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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8/01 17:24:16
Name Vesta
Subject 어떤 본좌의 세계제패 기록과 추억담

1992
-1월 제3회 동양증권배 우승 vs린하이펑 9단 (3 : 2)

1993
-6월 제4회 동양증권배 우승 vs조치훈 9단 (3 : 0)

1994
-없음

1995
-7월 제7회 TV 아시아 선수권 우승 vs조훈현 9단 (1 : 0)

1996
-3월 제7회 동양증권배 우승 vs마샤오춘 9단 (3 : 1)
-5월 제8회 TV 아시아 선수권 우승 vs유창혁 9단 (1 : 0)
-8월 제9회 후지쯔배 우승 vs마샤오춘 9단 (1 : 0)
-9월 96 세계 최강 결정전 우승 vs마샤오춘 9단, 다케미야 마사키 9단 (4전 전승) (우승상금 1억원)

1997
-5월 제1회 LG배 우승 vs유창혁 9단 (3 : 0)
-11월 제2회 삼성화재배 우승 vs고바야시 사토루 9단 (3 : 0)

1998
-5월 제9회 동양증권배 우승 vs유창혁 9단 (3 : 1)
-8월 제11회 후지쯔배 우승 vs창하오 9단 (1 : 0)

1999
-2월 제3회 삼성화재배 우승 vs마샤오춘 9단 (3 : 2)
-5월 제3회 LG배 우승 vs마샤오춘 9단 (3 : 0)
-12월 제4회 삼성화재배 우승 vs조선진 9단 (3 : 0)

2000
-없음

2001
-2월 제4회 응씨배 우승 vs창하오 9단 (3 : 1)
-5월 제5회 LG배 우승 vs이세돌 3단 (3 : 2, 리버스 스윕)

2002
-5월 TV 아시아 선수권 우승 vs조훈현 9단 (1 : 0)

2003
-1월 제1회 도요타-덴소배 vs창하오 9단 (1 : 0)
-3월 제4회 춘란배 우승 vs하네 나오키 9단 (2 : 0)

2004
-4월 제8회 LG배 우승 vs목진석 7단 (3 : 1)
-6월 타이다배 우승 vs콩지에 7단, 요다 노리모토 9단 (2전 전승) (우승상금 2만달러)

2005

-3월 제5회 춘란배 우승 vs저우허양 9단 (2 : 1)

2006

-없음

2007

-8월 제3회 중환배 우승 vs박정상 9단 (1 : 0)


[메이저대회 우승횟수]
응씨배 : 1회 (2001)
삼성화재배 : 3회 (1997, 1999, 1999)
LG배 : 4회 (1997, 1999, 2001, 2004)
동양증권배 : 4회 (1992, 1993, 1996, 1998)
후지쯔배 : 2회 (1996, 1998)
도요타-덴소배 : 1회 (2003)
춘란배 : 2회 (2003, 2005)

[마이너대회 우승횟수]
중환배 : 1회 (2007)
TV 아시아 : 3회 (1995, 1996, 2002)

도합 21회 우승 : 메이저 17회 우승 / 마이너 4회 우승
이벤트 2회 우승



[각종 기록]
-통산 전적 : 2302국 1692승 599패 승률 73.50% (1614전의 이세돌이 70.75%, 727전의 박정환이 73.87%)
-통산 대국수 3위(조훈현, 서봉수), 다승 2위(조훈현), 승률 2위(박정환)

-통산 최다 국제기전 우승 : 21회 (2위 이세돌 17회, 3위 조훈현 11회, 4위 구리 8회)
-통산 최다 국제기전 결승진출 : 36회 (2006년부터 10연 준우승... 2위 이세돌 24회, 3위 조훈현 16회)
-통산 최다 메이저 국제기전 우승 : 17회 (2위 이세돌 14회, 3위 조훈현 9회, 4위 구리 8회)
-통산 최다 메이저 국제기전 결승진출 : 28회 (2006년부터 9연 준우승... 2위 이세돌 19회, 3위 구리 12회)
-통산 2위 타이틀 획득 횟수 : 140회 (1위 조훈현 158회)
-통산 상금랭킹 1위 : 추정 97억원 이상 (2위 이세돌 66억원 이상, 3위 조훈현 38억원 이상)

