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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30 10:31:28
Name 델핑
Subject [영화] 히든 피겨스 - 소수자로서 본 감상
엊그제 애인이 휴가를 내면서 보러가자고 한 영화가 히든 피겨스 였습니다.
저는 요 십 여 년 간은 딱히 영화 를 많이 보지 않아서,
무슨 영화인지 아무 정보도 없이 가서 보게 됐었죠.




영화내용은  60년대 초반에, NASA 에서 근무하던 세 명의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해서 얘기 합니다.
수학자, 엔지니어, 초기 컴퓨터 관리자 등에 대해서요.

이 영화는 일상을 비추는 내용 상당수가 흑인들이 주인공이다보니 흑인들을 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무언가 알게모르게  내 자신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선 머리 나쁜 흑인도, 시끄럽기만한 흑인도, 뭔가 사고만 치는 흑인도 나오질 않습니다.
주인공 세 명은 모두 똑똑하고 지혜롭고 진취적이며 주체적 인물 들이죠.
흑인 아이들은 귀엽게 그려지고,  흑인 가정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일상을 보여줍니다.
당연한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영화 속에선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그 모습들이요.
그걸 보고 있으면,  수 십 년 간 봐왔던 영화 속의 전형적인 흑인들의 모습들로 인해
소수자인 저 역시 알게 모르게 또 다른 편견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구나 라고 깨닫게 되더군요.




영화에선  1960년 대 당시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 들이 일상에서 존재했는 지 보여줍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들이고,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저렇게 말 할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장면들임에도, 영화 속에선 너무 당연하게 그런 일상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 차별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느끼는 태도도 다 다르게 보여주고요.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길 원하고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안주하길 바라죠.

물론, 영화 속에서도  더 높은, 더 권력을 가진 백인의 관대함에 의해 결국 그들은 기회를 붙잡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시는 분명한 차별이 만연된 사회였고 결국 누군가 기회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의 힘만으론 분명 불가능한 일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영화 속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백인 여성 관리자가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  왜 자꾸 나오려 그러냐,  그냥 그대로 있으면 돼 "

"  난 자기들에게 악감정이 없어 "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저로선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위에 대사는  대놓고 차별받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주인공에게  말하는 부분이고

아래 대사는 그 시절에는 당연할지 모르는  차별하는 행동과 언행을  계속 해와놓고
자신은 그걸 인지하지 못 한채  난 아무 악의 없다고 말하는 부분이죠.

저 말 들은 제가 살면서 수도 없이 이성애자들에게 듣던 얘기 들 입니다.
왜 자꾸 니들의 권리를 가지려고 그러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라거나
얼마 전 테넌바움님의 글에서도 다뤄졌듯이
이미 말과 행동에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해놓고  '나는 동성애자들을 싫어하진 않지만' 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합리화 하는 분들의 말 들을 볼 때 말이죠.


영화 속은 60년 대 초를 비춰주며,  이 당시에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심했으며
이들이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갔느냐를 보여줍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갈 땐, 역시나 주인공들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 지 짤막한 몇 마디 글귀로 보여줍니다.
90대가 된 그들도 50년 전엔 몰랐을 거에요. 설마 흑인이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소수자인 저로선 이게 아직도 저희에겐 영화 속과 비슷한 현실이라는 게 절실히 와닿더군요.
저들은 결국 차별을 극복하고 개인적인 삶에서 성공했고 쟁취해냈지만,  저희는 아직 출발점에서 나온지 얼마 안됐다는 점에서요.
(물론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은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고 똑같은 선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요.)


50년 뒤 쯤이면,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영화가 만들어질 지 모르죠.
지금 이 시기의 차별들이 얼마나 황당하고 이상한 것들이었는지  비추어질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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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30 10:38
수정 아이콘
지금도 차별이 없어진 시대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서 참 답답한 심정이 많이 들더라구요...
올해 1분기 본 영화 중 가장 런닝타임이 짧게 느껴진 영화였습니다 ㅠㅠ
17/03/30 10:39
수정 아이콘
그렇지요. 그 여성 세분은 설마 대통령이 흑인이 될 지는 60년 대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라고 썼는데,
동시에 그 분들은 2020년이 다가온 지금도 아직 인종차별이 존재할 거라고도 생각 못 하셨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 또 답답해집니다.
17/03/30 10:49
수정 아이콘
답답함과 동시에 사이다도 느껴지고.. (본부장님 짱 ㅜㅜ)
또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를 봤네요.
17/03/30 10:58
수정 아이콘
뒤집어 얘기하면 케빈 코스트너 같은 상관이 없었다면 캐서린 같은 사람은 능력이 있어도 인정받기 더 힘들었다는 얘기니까요.

개인적으론 ibm 주임이된 분이 제일 대단해보이더라구요
17/03/30 11:05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그런 생각도 했었네요. 사이다를 느끼면서도 씁쓸한 지점이 그것이었던거 같애요.
실화 바탕이라고 알고 있는데 케빈 코스트너 역할의 사람은 실제로 어땠을까도 궁금해지더군요.
17/03/30 12:59
수정 아이콘
듣기론, 캐서린 의 실제 인물은 유색인종 화장실이 아니라 꿋꿋이 백인화장실을 사용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여러가지로 각색이 있었겠죠
The HUSE
17/03/30 11:19
수정 아이콘
실화가 주는 감동은 있었지만,
영화적으로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천재들 얘긴줄 알았는데...
17/03/30 11:28
수정 아이콘
왜요.... 초천재인 쉘든도 NASA 에 가면 아집만 있고 아랫사람 공적 훔쳐가는 평범한 인간이 되는 얘기자나요
The HUSE
17/03/30 13:08
수정 아이콘
쉘든이 조금 어색해보이더군요. 크크
마지막에 한건 해줄지 알았는데...
17/03/30 12:20
수정 아이콘
사실 '난 소수자를 싫어하진 않지만 여태까지 소수자들은 목소리를 못 내 왔으니 앞으로도 나 살아있는 동안은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어. 물론 그 와중에 내 옆에 그런 사람 한두 명 있으면 개인적으로 친한 척 정도는 해주면서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할 용의는 있지만' 이라는 사람은 그 소수자가 여성이든 흑인이든 동성애자든 멕시칸이든 대상만 바뀔 뿐,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인간의 본능 아닌가 싶어요.
17/03/30 13:00
수정 아이콘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 보다 멀리하는 것이 본능에 가까운 심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대놓고 욕하는 포비아와 이해하는 척하면서 들어보면 비슷한 얘길 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어느 쪽이 더 싫은 지 모르겠습니다.
도로시-Mk2
17/03/30 19:06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보영님
17/03/30 22:07
수정 아이콘
얼마 전 자게에 타네바움님 글에도 몇분 보였죠.
사막여우
17/03/30 15:10
수정 아이콘
때론 당연한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란걸 깨닫기가 어렵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도 괴리가 있구요...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7/03/30 15:47
수정 아이콘
소수자들도 다른 소수자들 차별하는 경우 있는거 보면 '다르다'라고 판단된 대상에 대한 인간 본능인거 같습니다. 이성의 힘이 그래서 중요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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