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9/06/02 15:07:11
Name   zillut.j
Subject   흑백 테레비
지금으로부터 벌써 32년 전..제가 5살 꼬꼬마였을적 얘기입니다.



국민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신 우리 아버지가 그나마 돈좀 벌어보겠다고 남에 땅을 빌려 반 머슴격으로 수박, 감, 포도, 도마도 등등..

여러 과수원을 하다가 모두 망해 결국엔 리어카 하나를 끌고 하루종일 고물을 줏어 팔아 엄마, 누나, 나, 그리고 막내 우리 5식구를

먹여살릴 때였죠.

남에 집 셋방살이..한겨울에도 연탄 한장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집에 테레비가 있을턱이 만무했죠.

그래서 생각해낸 꾀가 나랑 비슷한 또래였던 주인집 아들래미와 친하게 지내기.

오후 5시 반(5시 반부터 방송을 했던게 맞나요?? 하도 어릴적 일이라..)부터 시작하는 만화 몇편을 보기위해 말이 친한척이지

요즘말로 하면 거의 따까리라 불려도 무방할만큼 대장처럼 모시고 지냈더랬죵.  그러나 이것도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답니다.

술래잡기 망까기 다방구..등등 무슨 놀이를 하건 져줘야 했던 그 상황..가끔 열불이 나서 놀이에 이기고 나면 벤댕이같은 그넘은

방문을 꼭꼭 틀어닫은체 소리만 왕창 크게 켜놓고 혼자 테레비를 봅니다.

소리라도 안들리면 괜찮으련만 크게 틀어놓은 볼륨에 머리속으로는 엄청나게 재미있을듯한 상황이 마구 마구 상상이 되고

보고싶어 안절부절하다가는..끝내 참지 못하고 주인집 안방 문 앞으로 조용히 다가갑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나무로 만든 문이

있을턱이 없죠. 오로지 한지를 붙여만든 양쪽으로 밀어서 드나드는 문..

신혼 초야를 훔쳐보는 하객도 아닌데 혹여 들킬새라 최대한 조심 조심 조용히 침을 발라 구멍을 한개 내고는 전투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처럼 의기 양양하게 썩소를 지으며 만화를 훔쳐봤습니다.

그러나 것도 오래 가지 않더군요. 눈치챈 친구놈..아무생각없이 구멍 너머로 만화만 훔쳐보던 저를 바로 응징..제가 내놨던 구멍으로

손가락을 찔러넣어 제 눈에 지금 시대로 따지면 최소 전치 2주 이상의 진단을 나오게끔 만드는 테러를 가한 겁니다.

눈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 재미나는 만화를 못보게됐다는 실망감에 목놓아 엉엉 울었던 그때의 심정..지금 생각해도 새삼 억울해지네요 ㅠ

암튼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온 저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신 우리 어머니.

장롱 어딘가를 뒤지는가 싶더니 저를 업고 30분이 넘도록 걸어가야 하는 읍내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십니다.

영문도 모른체 아픈 한쪽눈을 만지며 업혀가던 제가 순간 비가 오는줄로 착각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소리없이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이 아니었나 싶네요.

암튼 이렇게해서 장만하게 된 테레비젼.

하늘을 날아갈듯 싶었고 그 후 일주일정도는 김치와 간장뿐인 밥상에 대해 불평 한마디 없이 꼬박 꼬박 잘 먹었던것 같습니다.  

우리 테레비가 생겼다는 흥분에 잠도 제대로 오지않아 뒤척이고 있을때 나 몰래 끌어앉고 우셨던 우리 부모님의 눈물조차도

그때 당시엔 왜 저러나..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그 다음해 딸랑 이불 한채만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할때도 재산목록 1호였으며 서울 상경 13년만에 무당이 살던 집을 사서

새 칼라 테레비를 살때까지 저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그 테레비젼..

어린시절 최고의 친구였으녀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던 그 테레비젼..

울 아부지 하루종일 힘들게 고물모아 팔아모은 2달치 댓가인것을 알았더라면 과연 그래도 그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철없는 아들래미 쥔집 테레비 훔쳐보다 손가락에 찔러 벌겋게 충혈된거 보시고는 앞뒤없이 저를 업고 읍내로 달려가셨던 우리 어머니.

그 추운 한겨울에 하루종일 얼은 손,발 비벼가며 힘들게 고물모아 모은 돈으로 테레비 산거 아신 후에도 오히려 타박보단 없는자의 설움에

어머니 부둥켜안고 소리없이 흐느끼시던 우리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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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쟐에 가입하고 그 무겁다는 write버튼을 누르고 남기는 첫 글입니다.

학력이라고는 공고졸업이 전부인 저이기에 미천한 필력이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 단 한분이라도

오늘 저녁 부모님을 찾아뵙거나 안부 인사라도 한통 드릴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예전 타 사이트에 남겼던

글을 가져와 봅니다.

요즘 양극화에 다들 고생이 심하시죠.. 하지만 예전 저시절에 비하면 다들 어떠신가요??

옆집 영희 엄마는 이번에 호주로 여행을 가는데 이넘에 망할 전직 대통령이 양극화를 심하게 벌어지게 해놔서

우리는 필리핀밖에 못간다..라고 혹시나 투덜대신적은 없으신가요..

물론 무턱대고 현실에 만족하고 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노통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훌륭한 자산들은 절대 잊지말고 생각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수 있는 용기 또한 가져야 마땅하지만

또다른 의미의 '행복'이라는 놈은 저 멀리서 찾다보면 절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뱀발 : 비가 많이 내리네요. 웬지 노통과 더불어 소주 한잔 생각이 더욱 간절해 집니다.