-역대 국내 최다관왕 : 13관왕 (1994)
-역대 최다연승 : 41연승 (1990)
-역대 연간 최다대국 : 111국 (1989)
-역대 연간 최다승 : 90승 (1993)
-역대 연간 최고승률 : 88.24% (1988, 85전 75승 10패)
-역대 최연소 타이틀 획득 : 14세 1개월 (1988, 제8회 KBS 바둑왕전)
-역대 최연소 국제기전 우승 : 16세 6개월 (1993, 제3회 동양증권배)
-역대 최연소 1000승 돌파 (승률 1위, 78.4%)
-역대 최연소 1500승 돌파 (승률 1위, 75.6%)
-역대 최연소 입단 기록 2위 : 11세 1개월 (1위 조훈현, 9세 7개월)
-역대 최초 연간 상금 10억 돌파 (2001, 이후 이세돌이 10번기 상금을 포함해 11억원을 벌어들이며 넘어섬)

-메이저 국제기전 그랜드슬램 달성 (2003 : 응씨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LG배, 도요타-덴소배, 춘란배)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 모든 세계기전 우승 : 응씨배,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삼성화재배, LG배, 춘란배, 도요타-덴소배, TV 아시아, 중환배 (2007년 이후에 신설된 BC카드배, 바이링배, 몽백합배는 우승경력 없음)

[한중일 국가 연승대항전인 SBS배-진로배-농심신라면배 관련 전적]
-총 19회 출전, 16회 우승, 3회 준우승 : SBS-진로배 6회 모두 우승, 농심배 10회 우승 + 3회 준우승
-총 36전 29승 7패 : SBS-진로배 10승 4패, 농심신라면배 19승 3패 (3패가 마지막 주자 = 준우승 횟수와 일치)
-총 10회 주장으로 나와 8번 우승 결정 : 진로배(2회), 농심배(1~6회, 8회, 11회 우승 / 7회, 12회 준우승)
-역대 단일 국제기전 최다 연승 : 14연승 (농심신라면배 1~6회, 국내 예선 포함 30연승)




1988년에 처음으로 국제대회가 개최된 이후(응씨배, 후지쯔배), 조훈현 9단이 바둑올림픽이라는 응씨배 초대 타이틀을 거머쥐며 세계 바둑계의 흐름을 한국으로 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당시 존재하던 4개의 국제기전(제2회 응씨배 서봉수 우승, 제4회 동양증권배 이창호 우승, 제6회 후지쯔배 유창혁 우승, 제2회 진로배 조훈현 주장 우승 결정)을  한국의 4천왕(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의 활약을 통해 한국이 모두 쓸어담으면서 명실공히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임을 공언하게 되죠. 이듬해인 1994년에도 마찬가지로 동양증권배(조훈현), 후지쯔배(조훈현), 진로배(이창호 주장 우승 결정)를 한국이 제패하며 2년 연속으로 코리안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되죠. 그리고 조훈현은 1994년에 최초로 메이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됩니다(개인전 응씨배,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 단체전 진로배).

80년대 중반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3년간 세계최강이라 자부하던 일본최고수들을 상대로 11연승을 구가하며 당시 일본의 정점이던 고바야시 고이치(조치훈의 맞수로 유명하죠. 아마 휠체어대국의 상대라고 하면 다들 아실듯)까지도 삭발시켜 버린(?) 대륙의 반달곰 녜웨이핑은 중화인민의 영웅등극식을 위한 대회인 초대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일생일대의 뼈저린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샤오춘과 창하오라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지만... 조훈현은 참 여러모로 녜웨이핑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조훈현의 제자가 녜웨이핑의 제자'들'에게 한 무도한 짓(?)을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92-93년 린하이펑, 조치훈이라는 일본 최고수들을 꺾고 세계 대회 2연패를 이뤄낸 이창호였지만, 스타로 비교하자면 박카스배 스타리그 첫 우승하던 시절의 이영호랄까요? 약관이 안된 고딩 기사가 세계최고수 반열에 올라있긴 하지만 본좌는 아니었었죠. 그리고 94년 시즌에 이창호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기치를 내걸기라도 한것인지, 확실하게 국내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집중합니다. 그리하여 나온 기록이 바로 초유의 13관왕이죠.-_-;

