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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2 23:48
2.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에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면 혹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자치권을 갖는 것과 통일은 문제의 성질이 좀 다르다고 봅니다.
15/08/02 23:49
자게의 뻐꾸기시계님의 댓글을 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북간도 영토는 애초 우리의 영토가 아니었던 걸 대한제국이 도발한 것 뿐입니다.
15/08/02 23:55
만약 내일 당장 전쟁나는데 예비군 입장으로 자원해서 최전방에 선봉에 설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일제시대가도 독립운동 했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소극적 친일파가 되겠죠. 어쩔 수 없이 체제에 수긍하고 사는,..
15/08/03 00:09
가정에 빠진게 있는데요
일본이 식민지 한국을 본국인과 차별없이 똑같이 대우하고 똑같이 잘 살게 해준댑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 받는다면 직간접적으로 독립하려는 세력에 힘을 보태겠죠. 영국치하 아일랜드처럼
15/08/03 00:16
가치관보다는 능력의 문제죠. 통일 하고 싶다는 사람, 독립운동 하고 싶다는 사람도 <능력이 없다면> 실제 행동은 통일 필요없다는 사람, 독립운동 필요없다는 사람들과 별 다를 것도 없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말이죠.
15/08/03 00:40
'일본 제국'이 워낙 비정상적이고 미친 국가였기 때문에 지능이 많이 부족하거나 줄 잘타서 개이득 보며 살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쫄아서 저항을 안하고 사는 것'이면 몰라도 '진심으로 순응하고 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제국시절이 아닌 지금만 해도 일본 국내에서도 부라쿠민 차별 같은거 보면 뭐... 보나마나 식민지인들은 극심한 차별 받을게 뻔하죠.
15/08/03 00:54
별개로 조선은 일본 입장에서는 합병이 잘 된 케이스에 속합니다.
합병했다고 대규모 군사적 반란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1940년대 들어서면 조선은 사실상 독립의지가 꺾여있었다고 봐도 좋고, 소수의 해외 독립투사들만 투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순조로운 식민지화되어가는 중이었고, 만약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일본에 흡수되었을 겁니다. 일제 치하에서 그래도 나름 일본국민에 이어서 조선국민이 2등 신민이었고,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일본의 전쟁에도 참전했고... (태평양 전쟁 말기가 될수록 차별은 없어집니다. 조선을 우대한 게 아니라 일본 스스로도 똑같이 힘들어지면서 -_-) 합병되기 이전 세대들은 그래도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합병 이후의 세대라면... 글쎄요. 저라도 저항정신을 가지고 있었을지는 자신이 없네요.
15/08/03 00:54
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순사들이 눈을 부릅뜨면서 삐딱하다 싶으면 불러다가 문초도 하고 가두기도 하던 시대였는데.... 잘 못 끌려갔다가 평생 휴우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시대였으니만치 진짜 목숨 걸지 않고서야 독립운동하기 쉽지 않죠.
15/08/03 06:17
음. 개인적으로 친일문제(나아가 친일파를 보는 시각에서)에 대해서,
단순히 친일을 나라 팔아먹은 매국행위. 그러니까 당연히 친일은 하면 안되는 것. 독립운동을 해야지. 이렇게만 생각하고 끝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은 '옳은' 행위고, 당위성을 따졌을 때는 '당연한' 행위이지만, 당시 식민지 시기에 살던, 당시 상황에 직면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행위였을지 의문입니다.(제 의도가 제대로 전달될는지 모르겠네요 이 문장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라던지 탈세 같은 행위들이 결국 나라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개인의 영달을 위한 건데요. 그러한 행위의 극단이 친일행위라고 봅니다. 그런데 당시 식민지 시기는 개인을 충분히 그런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환경이었죠. 부유층, 사회지도층을 떠나서,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창씨개명의 경우,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자에게 가해진 사회적 제재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씨하지 않는 자의 자제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에의 입학ㆍ진학을 거부한다. 2. 창씨하지 않는 아동에 대해서 일본인 교사는 이유없이 질책ㆍ구타하여 아동으로 하여금 부모에게 호소하게 하여 창씨시킨다. 3. 창씨하지 않는 자는 공사(公私)를 불문하고 총독부 관계의 기관에 일절 채용하지 않는다. 또 현직자도 점차 파면조치한다. 4. 창씨를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에서 처리하는 모든 사무의 취급을 하지 않는다. 5. 창씨하지 않는 자는 비국민 또는 무뢰한 조선인이라 단정하여 경찰수첩에 기입해서 사찰ㆍ미행 등을 철저히 함과 동시에, 또는 우선적으로 노무징용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며 식량이나 기타 물자의 배급대상에서 제외한다. 6. 조선어학회를 탄압하면서는 검속자에 대해, 창씨하지 않는 자는 조선독립을 기도한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하여 고문을 가하고, 억지로 청원서에 날인하게 하여 창씨를 출원(出願)하도록 한다. 7. 창씨를 하지 않는 자의 이름이 씌어진 화물은 철도국과 운송점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8.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면에서는 동장ㆍ이장에게 창씨의 책임을 지우고, 그 성적에 의해 지도ㆍ행정능력을 평가하여 출세ㆍ승진에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특히 1,2,4,5번을 참고하면, 지금으로 비유하면 아이가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못하고 학교에도 못 보내고, 이사를 해도 전입신고를 못하며, 창씨개명(1939년 11월) 당시는 전시체제라 배급경제가 이루어지고 있을 시기인데 배급에서 제외됩니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거죠. 생계 영위가 어려운 일반 민중에게는 더더욱 그렇구요. 그래서 결국 기한 내에 322만 호, 당시 인구의 80%가 창씨개명을 하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은 박경식, 「민족말살의 황민화정책」, 『한국사』13권, 한길사, pp.159~204에서 참고했습니다.) 제가 저 때로 갔다면 저는 80%에 들지 않았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제가 일제 식민지 시기 사람이었다면 독립운동 했을 거라고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창씨개명 여부로 친일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죠.) 다만, 중요한데, 친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친일파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당시 다들 쉽게 하던 친일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어렵고 험난한 길인 줄 알면서도(이런 단어 따위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다른 이들을 위해, 또 민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머나먼 땅에서 독립의 길을 선택한 분들에게 더욱 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때 살았더라면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테니, 그 길을 갔던 분들이 더욱 대단하게 보이는 거죠.
15/08/03 11:03
독립 운동을 했겠는가를 5공 때 독재정권을 상대로 학교 다니다 감옥 갈 각오 하면서 운동권에 속해 있었을까? 아니면, 현재 기준으로, 동료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파업 같은 일에 참여 한다거나 정부에 부당하다고 생각 하는 일에 대해 시위를 참여한다는 걸로 치환해서 생각해 볼 수 있죠.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위에 것들보다 훨씬 더 큰 실행력이 필요할 뿐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목숨까지 담보로 해야되니 더 어려운 일이테고요. 저는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독립 운동에 참여 못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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