太宰 治)의 집이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글을 읽은 것만으로 북행을 결정한 것은, 그야말로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돌발과 즉흥의 나날이 계속될테지만, 그래도 혼슈까지 오는데 일주일이나 걸린만큼 길을 서두를 필요도 의식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계속)



※ Archaeological advice by Biungpio K.

* kimbill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7-20 09:18)
* 관리사유 : 연재 게시물 이동 조치합니다.



Mosch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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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30 17:18
잘 보고 읽고 있습니다. 작년에 일본에 다녀온 기억도 나고 좋네요. 올해 또 한번 가려 하는데 글들을 보고 미리 느끼고 있네요. 조금 늦어도 상관없으니 꼭 계속 올려주세요.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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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30 20:34
잘 보고 갑니다.
기아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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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30 21:03
잘 보고 갑니다.

아오모리 유적지는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이렇게 직접 사진으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뭔가 함정이 있는 듯하지만 넘어가주세요 흐흐

참고로 저 망루로 복원해둔 물건은 망루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

이것도 참 뭔가 함정이 있는 듯하지만 넘어가주세요 ㅠㅠ
연필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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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01 04:47
떠나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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