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4/20 11:44:47
Name 깐딩
Subject [일반] 동물의 고백(6)
그 이후로 회사는 정말 잘 다니고 있다.

후배와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전보다 더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선배가 남친 자랑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난 그저 즐겁게 회사에 다니며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잔잔한 생활을 이어왔다.

여친이야 뭐 생길 때 되면 알아서 생기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와- 임마 이거 진짜 개노답이네"

어느 날 가진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니 대학 때 연애할 때도 가만있으면 여자가 오드나?

니가 임마 니 좋아하는 사람 찾아다녀야지 가만있으면 느그 집 앞으로 꽃다발 들고 찾아올꺼 같나?"

너무나 설득력 있는 말이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가만 듣고만 있자니 무안한 마음에 뭐라도 대꾸를 해야겠다 싶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길바닥 싸댕기면서 누구 번호 따고 다닐 그런 상판은 아니잖아"

친구가 미간을 찌푸린다

"누가 임마 번호따고 댕기랬나? 운동도 좋은데 주말이나 날 좋은날은 사람 많은데 좀 댕기고 해라

누굴 만나야 썸도 생기고 하지 맨날 회사 운동 집, 회사 운동 집 하는데 누굴 만나서 연애를 하노?"

"..."

말없이 술을 들이마셨다.

쓰다.




난생처음으로 소개팅 앱을 받았다.

모임 앱도 다운 받았다.

쪽팔리지만 회사 여직원들에게도 소개해줄 사람 있으면 소개만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소개팅 앱에 접속하여 느낌이 괜찮다 싶은 분들에게 쪽지도 날리고

회사, 집 근처 모임이 보이면 주저 없이 가입하여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게 작년 10월경이다.

그 당시 사용했던 소개팅 앱들은 정말 여왕벌들이 꿀벌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들만 있었다.

남자 글은 조회 수도 50이 채 안 되고 댓글도 없었다.

여자 글은 실시간으로 조회 수가 몇백을 돌파하고 댓글도 수백개가 넘어가는건 우스웠다.

그런데도 그 여자들은 좋은 남자가 없다며 매일같이 글을 쓰며 여왕벌 놀이를 하더라.

얼마 못 가 소개팅 앱은 그냥 심심풀이로 접속하는 놀이가 되었지만 정말 그런 앱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것 같다.




그래서 소개팅 앱보다는 모임 앱을 자주 이용하여 많은 사람과 만나고 다녔다.

물론 가입 전 남녀 성비를 따지고 연애 가능하다는 모임만 골라서 들어갔다.

세상엔 어찌나 잘생기고 키 크고 능력 있는 남자들이 많은지

감히 나 따위가 외적으로 그들에게 비벼볼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말로는 매일 '나는 외모 안 봐!' 라고 말하고 다녔으나

꼴에 나도 눈이 달렸다고 예쁜 여자들이 먼저 보이고 기억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그냥 편하게 술잔을 잘 받아주며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천천히 접근하자는 생각으로 모임을 다녔다.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취직해서 올라온지 3년째 돼가는 자취생입니다.

직장도 집도 바로 근처에 있어서 근처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모임을 찾다 보니 여기로 오게 됐네요.

취미는 운동이고 좋아하는 건 노래방입니다."

어디를 가도 첫인사 멘트는 항상 고정이었다.

노래방을 좋아하는 신입이 들어왔으니 오늘 2차는 노래방을 가자고 한다. 항상 그랬다.

노래방을 같이 가면 사람들이 날 보고는 깜짝 놀래서 박수치며 웃는다.

"와 이번 신입 대박이야 놀줄아네!"

"나 저렇게 랩하면서 춤추는 사람 실제로 처음봐 대박이야 크크"

첫인상은 말도 못 하고 얌전하고 진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노래방에 오니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냐고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다들 난리다.

아니,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면서 춤추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죠?

역시 요즘은 노래방에서 분위기 띄우는데 최고는 '보이비-호랑나비' 가 제일 잘 먹히는것 같다.




"오빠는 여자친구 없어요?"

"그래 맞아 너 여자친구 없어?"

모임 사람들이 슬슬 이런 걸 물어오기 시작했다.

"네 없어요. 서울 올라와서 여친 한번도 안 사귀어 봤어요.

여친 모집 중이니까 들이댈 사람 들이대시고 소개해줄 사람 있음 소개해주세요"

모임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이상하다 이렇게 농담도 잘하고 잘 노는데 왜 여친이 없지?"