94-95년의 이창호가 힘을 축적하고 있는 당시, 95년에 드디어 조훈현 이후 동양증권배와 후지쯔배를 동시에 제패하는 첫 2관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것은 중국의 요도로 불리며 기세가 충천한, 녜웨이핑의 역작, 마샤오춘이었죠. 95년의 세계최강은 명실공히 마샤오춘이었습니다. 훗날 구리나 쿵제가 마샤오춘 이상의 성적을 쌓으며 한 시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당시 마샤오춘의 기세는 그 둘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을만큼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샤오춘이 특유의 거만함으로 절정의 시절을 즐기고 있던 95년 여름, 역사는 응씨배나 후지쯔배와 비슷하지만 결국 초청전 형식의 속기전, 메이저 기전이 아닌 마이너 국제기전인 TV 아시아선수권에서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을 꺾고 우승합니다. 떠들썩한 중국의 축제분위기 아래서, 근 10년간 중국에게 비애와 눈물, 나아가서는 경외심마저 심어줘버린 바로 그 인물이 조용히, 그러나 바둑역사상 전무후무한 본좌로드에 발을 걸쳐놓기 시작한 시점이죠.

96년 봄, 본격적으로 세계무대를 접수하러 온 이창호와 기존의 왕인 마샤오춘이 동양증권배에서 격돌합니다. 삼성화재배나 LG배에서도 성적이 좋은 이창호 9단이지만, 누가 뭐래도 오늘날의 이창호 9단을 만들어준 메이저 국제대회는 역시 동양증권배죠. 최연소 세계타이틀, 한국기사 최초의 세계대회 2연패, 아홉번의 대회 중에 4회 우승... 사실 메이저급 국제대회로 한정하면 7회입니다. 1, 2회는 사실상 외국기사 몇명을 초청한 국내기전이고 상금규모도 작았죠. 3회부터 명실공히 메이저 국제기전급이 되었으니 어찌보면 이창호 9단은 초대 동양증권배 우승자인 셈이죠.

어쨌든, 이창호는 3 대 1로 마샤오춘을 제압합니다. 마샤오춘에게는 고난의 역사(-_-;)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그 분수령은 1 대 1 상황에서 반집 역전패를 당한 제3국이었습니다. 훗날 마샤오춘이 회고하기를 이 반집패가 너무나 뼈저리게 아팠다고 했다더군요. 근데 대 이창호전에서 마샤오춘이 뼈가 남아나지 않을정도로 당한게 많아서... 그리고 여세를 몰아 단판승부인 후지쯔배 결승에서도 이창호 9단이 승리하며 마샤오춘의 1년 천하를 모조리 털어버리죠. 그리고 중간에 TV 아시아 선수권까지 우승하면서 너무나 손쉽게(?) 4개월 동안 3개의 세계타이틀을 따버립니다. 무서운건 이미 이 시점에서 이창호의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횟수가 4회로 조훈현과 공동 1등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_-;;;

마샤오춘에게는 후지쯔배 패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눈치없게(?) 국내 언론사 주최로 우승상금 1억, 세명중 3위만 해도 4천만원이나 주는 매머드 이벤트전이 열립니다. 이른바 96 세계최강결정전. 스타로 치면 "4대천왕"의 이미지를 굳히게 만든 2002년 KT비기배 4대천왕전(임콩윤등)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또는 본좌결정전이라는 면에서는 마XXvs이윤열의 슈퍼파이트가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그만큼 이 대회에 쏠린 시선은 대단했습니다. 이창호, 마샤오춘, 그리고 일본의 다케미야 마사키(소위 우주류로 불린 세력바둑으로 일가를 이룬 기사죠) 3인이 더블리그로 맞붙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이창호 4전 전승, 다케미야 2승 2패, 마샤오춘 4패... 이창호는 명실공히 96년도 가을, 세계바둑계의 '본좌'가 됩니다. 4년만에 돌아온 3회 응씨배와 초대 삼성화재배에서는 11월에 연이어 펼처진 결승전에서 유창혁과 요다 노리모토가 맞붙어 서로 나눠먹었지만 이창호의 포스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죠.