* 퍼플레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6-03 09:10)



Ge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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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5:10
지금은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군요.~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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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5:13
부끄럽군요..
Day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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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5:58
뭔가 울컥하게 만드시는 글이네요.ㅜㅠ 저희 부모님께서도 고생 엄청 많이 하셨죠.
이 글을 읽다보니 어릴 때 부업을 하시던 어머니 무릎에 누워 구구단을 외던 생각도 나고.. 멀리 사우디에 돈 벌러 몇년간 떠났던 아버지 생각도 나네요. 지금도 고생 많으신 부모님들께 뭐 하나 제대로 해 주지도 못하는 맏아들은 그저 가슴속으로 눈물을 삼킵니다.
배고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첫 글 축하드리구요.^^
Noam Chom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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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6:03
글 잘 쓰는 게 별건가요? 어렸을 때 즐겨보던 '좋은생각' 속 독자들의 수필은 화려한 수사가 없어도 마음을 잡아끄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 기분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낍니다.
테레비로 만화 보던 주인집 아들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던 zillut.j님이 더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듯합니다.

더불어 만족이란 절대적인 개념보다 상대적인 개념이 크죠. 우리가 지금 가난에 불평하는 건 잘 사는 사람에 비해 못 살기 때문이지, 결코 예전보다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양극화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고요. 얘기가 샜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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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6:13
글쓴이님의 글은 충분히 좋은글입니다.
어렸을때 추억을 한번 돌이켜보게 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포데로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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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6:56
제가 이런 추억담을 무척 좋아라하는지라 신나게 읽다가 눈물 글썽해버렸네요.
zillut.j님 나쁘세요.
지난 한주동안 내내 인터넷만 들어오면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제 좀 진정이 될만한데...ㅠ.ㅠ

고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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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6:57
좋은글 감사합니다..ㅜㅜ
여자예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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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7:16
필력 좋으신데요.. 눈앞이 가물가물..ㅠㅠ 엄마...ㅠ
스킨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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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7:22
선 추게로 후 댓글....
아 밖에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제 눈에도 빗방울이 들어간듯..
Hu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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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7:29
좋은글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은 부모님 어깨한번 주물러 드려야겠네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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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7:38
저희집도 텔레비젼이 없었는데 큰 아버지 댁에 가서 텔레비젼을 보곤 했는데..
그 큰아버지 댁을 가기위해서 어둠속을 헤쳐 가는게 어린 저에게 얼마나 무서웠던지..
동네는 전기도 안들어오고..-.- 참 까마득히 먼이야기 지만.. 수도물도 안들어와 자체 퍼먹었던 동네...
그래도 아버지 친구분이 전파사 하신덕에 집에 가면 오래된 쏘니 카세트가 있다는 ^.^
사진처럼 쫙 펼쳐 지내요...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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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9:09
좋은 추억 가지고 계시군요.
가볍지만 생각할 수 있어서 추천합니다.
Schi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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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9:53
선 추게로 후 댓글....(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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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19:55
아...눈에 땀이 나요 ㅜㅜㅜ
어머님이 정말 좋으신분이네요
동트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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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20:28
후우......
미스터풀스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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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20:31
선 추게로 후 댓글....(3)
좋은 글 잘봤습니다.
Sh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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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2 22:42
왜 눈 앞이 뿌옇.. ㅠㅠ..

잘 봤습니다. 추게로!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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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3 13:26
글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낭창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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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3 20:51
아.. 저는 정말 행복하게 살고있는거군요. 글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악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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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3 21:44
저도 옛날 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 봅니다. 동네에서 우리집만 전화가 없던 어린시절에 건설현장에 나가시는 아버지는 새벽 5시가 약간
넘으면 나가셨더랬죠. 어머니는 5시가 안되서 이웃집에 문을 두드리며 아버지 차비를 빌리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추운 겨울날 반지하 단 칸방 현관 앞에 낙숫물이 밤새 얼어서 문을 열고 나갈수가 없었던 때가 있었어요. 쇠창살에 막힌
창문에 대고 온가족이 새벽에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르던 날이 생각 나네요.
주인집 아저씨가 삽으로 겨우 깨줘서 저는 학교를 갈수 있었지만, 2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도 부모님의 그 때 눈물이 잊혀지지 않아요..
morn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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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3 23:30
잘 읽었습니다. 님 글을 읽다 보니, 여행스케치의 '그때가 그리워 (향수)' 가 갑자기 떠 올라서 지금 듣고 있습니다.
님의 얘기와 조금 거리가 있긴 해도, 노래 가사 중에 '온 동네에 하나 뿐이 던 테레비' 라는 부분이 있거든요.. :)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 읽으니 더 좋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윽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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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4 23:24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해야겠습니다..^^
지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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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6 15:42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
소군과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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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6 16:15
이제 읽었습니다.
똑같은 나이라서 이상하게도 끌립니다....^^

그 흑백테레비(역시 테레비라 써야 멋드러집니다.)는 역시도 다리가 달린 옆으로 여는 미닫이문이 달린 일체형 흑백테레비...
오래된 기억이라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색깔은 짙은 갈색...

그런데 왜 그 테레비로 본 프로그램은 한개도 생각나지 않을까요?
^^;;
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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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9 01:11
제 마음을 때리는 글입니다.
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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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11 23:24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꿈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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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17 00:10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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