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등장인물인 소동파. 이 분은 고려를 굉장히 싫어하셨던 분이죠.
※ 에피소드 1
(1089년)소동파가 항주(杭州)통판(通判)으로 있을 때, 고려의 조공 사신이 주군(州郡)의 관리를 능멸(凌蔑)하고, 당시 사신을 인도하는 관리들이 모두 관고(管庫 창고를 담당하는 관리)로서 고려 사신의 힘을 믿고 제 맘대로 날뛰어 예절을 지키지 않았다 하여, 사람을 시켜 이르기를,
“먼 지방 사람들이 중국을 사모하여 오니 반드시 공손하여야 할 터인데, 지금 보니 이렇게도 방자하니 이는 너희들이 잘못 지도한 것이라, 만일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마땅히 황제께 아뢰리라.”
하니, 인도하던 관리들이 두려워서 수그러졌다. - 《동란섭필(銅蘭涉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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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조공 사신이 송나라에 와서 중앙정부로 올라가는 창고를 헤집어 놓고, 또 길을 안내하는 관리들이 고려 사신의 힘을 믿고 깽판을 치자 이를 본 소동파가 빡쳐서 관리들보고 "고려 사신들 관리 똑바로 안하면 황제한테 이른다!" 라고 말합니다.
※ 에피소드 2
고려 사신은 폐백을 관리에게 보내면서 편지 끝에 날짜를 갑자(甲子)만을 썼더니, 동파는 이를 물리치면서,
“고려가 우리 조정에 신하로 자칭하면서 연호를 쓰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
하니, 사신은 글을 바꾸어 ‘희령(熙寧 당(唐)의 연호)’이라 쓰자, 그제야 체례(體禮)에 맞았다 하고 받았으니, 이것은 동파의 묘지(墓誌)에 실렸다. - 《동란섭필(銅蘭涉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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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사신이 황제에게 올릴 글에 송나라 연호를 무시하고 날짜만 달라 쓰자 이를 소동파가 보고 "너넨 왜 우리를 받들면서 우리 연호를 안쓰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고려 사신은 궁시렁 대면서 송나라 연호 대신 당나라 연호를 써서 넣었다고 하네요.
※ 에피소드 3
(1090년)원우(元祐) 5년, 2월 17일에 왕백호(王伯虎) 병(炳)을 만났더니 그는 말하기를,
“옛날에 추밀원(樞密院)예방(禮房)검상문자(檢詳文字)로 있을 때 비로소 고려 공안(高麗公案)을 보았는데, 처음에 장성일(張誠一)이 거란 이야기를 하면서 거란의 군막 속에 고려 사람이 있어 자기 나라 임금이 중국을 사모하고 있다는 뜻을 말하더라고 하는 말을 듣고 돌아와 이를 황제에게 아뢰었더니,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비로소 고려 사신을 불러 볼 뜻을 갖게 되었다. 추밀사(樞密使) 이공필(李公弼)이 뜻에 맞추어 친필로 문서를 황제에게 올려 고려 사신을 부르자고 청하여, 드디어 발운사(發運使) 최극(崔極)에게 명령하여 상인을 보내어 부르게 했다. 세상에서는 최극의 그른 것을 알면서도 공필의 잘못은 모르고 있으며 장성일 같은 자는 족히 이야기할 것도 없겠다.”하였다.
“회동제거(淮東提擧) 황실(黃實)의 말로는 고려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의 이야기로서, 보낸 선물 중에는 가짜 금은(金銀) 알이 있었는데, 고려인들은 모조리 깨뜨려 알맹이까지 쪼개 보니 사신들은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이때 고려 사람들은, ‘감히 우리가 오만한 것이 아니라, 혹시 거란 사람들이 보고 진짜로 여길까봐 걱정스러워서 그러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것으로 본다면, 고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보낸 선물을 거란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이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하고는 말하기를, 거란이 고려가 우리에게 내통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고, 더러는 다른 기회에 고려로써 거란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자도 있으니, 이 어찌 틀린 것이 아니랴.”하였다. - 《동란섭필(銅蘭涉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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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나라에서 고려에게 선물을 줬는데 그중에는 가짜가 섞여있었는데, 고려에서 혹시 가짜가 있는게 아닌가 하며 사신들 보는 앞에서 알맹이까지 다 깨버렸다고.