이듬해 이창호에게는 또하나의 각별한 대회인 LG배 초대우승을 거머쥐며 세계대회 우승횟수에서도 스승을 앞지르기 시작하더니 제2회 삼성화재배도 우승합니다. 이윤열이나 최연성, 마XX나 김택용, 이영호가 MSL 3회 우승을 거머쥘때 숱한 고비와 명경기, 역전승이 있었듯이 이창호의 삼성화자배 2~4회 3연패에도 그에 못지 않은 드라마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게 다 마샤오춘의 눈물로 빚어진 드라마라는거죠...-_-;;

96년에 이창호에게 떡실신을 당하고 상대전적이 어느새 3승 13패로 벌어진 상황에서, 초대 LG를 가볍게 접수하고 신나게 삼성화재배까지 접수하러 온 이창호의 4강 상대는 마샤오춘이었습니다. 여기서 마샤오춘은 그야말로 이창호를 지옥끝까지 밀어부칩니다. 그리고 이창호 9단은 초반 전투과정에서 실족하여 벼랑 아래로 떨어지죠. 중반을 넘어설때 즈음 해설하던 서봉수 9단도, 이미 결승 한자리를 차지하고 관전하고 있던 고바야시 사토루 9단도 "이건 노답임. 절대 역전 불가능"의 진단을 내린 시점. 그런데 그 바둑이 313수까지 가더니 반집으로 역전되고 맙니다. 그것도 마지막에 마샤오춘 9단이 이창호 9단의 끝내기 손속에 몇번이나 당해도 계속 2집 언저리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유리했는데 그게 막판에가서 뒤집힌거죠. 그것도 이창호 9단이 건 심리전에 팻감을 스스로 헌납하면서요.

그야말로 이건 악몽과도 같은 패배나 다름없습니다. 김명운 선수가 허영무 선수에게 패한 Tving 스타리그 4강전이 그 암울함에서 비교될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올멀티 관광급으로 밀고 있던 상황에서, 어느새 상대가 멀티 꾸역꾸역 성공시키더니 아무리 공격해도 다막아내니 내 자원떨어져셔 GG친거보다 더 어이없는 역전패가 나온겁니다. 패자인 마샤오춘은 그야말로 앉은채로 기절했죠. 그리고 이 고비를 넘고 결승에 간 이창호 9단은 가볍게 3 대 0으로 삼성화재배까지 제패합니다.

그런데... 이 마샤오춘이라는 사람도 참 지독한게 다음 삼성화재배 결승과 LG배 결승에서 또 만난겁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제3회 삼성화재배 결승은.... 정말 그 어느때보다도, 자기 바둑인생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비장한 마음으로 이창호를 넘으려고 승부를 걸었고 이 결승 시리즈는 내내 마샤오춘의 리드로 흘러갑니다. 1, 3국을 마샤오춘이 완승하고 2, 4국을 이창호가 따라잡으면서, 운명의 5국.... 흑번 필승의 흐름이었기 때문에(1~4국이 모두 흑이 승) 마샤오춘은 손재주를 부려 돌을 짝수로 쥡니다. 그런데 이창호가 돌을 평소처럼 1개 올려놓는게 아니라 2개 올려놓으면서 이창호가 흑이 되죠.-_-;;; 그때 마샤오춘의 부산한 손짓이 잠시 멈칫했죠... 그러나 이 5국은 진짜 처절할 정도로 난전과 공중전이 오갔습니다. 어찌보면 세계최고수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이런 OME를? 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엄청난 똥줄을 태우는 국면으로 전개가 되었지요. 두 사람 모두 실수를 너무 많이해서 검토하는 기사들은 물론 해설하던 조훈현 9단까지도 갈피를 못잡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중반까지 수순에서, 마샤오춘 9단이 노린 수들이 효과를 거두면서 승부는 전년도 못지 않은 비세로 흘러갑니다. 당시 이창호 9단의 컨디션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고, 대국 당시의 기력을 봐도 이창호가 이길 수 없는 바둑을 두고 있다고 낙담했었죠.

