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4/22 22:22:52
Name 토니토니쵸파
Link #1 http://vitaminjun.tistory.com/88
Subject [일반] 어떤 노부부 이야기.
한꺼번에 다양한 종류의 절망감과 슬픔에 사로잡혀 힘들었던 어떤 날의 이야기다.

병동에서 가끔 보았던 노부부가 있었다.
할머니는 폐암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암세포들은 폐에서 전신으로 퍼져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간병인 없이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했다.
사실 간병인을 쓸 여유가 없었다.
가족은 없었고, 병원비도 근근히 내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대장암이었다.
그나마 할머니보다는 몸상태가 좋았기에 간병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은 주치의가 아닌 나에게도 전해졌다.

입원한 상태에서도 할머니의 몸 상태는 나빠져만 갔다.
통증은 강해지고 의식을 잃을 때도 있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갈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만 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옆을 지켰다.
그렇게 입원기간은 늘어갔다.

병동 간호사들은 새벽부터 환자들의 혈압, 맥박등의 활력징후를 정기적으로 체크한다.
그 날도 그 병실을 담당하던 간호사는 할머니의 활력징후를 확인했다.
혈압과 맥박은 전혀 측정되지 않았다.

'블루코드. 블루코드. O병동. O병동'
'블루코드. 블루코드. O병동. O병동'
스피커에서 어둑한 병원을 깨우는 날카로운 소리가 터저나왔다.
O병동에 환자가 있는 주치의들과 담당 의료진들은 병동으로 달려갔다.

의료진들이 처치실로 이동된 할머니를 확인했지만 심폐소생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DNR(Do Not Resuscitate, 소생거부) 동의를 받은 환자이기도 했지만,
사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던 것이다.
어수선한 병동에선 항상 할머니 곁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알아챈 의료진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할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할아버지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간호사 P는 아침교대를 위해 병원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외부에 꾸며 놓은 정원을 지날 때 사람의 형상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였다.
그는 나무에 목을 맨 상태였다.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고 결론은 금방 나왔다.
할아버지는 자살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 의해 죽었다.
질식사였다.
병원내부와 주변을 촬영하던 CCTV에서 할아버지의 행적을 볼 수 있었다.
한밤중에 병실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병원화단으로 내려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목을 매었다.
유서도 발견되었는데 '고생하는 아내를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병원비를 내지 못해서 죄송하다'라는 글이 짧게 있었다고 했다.


주치의는 아니었지만 의사로서, 한명의 사람으로서,
한꺼번에 다양한 종류의 절망감과 슬픔에 사로잡혀 힘들었던 어떤 날의 이야기.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마스터충달
17/04/22 22:25
수정 아이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거기에 "존엄"을 반드시 집어넣고 싶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사악군
17/04/22 22:34
수정 아이콘
남은 사람들에겐 슬픈 일이지만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도리를 아는 분들이 함께한 평생이셨으니 두분의 삶은 그래도 행복한 생이셨을 겁니다. 두분의 명복을 빕니다.
이쥴레이
17/04/22 22:37
수정 아이콘
하아..
아점화한틱
17/04/22 22:45
수정 아이콘
먹먹하네요...
부들부들
17/04/22 23:20
수정 아이콘
아이고... 먹먹하네요 진짜...
EmotionSickness
17/04/22 23:22
수정 아이콘
And now, we're one, in everlasting peace.....
가만히 손을 잡으
17/04/22 23:38
수정 아이콘
세상을 살고 가면서 마지막 보내는 며칠의 시간이 삶을 마무리하고 정의하는데 가장 중요한거 같아요.