※ 에피소드 4
(1092년)원우(元祐) 7년에 (고려가) 황종각(黃宗慤)을 보내와 《황제침경(黃帝鍼經)》을 바치면서 구입해 가겠다는 서적이 매우 많았다. 예부상서 소식이 "맥적(貊狄, 고려를 낮춰 부르는 말)이 들어와 조공하는 것이 터럭만큼도 (송나라에) 이익은 없고 다섯 가지 손해만 있습니다. 지금 요청한 서책과 수매해 가는 금박(金箔)등은 모두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아뢰니, 조칙을 내려 금박만을 사서 (고려로)가져가도록 했다. 그러나 끝내 책은 사지 말라는 황제의 말을 쌩까고 《책부원귀(冊府元龜)》도 구입하여 귀국했다.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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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사신들이 송나라 황제에게 "우리 책좀 많이 사갈께요!"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동파가 이를 보고 아무것도 못사게 해야한다며 반대 하고 송황제는 책은 사지말고 금박만을 사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고려사신은 황제의 명을 무시하고 금박은 물론이고 책까지 가사갑니다.
※ 에피소드 5
(1100년)흠종(欽宗)이 즉위하자 (고려의) 축하 사신이 명주(明州)에 도착하였다. 어사(御事) 호순척(胡舜陟)이 “고려(高麗)가 50년 동안이나 국가(國家)의 재정을 궁핍하게 하고 민생을 피페하게 했으니 정화(政和) 이후로는 사신이 해마다 와 회(淮)· 절(浙) 등지에서는 (고려 사신이 오는 것을) 괴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고려가 과거에 거란(契丹)을 섬겼으므로 지금에는 반드시 금(金)나라를 섬길 터인데, 그들이 우리의 허실(虛實)을 정탐하여 금나라에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고려의 사행(使行)을】 중지시켜 오지 말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아뢰었다.(중략)
고려가 거란에 대해 한 해에 조공(朝貢)을 여섯 번이나 하였지만 고려의 가렴주구(苛斂誅求,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뺏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란에서는 항상, “고려는 바로 우리의 노예인데 남조(南朝)는 무엇 때문에 고려를 후하게 대우하는가?” 라고 하였다. (하지만 실상은) 고려의 사신이 거란에 이르면 더욱 거만하고 포학스러워 관반(館伴)이나 공경(公卿)의 비위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함부로 머리채를 잡아 흔들거나 채찍으로 쳤다. 또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고려 인들은) 반드시 다른 일을 핑계하여 송나라 사신에게 와서 정탐하고 송 황제가 하사한 물건들을 나누어 가져갔다. - 《송사》 외국열전 고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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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숙종 재위 시기, 고려와 수교한지 50년동안 고려에게 하도 삥뜯겨서 백성들이 힘들어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고, 고려 사신이 거란에 조공을 바치지만 정작 거란에서 고려가 삥뜯는 물자는 말할수 없을 정도. 거기다 거란에간 고려 사신은 거만하고 포악해 기분이 나쁘면 아무 머리나 붙잡고 채찍으로 후려쳤다고 합니다.
※ 에피소드 6
10일.왕이 친히 순종의 사당에 제사를 지냈다.
○요나라에서 어사중승(御史中丞) 이가급(李可及)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하게 했는데, 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하자 사람들이, "사신의 이름은 가급(可及)인데 어찌하여 불급(不及)이 되었는가?" 라고 조롱했다. - 《고려사》선종 2년(1085) 9월 10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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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종의 생일을 맞아 거란에서 사신을 보내왔는데 날짜를 맞추지 못해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고려 사람들이 거란 사신을 "너 이름은 뭐든 가능하다(可)라는 뜻의 이름인데 왜 날짜는 못맞췄냐(不)"라고 놀립니다.
깡패국가 고려.txt
참고로 이시기 고려가 이렇게 막나갈수 있었던 것은 고려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그시기 고려는 요나라와 송나라가 함부러 할수가 없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거란은 1019년 귀주대첩때 박살나고나서 강동 6주를 포기하는 등 고려에 대해 이전처럼 강하게 나서지 않았으며, 송나라는 거란의 위협을 막기위해 거란의 배후를 공격할수 있는 고려와 1070년에 손을 잡습니다. 그러니 양 국가들은 고려가 뭔 짓을 해도 그냥 넘어갈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저때와 일치하는 고려의 명군 라인(8대 현종부터 16대 예종까지)시기를 거치며 고려를 무시못할 나라를 만들어 냈죠.
이 외에도 찾아보면 꽤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일화들이 크크크
출처 - 엔하위키 &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