근데 그게 "또" 종반에 역전이 됩니다. 그것도 2집 반이나 흑이 남습니다. 워낙 난장판인 대국이라서 갈피를 못잡은 까닭도 있지만, 조훈현 9단이 "이창호가 마술을 부린겁니까~" 라고 할정도로 뜬금없이(....) 역전이 되어버려서... 계가가 되면서 마샤오춘의 안색이 실시간으로 창백하게 질려갔죠.

작년의 그 대역전패의 내상을 딛고 권토중래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이창호를 상대로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갔건만... 이런 역전패를 3번이나
당하니(7회 동양증권배 3국, 2회 삼성화재배 4강, 3회 삼성화재배 결승 5국)... 3번 당하면 골로갈 수밖에 없었죠. 곧이어 LG배에서 다시 만난 이창호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다가 3 대 0으로 실신당하고 마샤오춘은 그렇게 세계 정상권에서 멀어져갑니다. 참 지독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이창호만 없었다면 지금 구리가 거둔 8회의 국제대회 우승을 먼저 이룬것은 어쩌면 마샤오춘일지도 몰랐을텐데 말입니다. 전성기가 하필이면 이창호와 겹쳐서, 네번의 서로 다른 세계대회 결승에서(동양증권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LG배) 네번 다 지고, 그리고 고비때마다 만나서 6승 25패의 전적으로 린치당하다가 이창호에 의해 절벽에서 떠밀려지듯이 그의 전성기는 끝이납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_-;는 식으로, 녜웨이핑의 진짜 비장의 무기라고 볼 수 있는 창하오... 그러나 마샤오춘의 바톤을 받아 2005년까지 그 역시 이창호, 그리고 목소리 이상한 건방진 녀석(?)에게까지 능욕당하죠... 그나마 2005년 이후 전성기가 지난 이창호에게는 국제대회 결승에서 설욕도 해보고 여한은 풀었겠습니다만(두 사람은 되게 친합니다. 둘다 인품이 좋은 기사들이죠) 이창호의 사슬에서 벗어나나 싶더니만 이세돌에 의해 그 역시 뒤안길로 밀려나버리고 맙니다.-_-;;

2001년 염원하던 응씨배 우승, 그리고 2003년 신설된 2개의 기전인 도요타덴소배와 4회 춘란배까지 거머쥐며 그때까지 열린 모든 국제대회를 접수한 유일한 기사가 됩니다. 1993년의 조훈현(응씨배, 후지쯔배, 동양증권배), 2002년의 유창혁(응씨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LG배, 춘란배)도 앞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지만, 아무래도 이창호의 그것이 가장 돋보일 수밖에 없었죠. 당시 현존하던 기전인 응씨배, 후지쯔배, 삼성화재배, LG배, 춘란배, 도요타덴소배는 물론 동양증권배 타이틀까지 포함해 7개의 메이저 기전을 모두 우승해본 유일한 선수였으니...(조훈현 9단은 LG배, 유창혁 9단은 동양증권배, 그리고 03년 신설된 도요타덴소배까지 부족)

그리고 2005년 농심배 5연승으로 신화를 쓰며, 녜웨이핑의 국가대항전 11연승 기록을 14연승으로 경신하고 바로 열린 춘란배 5회까지 우승한 이후,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그의 본좌로서의 여정은 그렇게 96년 동양증권배 이후 딱 햇수로 10년을 채우고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국제대회 10연 준우승, 농심배 철문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었으며, 새로운 인재들의 거센 물결에 휩쓸린 이제 그도 정상권에서 멀어진 상태지요.

