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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4/11 23:19:52
Name 안다나
Subject [일반] 북한이 지지한 60년대 미국 급진주의자들
https://t.co/jE2YAk7LAa


신좌파 상당수가 김일성의 반제국주의 이념 공유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 베트남 전쟁에 관한 불만이 증가함에 따라 점화된 정치 혁명이 미국을 뒤덮었다. 대학 캠퍼스의 학생들은 ‘마오 주석 어록’의 구절들을 인용했고 흑표당과 같은 급진주의 조직들은 각 지역 사회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투쟁했다.

이러한 격동기에 북한의 독립적인 면모와 민족 자결에의 헌신은 급진주의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혁명 거리의 새로운 바람은 일방통행으로 불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자 했고 푸에르리코 독립 지지 운동가들, 백인 급진주의자들, 흑표당원들 등 다양한 극좌익파들에 손을 뻗쳤다.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운동
1964년 4월 21일 노동신문 1면에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푸에르토리코의 독립 지지 대학생 연합(PRIUSA) 회원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진이 실렸다. 기사는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자들로부터 국가적 독립을 이루고자 하는 푸에르토리코 국민과 학생들의 정당한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고 서술했다.

PRIUSA의 회원들은 북한을 방문해 평양 청년 학생 연맹에 연설을 헌정했다. 푸에르토리코 독립 운동가들과 북한 사람들과의 이 첫 번째 만남은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이었으며 양측은 이 동반자 관계가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했다.

북한이 푸에르토리코가 무척 필요로 했던 그들 조직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제공했던 한편 푸에르토리코 분리주의자들은 북한 최대의 적 미국의 영토 내에서 불안을 증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1966년부터 북한은 9월 23일을 푸에르토리코와의 연대를 기념하는 공식적인 날로 지정했다. ‘평양신문’은 “형편없고 교활한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푸에르토리코를 무참하게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캐리비안 해의 이 작은 섬나라를 쿠바와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침략하기 위한 자신들의 군사 공급 기지로 전락시켰다”고 역설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는 푸에르토리코의 국민이 그들의 용맹한 투쟁을 계속해 보다 큰 승리를 얻으리라고 확신한다.”


북한과 연맹한 푸에르토리코 독립 지지 그룹 FALN의 깃발



조셉 버뮤데즈의 책 ‘북한과 테러리즘’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의 세 혁명 그룹들인 독립 지지 운동(MPI), 푸에르토리코 사회주의 정당(PSP), 민족 해방 군대(FALN)는 냉전 기간 북한과 접점을 구축했다.

쿠바는 이 교류를 촉진했다. 1969년 1월 MPI 국제업무 이사 카를로스 패딜라 로드리구에즈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 둘이 악수하는 사진은 북한 국영 매체에 실렸다.

북한이 푸에르토리코 조직에 정기 기고란의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기는 했지만 북한으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하지만 버뮤데즈에 따르면, FALN의 몇몇 일원들은 1970년대 말 북한으로부터 게릴라전 훈련과 무기를 제공받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푸에르토리코 사회주의 조직들로부터의 축전들이 오늘날에도 조선중앙통신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북한과 푸에르토리코 독립 운동가들의 연합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없다.



백인 급진주의자들
1960년대 말 미국 대학가에서 마오가 혁명을 꿈꾸는 이상주의 청년층으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동안 김일성 역시 잊히지 않았다. 실제로 악명 높은 웨더맨 이외에 백인 급진주의자들 중 가장 큰 규모의 그룹이 하버드 대학 캠퍼스 근처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 ‘주체 집단’을 구성했다. 이 그룹은 두 채의 집에서 생활했는데, 각 집에 열다섯 명에서 스무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식품 조합과 서점을 운영했다.

이 그룹은 ‘주체’라는 이름의 신문을 발간했다. 이 신문은 표지에 다음과 같이 표시했다. “주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가진 것을 사용하라.” 김일성을 인용한 말 역시 포함됐다.


김일성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주체’ 잡지의 한 단락.



자립적인 국가로서 북한의 이미지는 이 젊은 백인 급진주의자들에게 확실히 호소력 있었고 이들의 신문은 주로 흑표범당과 흑인 자유 투쟁에 초점을 맞춘 내용을 담았다.

이후 1970년 11월 경찰이 ‘주체 집단’의 집을 급습했고 몇몇 구성원들은 마취제와 소형 화기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 하버드의 학생 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리차드 엘윈에게 이 판결에 관해 질문했다.

엘윈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적발되었기 때문에 괴짜들과 운동권 사람들,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더욱 많은 지지를 얻고 있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완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주체 집단’이 유일하게 미국 내에서 대부분이 백인으로 구성된 북한 옹호 급진주의 조직이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 시의 한 미국 지성인 단체는 1971년 조미우호홍보센터(AKFIC)를 만들었다.

맨해튼의 5번가 사무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이 조직의 회원은 대략 70명인데 여기에는 저명한 교수 하워드 진과 노암 촘스키도 있다. AKFIC는 미국 군대의 한국 주둔에 저항했고 “우리는 빨치산이다… 우리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북한 인민들이 일군 위대한 성과를 100% 지지하고 조선국을 재통일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100% 후원한다”고 진술했다.