명복을 빕니다.
재간둥이
17/04/22 23:51
수정 아이콘
얼마전 할머니께서 췌장암으로 곁을 떠나셔서 남일같지 않은 이야기네요. 환자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건 참 가슴아픈일이지요. 마지막 선택을 하신 할아버지의 결정에 이루 말할수없는 슬픈 감정을 느낍니다.
Carrusel
17/04/22 23:53
수정 아이콘
제가 두 분의 심정을 모르고 이런 말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한 분은 지극한 사랑을 받았고 또 한 분은 그만한 사랑을 주었으니 먹먹한 가슴이 조금은 위로가 되네요.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별개로 저는 독신주의자라 황혼기가 올 30~40년 뒤에는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조력자살이 합법화되길 기대합니다..
타츠야
17/04/23 00:18
수정 아이콘
두 분 모두 명복을 빕니다. 토니토니쵸파님도 힘내세요.
신지민커여워
17/04/23 00:20
수정 아이콘
참...
-안군-
17/04/23 00:34
수정 아이콘
두 분은 한날 한시에 가자는 약속을 지키신 걸 겁니다... ㅠㅠ
왠지... 죽음을 넘어선 노부부의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펠릭스
17/04/23 01:32
수정 아이콘
슬퍼할 일이 아닌거 같습니다.

며칠의 더 이어지는 삶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긍지가 중요했던 거지요. 두 부부에게는.

저런 영혼의 짝을 만나는 것도 복이라 생각합니다.
Fanatic[Jin]
17/04/23 01:34
수정 아이콘
아...
17/04/23 01:52
수정 아이콘
먹먹해지네요.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 가소서.
냉면과열무
17/04/23 13:18
수정 아이콘
슬프고 먹먹하고. 좋은 곳으로 가셔서 행복하게 두 분이 함께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246 [일반] 인류의 미래를 여는 PGR러! [30] 隱患7690 24/04/07 7690 3
101244 [일반]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나늬의 의미 [4] meson5300 24/04/07 5300 1
101243 [일반] 2000년대 이전의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 [54] Story7343 24/04/07 7343 16
101241 [일반] [스포]기생수 더 그레이 간단 후기 [31] Thirsha10198 24/04/06 10198 2
101240 [일반] 웹소설 추천 - 배드 본 블러드 (1부 완결) [10] 냉면냉면5454 24/04/06 5454 4
101239 [일반] 로컬 룰이란게 무섭구나... [116] 공기청정기11749 24/04/06 11749 3
101238 [일반] 슬램덩크 이후 최고의 스포츠 만화-가비지타임 [28] lasd2416476 24/04/06 6476 11
101237 [일반] F-4 팬텀II 전투기는 올해 6월 우리 공군에서 완전히 퇴역합니다 [35] Regentag5888 24/04/06 5888 3
101236 [일반] [방산] 루마니아, 흑표 전차 최대 500대 현찰로 구입가능 [69] 어강됴리10491 24/04/05 10491 5
101234 [일반] 재충전이란 무엇인가 [5] Kaestro6036 24/04/05 6036 8
101232 [일반] 제로음료 한줄평 (주관적) [138] 기도비닉10260 24/04/05 10260 11
101231 [일반] [강스포] 눈물을 마시는 새 고이(考異) - 광선세계의 그리미는 누구인가 [7] meson4714 24/04/04 4714 4
101230 [일반] 신화 VS글 [23] 메가카5814 24/04/04 5814 1
101229 [일반] 저희 팀원들과 LE SSERAFIM의 'SMART'를 촬영했습니다. [23] 메존일각5509 24/04/04 5509 11
101227 [일반] 내가 위선자란 사실에서 시작하기 [37] 칭찬합시다.7449 24/04/03 7449 17
101225 [일반] 푸바오 논란을 보고 든 생각 [158] 너T야?12190 24/04/03 12190 54
101224 [일반] [일상 잡담] 3월이 되어 시작하는 것들 [6] 싸구려신사3433 24/04/03 3433 8
101222 [일반] [역사] 총, 약, 플라스틱 / 화학의 역사 ④현대의 연금술 [17] Fig.13699 24/04/03 3699 17
101221 [일반] 우리가 죽기 전까지 상용화 되는 걸 볼 수 있을까 싶은 기술들 [82] 안초비11431 24/04/02 11431 0
101219 [일반]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 - B급이지만 풀팩입니다. [32] aDayInTheLife6694 24/04/02 6694 2
101218 [일반] RX 7900XTX 889 달러까지 인하. [16] SAS Tony Parker 7473 24/04/01 7473 1
101217 [일반] 한국 경제의 미래는 가챠겜이 아닐까?? [27] 사람되고싶다8439 24/04/01 8439 12
101216 [일반] [패러디] [눈마새 스포] 케생전 [8] meson4369 24/04/01 4369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