하지만 그 화려했던 10년을 떠올릴때면, 이제 그때 이후로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부활을 가끔 염원해보게 되죠.
인내의 미학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인간이 위대하게 보일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 이창호 국수의 선전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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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10년차
15/08/01 17:39
수정 아이콘
당시 기전 스타일상 타이틀을 따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대국수가 엄청많죠. 그러니 아무래도 이동거리며 준비며 이런게 많이 필요한 세계대회에선 집중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조훈현이 런닝맨에 나와서 응씨배 트로피를 보여주는데 진짜 '우와...' 소리가 나오더라구요. 그 많은 트로피도 트로피지만 '저게 아마 응창기배일 거예요'하는데 와...
ohmylove
15/08/01 17:47
수정 아이콘
이창호님 말고 10년 이상을 본좌로 있은 기사가 또 있었나요?
솔로10년차
15/08/01 17:56
수정 아이콘
조훈현이 있죠.
ohmylove
15/08/01 17:58
수정 아이콘
조국수님 본좌시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알 수 있을까요?
솔로10년차
15/08/01 18:00
수정 아이콘
첫 전관왕 달성이 80년입니다.
압도적이냐, 혹은 그냥 단독1인자일 뿐이냐는 갈릴 수 있지만, 위의 이창호가 국내기전을 쓸어담을 때까지 본좌였다고 봐야죠.
ohmylove
15/08/01 18:03
수정 아이콘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15/08/01 19:01
수정 아이콘
조치훈도 해당되겠죠
ohmylove
15/08/01 19:04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15/08/01 19:21
수정 아이콘
국내 한정 본좌라면 조남철-(김인)-조훈현-이창호 정도입니다. 이창호 이후에는 그만한 다관왕은 안나오고 있죠. 타이틀 횟수 3휘인 이세돌의 통산 타이틀이 40회 언저리니까요.

단, 국제기전을 기준으로 볼때, 세계바둑계로 가면 강함의 차이는 있어도, 시기별 최강자는 조훈현(94)-마샤오춘(95)-이창호(96~05)-이세돌(05~08)-구리(09)-쿵제(10) 정도일겁니다. 사실 조훈현, 마샤오춘, 구리, 쿵제는 1년 남짓한 시절에 세계대회 최다관왕이라서 세계최강으로 불린것이고 절대강자로 10년간 이견없이 인정받은건 이창호,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세돌 정도밖에 없습니다.

바둑의 세계화, 그러니까 국제기전이 본격적으로 창설된게 88년 응씨배와 후지쯔배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스타로치면 양대리그가 정립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전에는 80년대까지는 일본바둑계가 세계최고로 불리던 시절이었고, 그러다보니 80년부터 교통사고 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한 조치훈과 그 이후에 최강자로 군림한 고바야시 고이치가 세계 최고수 셋을 꼽으라면 첫번째와 두번째를 놓고 앞다투어 언급되었었죠. 그리고 80년대 중반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녜웨이핑이 11연승을 달성하고 일본 최고수를 연파하면서 중-일 양강체제가 되었구요. 당시 전관왕(9관왕)을 두번이나 달성하며 한국을 지배하던 조훈현의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일본 기계에서는 조훈현 말고는 한국을 업신여겼고 그런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준 중국도 마찬가지였죠. 응씨배가 창설된 목적도 결국 세계바둑최강자는 누구냐는 그 사나이의 물음...에서 시작된거나 다름없고, 본문에 적었듯이 녜웨이핑, 나아가서 중화권의 바둑황제 대관식을 위한 부커...크크...였습니다. 근데 그 판을 조훈현이 엎으면서 대세가 서서히 한국으로 기울기 시작했던거죠.

그리고 본문에도 언급한 93년 2회 응씨배마저 순국산 바둑, 된장바둑으로 불리는 낭인기사이자 조훈현에 가장 거세게 저항한 라이벌 서봉수가 극적으로 우승하고 일본이 88년 이래로 우승을 독점하던 후지쯔배마저 조훈현, 유창혁 두 기사가 결승전을 치르고, 이창호가 동양증권배에서 조치훈을 3 대 0으로 꺾고, 국가 대항 단체전인 진로배까지 제패하면서 완벽하게 한국바둑이 세계 최강인 것을 확정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그 중심에 있었던 기사가 바로 이창호구요.

