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5/27 11:28:19
Name 리니시아
Subject [일반] 펑꾸이에서 온 소년 (1983) _ 젊은이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
팟케스트 '영화계' 를 진행하면서 밀레니엄 맘보를 다루어 달라는 요청이 작년에 있었다.
그리고 약 6개월이 지나 밀레니엄 맘보를 보게 되었고, 지금에서야 '허우 샤오시엔' 이라는 감독을 알게되었다.
나름 영화를 좋아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이런 거장을 지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자숙하는 의미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찾아보았고, 그중 펑꾸이에서 온 소년 이라는 작품에 매료되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펑꾸이 라는 어촌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칭' 이라는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쿠오, 아정 이라는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동내에서 건달 행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활에 권태를 느껴 '카오슝' 이라는 대도시로 가게된다. 시골에서 살던 세 명의 친구는 자신의 고향과 다른 대도시에서 질서와 삭막함을 몸소 체감하게 되고, 노점상에서 팔던 물건을 정리하고 군입대를 하게 된다.

줄이자면 시골 청년들이 돈을 벌기위해 대도시에 오지만 그곳에서의 느끼는 상실감과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1.
극중 지나가는 이야기이 굉장히 흥미로운데, 주인공 '아칭'의 아버지는 유년시절 야구공에 맞아 백치가 되고,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기도 하며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또 다른 기억 속에는 아버지와 길을 가다 뱀을 발견하곤 아버지가 그것을 잡는 기억도 있다. 대도시에서의 외로움을 백치가 된 아버지가 자신을 지키는 기억을 떠올리며 달래는 장면. 작은 에피소드 이지만 다가오는 무게가 굉장히 묵직하다.
아청은 분명 아버지가 사고가 나기 전 가족의 모습을 그리워 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사고 이후엔 아버지가 굉장히 부끄러워 하는 장면을 보면 더더욱 두드러진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위로도 받지만,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움이 느껴지는 장면을 보며 '성장' 이라는 것을 조금씩 일깨워준다.





2.
친구들은 대도시에서 길거리를 다니다 사기를 당한다. 멋진 유럽영화를 풀컬러에 대형화면으로 상영해 주는 곳이 있다며 오토바이를 탄 낯선 사람이 그들을 꼬신다. 순수한 그들은 돈을 지불하고 빈 건물로 올라가지만 그곳은 완공되어지지 않은 건물이었고, 대도시의 전경만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는 이야기한다 "컬러는 컬러네"


바닷가의 석양을 바라보던 순수했던 소년들이, 사기를 당해 고층빌딩에서 대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상실감은 어떠하였을까.
그것을 별다른 인물들의 액션이나 설명이 필요없이 '장면' 을 통해 대비해 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 전해주고자 하는 느낌과 그들의 감정이 무게있게 다가오는 장면.





3.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실연을 당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겠다.
태국으로 여자를 떠나 보내며 노점상에서 헐값으로 물건을 다 팔아버리고 입대를 하게되는 장면. 이때 아칭은 설움에 받혀 오기로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헐값으로 팔려 하지만, 무심한 시장의 사람들은 자기 할 일들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그들의 아픔을 알아주기라도 원하는 듯한 아청의 몸짓과 울분에 찬 목소리가 격렬한 감정을 자아내지만. 그런 소년들의 모습을 외면하고 여느때와 같은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야속하다.

그리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엔딩장면에서의 바닷가를 비춰주는 모습은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듯 하다.





이것 말고도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취권' 인 이유랄지, 공장에서 일을하다 고향으로 와 자기 밥그릇을 내던지는 장면이랄지. 시골에서의 미성숙했던 에피소드들도 굉장히 재미있고 정겨운 장면들이다.

'위로' 라는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다.
허우 샤오시엔의 롱테이크가 유독 배우를 위한 '배려' 로 보였고,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며 이야기 하기보단 긴긴 롱테이크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의 현실과 암담한 미래의 모습을 무엇 하나로 규정짓거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모든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아 준다. 또한 그들에게 전혀 무관심한 타인들의 모습을 한번 더 잡아주며 그들이 느낄만한 상실감에 공감을 전해주는 영화.