브랜든 구치에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AKFIC 회원들이 미국 병력의 한반도 철수에 대한 미국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기를” 희망했기 때문에 AKFIC를 후원했다. 북한은 보다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주체 집단’과는 다른 AKFIC를 미국 내에서 북한의 소프트파워를 구축하는 운동의 주축으로 적극 포섭했다.



흑표당
정보 장관 엘드리지 클리버의 진두지휘에 따라 흑표당 역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확립했다.

1969년 클리버는 평양의 세계 혁명 기자 회의에 초대받았다. 이 방문에서 클리버는 북한의 사회주의 삶에 매혹되었다. 클리버는 머물고 있던 평양의 호텔에서 오클랜드 흑표당 본부에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조선인들은 미국 바깥 세계에서 가장 혁명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은 절대 혀를 깨물지 않는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매우 혁명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반 제국주의적 태도이며 단언컨대 그들은 진심이다”라고 썼다.


엘드리지 클리버의 아내 케슬린 클리버는 북한에서 출산했다. | 사진=하르시타 싱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클리버는 북한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발견했다며 극찬했고 김일성의 업적을 흑표당원들에게 퍼뜨리기 시작했다. 클리버는 이후 임신한 그의 아내 캐슬린 클리버를 포함한 다른 흑표당원들을 북한으로 데려갔다. 캐슬린 클리버는 평양의 한 병원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일설에 따르면 김일성의 아내가 그 아이에게 “조주-영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1972년 엘드리지 클리버는 김일성의 연설들로 구성된 책의 발간을 도왔다. ‘주체! 김일성의 연설들과 저작들’이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클리버가 작성한 서문이 실렸다.

클리버는 서문에서 말한다. “나는 하나의 큰 물줄기를 가진 하나의 큰 땅덩어리인 지구를 본다. 나는 하나의 영토를 보고 김일성 동지가 이 영토의 모든 인민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나는 그들이 그의 말을 듣고 있고 그가 말하고 있는 바를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우리가 그의 시각을 갖지 않았기에 그가 보는 만큼 명확히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일단 그가 그것을 가리키기만 하면 우리 역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위대한 영도자에 대한 그의 찬양에도 불구하고 클리버는 1970년대 중반 FBI의 흑표당 해산 이후 북한과 연락이 끊겼다.



오늘날
맨해튼 5번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북한의 지원을 받던 단체들은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북한의 동조자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72세 한국인 켄 노 씨는 북한 옹호 온라인 뉴스 사이트인 ‘민족 통신’을 운영한다. 더불어 뉴욕시의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재미교포들이 북한으로 체제 선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소위 ‘대안 우파’의 비주류들은 평양과의 연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 내 북한 옹호 모임들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그들이 여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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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초보
17/04/11 23:33
수정 아이콘
김일성이 전쟁만 안일으켰으면 당시에 주체사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해는 해줄 수 있겠지만...
아점화한틱
17/04/11 23:37
수정 아이콘
허허 공산주의가 저렇게 거지꼴을 못면하는걸 똑똑히 보고도 정신못차리네요.
절름발이이리
17/04/12 00:50
수정 아이콘
저 시기엔 마오쩌둥이나 김일성의 실체가 알려지기 전이라 서구 좌파들에게 평이 좋았죠.
프로취미러
17/04/12 05:16
수정 아이콘
멀리 서구까지 갈 필요 있겠습니까... 우리 리선생님도...
아이군
17/04/12 00:51
수정 아이콘
1. 저 때가 북한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게, 저 때가 북한의 전성기였던 이유는 김일성 수령님의 위대한 영도력때문이 아니고, 당시 경쟁이 붙기 시작한 중공과 소련 사이에서 원조 따먹기를 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때 원조금을 받아서 무려 [해외 투자]라는 걸출한 짓을 했다는 점이, 지금 북한 경제가 왜 요모양 요꼴인지를 알 수 있죠. (덤으로, 박정희가 미국과 일본의 원조금으로 비자금도 만들고 덤으로 뿌리고 재벌도 키우고 등등의 짓거리를 했지만, 적어도 허공에 날리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래도 김일성 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착한 시바스리갈?)

2. 그 후로는 아시다시피,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부터 중국의 원조부터 시작해서 하나씩하나씩 원조금이 짤려 나갔고, 그 때마다 북한 경제는 치명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소련이 대충 망하면서 북한도 같이...

3. 저는 의외로 박정희를 높게 치는데, 그게 뭐 훌륭한 지도력이 있었다거나 뭐 이런 것보다, 삽질을 별로 안했다는 겁니다. 경제 성장에 독재가 필요하다는 고사하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마저도 논파당한지 오래지만, 독재가 경제를 말아먹을 수 있다는 진리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박정희가 금으로 된 변기를 만들지 않았다거나, 마릴린 먼로와 염문을 뿌리지 않았다거나, 뉴욕 타임즈에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광고를 띄우지 않았다거나, 자기 이름을 찬양하는 노래를 국민이 부르지 않겠했다는 것에 감사해야 됩니다. 진짜루요.
도들도들
17/04/12 09:31
수정 아이콘
1960년대까지의 역사를 기준으로 보면 저런 반응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이 지구의 수많은 좌파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는걸요. 물론 지금은 흘러간 옛 노래지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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