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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3/28 12:58:42
Name Neanderthal
Subject 영어의 자존심에 실금이 갔을 때...
영어로 문장을 쓸 때 전치사로 문장을 끝내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야 뭐 영어로 글을 쓰는 기회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이 규칙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반적이겠지만 적어도 미국인들은 학교에서 작문에 대한 교육을 받을 때 선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나 봅니다.

그런데 이 규칙 자체는 타당한 논리가 근거가 있는 걸까요? 이 규칙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존 드라이든이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는 데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자 점점 라틴어의 영광에 자신을 맡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사실 중세시대 혹은 그 이후로도 라틴어가 가진 위상을 봤을 때 드라이든의 라틴어 경도가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종교가 사회 전반에 위상을 떨치고 있었을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복음을 전하는 가장 적절한 언어는 라틴어였고 학문의 언어 역시 라틴어였습니다. 드라이던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 영어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배우지 못한 천한 백성들이나 쓰는 언어이던 때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습니다. 라틴어는 오래 전부터 정교한 문법체계와 표준어휘 체계가 갖춰져 있었고 프랑스어도 한 동안 지배층의 언어로 쓰이면서 표준화가 일찍 일어났지만 그에 비해서 영어는 한때 오늘날 'right'이라는 단어의 표기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77개가 넘는 서로 다른 표기들이 사용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reght, reghte, reht, reit, rethe, reyght, reyt, richt, ricth, 등등...). 라틴어는 오래전에 단 하나의 표기법 'right (-> rectus)'로 이미 정리가 되어 있었을 때인데 말이죠.

드라이든의 전치사에 대한 이런 집착은 그의 라틴어에 대한 지나친 경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에는 전치사가 문장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드라이든은 영어 역시 이러한 라틴어의 전범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의 문장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전치사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는 이전에 자신이 썼던 작품들을 재 발간하는 경우 일일이 전치사로 끝이 났던 문장들을 다 고쳤다고 합니다. 젊은 날의 치기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져야 했습니다. 'the age which I live in'은 'the age in which I live'로 수정이 되었지요. 또 일단 자신이 영어로 쓴 문장은 종종 라틴어로 다시 번역을 해서 이상하지는 않은 지,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 점검이 되어야 했고 그 이후에 다시 영어로 재번역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전치사에 대한 증오(?)는 그 뒤 후대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8세기, 19세기의 작가들도 대체적으로 이런 경향을 따르게 되면서 '영어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지 말라'는 격언 아닌 격언은 일종의 굳건한 규칙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250px-John_Dryden_by_Sir_Godfrey_Kneller%2C_Bt.jpg
존 드라이든...전치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던 남자...--;;


그러나 드라이든의 이런 라틴어 무한사랑과는 별개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좀 떨어집니다. 라틴어와 영어는 우선 그렇게 아주 가까운 언어들이 아닙니다. 둘 다 큰 틀에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영어는 그 가운데서도 게르만어(Germanic languages)에 속해 있고 라틴어는 이탈릭어(Italic languages)에 속해 있는 언어입니다. 두 언어의 문법은 흠결 없이 자연스럽게 일대일 대응으로 섞이기 어려웠습니다.  

원래 영어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붙일 수 있는 언어이고 전치사를 문장의 마지막에 붙여도 뜻이 달라지거나 비문이 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드라이든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남겨놓고도 잘 쓰였습니다. 물론 영어에서도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남겨두지 않고 문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기준이 라틴어에서는 전치사를 문장의 맨 마지막에 쓰지 않기 때문이고 라틴어가 가장 정제되고 아름다운 언어여서 영어도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라면 과연 그런 기준은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 사람의 이상한(?) 집착에서 시작된 근거가 탄탄하지 않았던 규칙은 오랫동안 영어 글쓰기의 세계에 영향력을 끼쳐왔고 이제는 문장의 맨 마지막에 전치사를 쓰게 되면 작문 선생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되어 버릴 정도가 된 것입니다.

영어로서는 정말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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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efake
17/03/28 13:04
수정 아이콘
저 한사람이 언어를 바꿨다구요?!
대단하네요..와..영향력이 꽤 있는 작가였나..
VinnyDaddy
17/03/28 13:06
수정 아이콘
처칠이 연설문에 전치사로 끝나는 문장을 썼더니 어느 편집자가 그걸 수정했더니... 처칠이 "This is the kind of impertinence up with which I shall not put."이라는 문장으로 항의를 보냈다던 일화가 기억나네요. 분명 뒤로 보냈을 때 어색해지는 저런 문장들이 있는데...
17/03/28 13:13
수정 아이콘
크크크 니가 한 짓이 뭔지 내가 보여주마 이런건가요
Mr.Unknown
17/03/28 13:08
수정 아이콘
관계대명사 앞에 전치사를 붙이는 행위가 직관적이지 않아 잘 납득이 되지 않고는 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군요;;
17/03/28 15:11
수정 아이콘
동감입니다. 전 아직도 어색해요 크크.
17/03/28 15:55
수정 아이콘
가끔 "A customs territory shall be understood to mean any territory with respect to which separate tariffs are maintained for a substantial part of the trade of such territory with other territories" 에 있는 with respect to which 같은 놈들은 아무리 읽어도 도저히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구요 =_=...
마스터충달
17/03/28 17:23
수정 아이콘
222 저도 참 직관적이지 않았는데...
17/03/28 14:34
수정 아이콘
저는 완전 개조식으로 쓰여진 글을 보면 좀 어색한데, 이걸 선호(?)하는 계층들도 많더라구요.
The Special One
17/03/28 16:38
수정 아이콘
영어에서 관계사는 좀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두세문장으로 적어야 할 것을 왜 다 한문장에 우겨넣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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