젊은이들에게 건내는 따뜻한 위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05/27 12:06
수정 아이콘
리뷰만으로도 보고싶은 영화네요. 이런 소년들의 영화를 좋아해요. 언어의 벽도 있을텐데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리니시아
16/05/27 12:32
수정 아이콘
으음.. 쪽지 주실수있을까요?
16/05/28 09:20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언어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어서 (2)
쪽지 드려봅니다.
16/05/27 14:03
수정 아이콘
카오슝이라니 대만 영환가봐요! 좋은 영화 추천감사합니다 찾아봐야지!
리니시아
16/05/27 14:11
수정 아이콘
대만의 뉴웨이브를 이끌어던 감독중 한명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입니다.
롱테이크가 길고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감독 스타일이 맞으신다면 다른 영화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카푸스틴
16/05/28 17:03
수정 아이콘
1회 전주영화제 생각나네요 크크 몇년전이야 이제...
리니시아
16/05/29 10:56
수정 아이콘
와~ 1회 전주영화제에 참가 하셨었나보군요..
대단하십니다
카푸스틴
16/05/29 14:51
수정 아이콘
그때 샌드위치맨도 해줬었습니다.
전 샌드위치맨 엔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흐흐
리니시아
16/05/29 19:45
수정 아이콘
저도 샌드위치맨을 꼭 보고싶어서 찾아봤는데 구하기가 어렵더라구요...
카푸스틴닙 부럽습니다 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게시판을 오픈합니다 → 오픈완료 [53] jjohny=쿠마 24/03/09 27917 6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49946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26087 8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49004 28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19320 3
101351 [일반] 키타큐슈-시모노세키-후쿠오카 포켓몬 맨홀 투어 [2] 及時雨380 24/04/26 380 2
101349 [일반] 인텔 13,14세대에서 일어난 강제종료, 수명 문제와 MSI의 대응 [52] SAS Tony Parker 5473 24/04/26 5473 8
101348 [일반] [개발]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完) Kaestro2262 24/04/26 2262 1
101347 [일반]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 도쿄 공연 후기 (2/7) [5] 간옹손건미축3525 24/04/26 3525 12
101346 [일반] 민희진씨 기자회견 내용만 보고 생각해본 본인 입장 [321] 수지짜응16660 24/04/25 16660 8
101345 [일반] 나이 40살.. 무시무시한 공포의 당뇨병에 걸렸습니다 [48] 허스키7998 24/04/25 7998 9
101344 [일반] 고인 뜻과 관계없이 형제자매에게 상속 유류분 할당은 위헌 [40] 라이언 덕후6162 24/04/25 6162 1
101295 [일반] 추천게시판 운영위원 신규모집(~4/30) [3] jjohny=쿠마17571 24/04/17 17571 5
101343 [일반] 다윈의 악마, 다윈의 천사 (부제 : 평범한 한국인을 위한 진화론) [47] 오지의5030 24/04/24 5030 12
101342 [정치] [서평]을 빙자한 지방 소멸 잡썰, '한국 도시의 미래' [18] 사람되고싶다2692 24/04/24 2692 0
101341 [정치] 나중이 아니라 지금, 국민연금에 세금을 투입해야 합니다 [60] 사부작4096 24/04/24 4096 0
101340 [일반] 미국 대선의 예상치 못한 그 이름, '케네디' [59] Davi4ever9428 24/04/24 9428 4
101339 [일반] [해석] 인스타 릴스 '사진찍는 꿀팁' 해석 [20] *alchemist*5073 24/04/24 5073 12
101338 [일반] 범죄도시4 보고왔습니다.(스포X) [45] 네오짱7042 24/04/24 7042 5
101337 [일반] 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결심했고, 이젠 아닙니다 [27] Kaestro6570 24/04/24 6570 17
101336 [일반] 틱톡강제매각법 美 상원의회 통과…1년내 안 팔면 美서 서비스 금지 [35] EnergyFlow4474 24/04/24 4474 2
101334 [정치] 이와중에 소리 없이 국익을 말아먹는 김건희 여사 [17] 미카노아3865 24/04/24 3865 0
101333 [일반] [개발]re: 제로부터 시작하는 기술 블로그(2) [14] Kaestro3025 24/04/23 3025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