그 전에는 제가 사람이 아니라 게으른 동물이었으니까요

라고 말하기엔 내 과거를 까발리기가 너무 싫어서 그저

"여자도 눈이 달렸는데 저같이 못생긴 남자 좋아하겠어요? 크크"

라고 대답했다.

"아니 안 못생겼는데 뭐지? 진짜 없어?"

"아 진짜 행님, 트루 없다니까요"

"그럼 나 아는 사람이랑 소개팅 한번 할래?"

드디어 올 것이 왔군

29년 인생 첫 소개팅인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MiguelCabrera
17/04/20 13:15
수정 아이콘
흐으 그 후배랑 잘 되길 바랬는데...
점점 재밌어지네요
17/04/20 16:35
수정 아이콘
그래서 다음편에는 커플이시겠다? 이건가요? 크크
17/04/20 18:45
수정 아이콘
이제 슬슬 대나무 주으러 가면 되나요? 크크
전광렬
17/04/20 20:10
수정 아이콘
소개팅이 흥하면 재미가 없어지는데....
대충 아는 사람이 시켜주는 소개팅이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슈준을 명확히 보여주는 거라서 과연 어떤 분이 나왔는지 기대됩니다.
eternity..
17/04/21 01:25
수정 아이콘
죽창이 어디있더라? 주섬주섬... 여초 사이트 ogr에서 이런 달달한 글 쓰시면 죽창 날라..............기기 이전에 완전 흥미진진 합니다 크크 부디 해피엔딩 볼수있길 원합니다.
이시하라사토미
17/04/21 09:03
수정 아이콘
다음편 다음편이 시급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207 [일반] [고질라X콩] 간단 후기 [25] 꾸꾸영4693 24/03/31 4693 2
101206 [일반] [팝송] 제이슨 데룰로 새 앨범 "Nu King" [4] 김치찌개3327 24/03/31 3327 0
101205 [일반] 우유+분유의 역사. 아니, 국사? [14] 아케르나르4230 24/03/30 4230 12
101204 [일반] 1분기 애니메이션 후기 - 아쉽지만 분발했다 [20] Kaestro4394 24/03/30 4394 2
101203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6) [3] 계층방정4309 24/03/30 4309 7
101202 [일반] [스포] 미생 시즌2 - 작가가 작품을 때려 치우고 싶을 때 생기는 일 [25] bifrost8523 24/03/30 8523 8
101201 [일반] 정글 속 x와 단둘이.avi [17] 만렙법사4611 24/03/30 4611 17
101200 [일반] 삼체 살인사건의 전말 [13] SNOW_FFFF11766 24/03/29 11766 3
101199 [일반] 갤럭시 S23 울트라 One UI 6.1 업데이트 후기 [33] 지구돌기8073 24/03/29 8073 3
101198 [일반] 전세계 주식시장 고점신호가 이제 뜬거같습니다(feat.매그니피션트7) [65] 보리야밥먹자14844 24/03/29 14844 1
101197 [일반] 8만전자 복귀 [42] Croove8678 24/03/29 8678 0
101196 [일반] 웹소설 추천 : 천재흑마법사 (완결. 오늘!) [34] 맛있는사이다5726 24/03/28 5726 0
101195 [일반] 도둑질한 아이 사진 게시한 무인점포 점주 벌금형 [144] VictoryFood9508 24/03/28 9508 10
101194 [일반] 시리즈 웹툰 "겜바바" 소개 [49] 겨울삼각형6560 24/03/28 6560 3
101193 [일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노스포) [4] aDayInTheLife4372 24/03/28 4372 3
101192 [일반] 고질라 x 콩 후기(노스포) [23] OcularImplants5916 24/03/28 5916 3
101191 [일반] 미디어물의 PC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81] 프뤼륑뤼륑9752 24/03/27 9752 4
101190 [일반] 버스 매니아도 고개를 저을 대륙횡단 버스노선 [60] Dresden12068 24/03/27 12068 3
101188 [일반] 미국 볼티모어 다리 붕괴 [17] Leeka11315 24/03/26 11315 0
101187 [일반] Farewell Queen of the Sky! 아시아나항공 보잉 747-400(HL7428) OZ712 탑승 썰 [4] 쓸때없이힘만듬4757 24/03/26 4757 5
101186 [일반] [스포없음] 넷플릭스 신작 삼체(Three Body Problem)를 보았습니다. [52] 록타이트9791 24/03/26 9791 10
101185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5) [3] 계층방정6571 24/03/26 6571 8
101184 [일반] [웹소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 추천 [56] 사람되고싶다7840 24/03/26 7840 2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