20c 초중반의 최고의 기사는 50년대 전후로 일본 기계에서 활동한 기성 오청원이고 20c 후반~21c초반의 최고의 기사는 이창호. 이 둘이 굳이 말하자면 대등한 정도의 부동의 투톱입니다.
ohmylove
15/08/01 20:08
수정 아이콘
답변 감사합니다. 재미있네요^^
15/08/01 17:4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바둑을 모르는데도 조훈현이나 이창호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마샤오춘이란 기사는 정말 불쌍할 정도네요-_-;
순규하라민아쑥
15/08/01 18:08
수정 아이콘
오락실에서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즐기시던 분이죠.
음해갈근쉽기
15/08/01 18:1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읽는내내 흥미진진하게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노때껌
15/08/01 18:29
수정 아이콘
사제간에 새대교체가 이렇게 완벽하게 이루어진 경우가 있을까요? 10년을 치고박고 했으니까요. 희생자는 조훈현 9단 이었지만...
그 시기는 새대교체뿐만 아니라 신구조화도 완벽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훈현, 서봉수에 이은 이창호 유창혁. 유창혁 9단은 정말 신기한게
아마추어 바둑기사로 시작해서 국제기전 성적에 비하면 국내기전 성적은 초라하다고까지 느낄정도지만 또 국내기전도 규모가 큰 대회에서는 곧 잘
우승도 하고 상금 사냥꾼 느낌이 물씬 납니다.
본문만 보면 이창호에게 희생 된 또 한명의 기사 같지만 국제대회 번기대결에서 이창호 9단에게 가장 많이 패배를 안겨 준 기사이기도 하지요.
15/08/01 19:49
수정 아이콘
유창혁 9단은 국제대회 결승에서 이창호 9단에게 이긴적이 없던걸로... 그리고 국제대회 번기 승부에서는 저 10년간은 전반적으로 이창호에게 강한 선수가 없었.... 오히려 전성기 시절 이창호 9단에게 그나마 가장 저항했던건 조훈현 9단이었습니다. 초대 춘란배 결승에서 제자의 국제대회 전관왕을 막은것도 조훈현 9단이었죠.

오히려 국내대회에서 이창호의 전관왕을 결사적으로 막은 것이나 이창호 전성기에도 자기 영역을 확보한 것이나 오히려 국내무대에서 이창호 9단 상대로 더 강했다고 보는게 맞겠죠. 유창혁 9단은 국제대회에서도 메이저 6회 우승으로 역대 5위에 랭크되어있는 만큼 국제대회 성적도 뛰어났습니다만 그 공격력과 경쾌함 만큼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었죠. 그래서 4천왕 시절에도 중국이나 일본 기사들에게 세계대회 결승에서 진적도 여러번이구요. 이창호 9단이 최강에서 내려온 2005년 이후에는 뭐 의미가 없어지긴 했지만.
노때껌
15/08/01 20:00
수정 아이콘
제가 말한 번기는 4강입니다. 4강에서 아마 이창호 9단을 가장 많이 잡은 기사가 유창혁 9단 일거예요.
15/08/02 02:54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4강권 번기까지 감안한다면 확실히... 결승 위주로 기억하다보니 크크
닉네임을바꾸다
15/08/01 19:10
수정 아이콘
요새는 중국에 밀리는 느낌이 있지만....
15/08/01 19:30
수정 아이콘
2013년에는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기전을 모두 휩쓸었죠. 이런건 한국의 전유물이었는데 중국의 신예들의 물량공세 앞에서 서서히 밀리다가 결국... 그래도 요즘 다시 한국의 최강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박정환과 그에 못지 않은 김지석을 필두로 반격의 태세를 갖춰가는 모양새입니다. 이세돌-구리의 라이벌전도 한시대를 흘러간 느낌이라 이제 차기들의 시대가 도래하겠죠. 박정환이 최근 3년새 난립한 한-중 신예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대회 2회째 우승을 얼마전에 거뒀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김지석 역시 삼성화재배를 쟁취해내면서 국내 바둑계에도 활로가 생기고 있습니다.

중국의 집단연구 시스템으로 인해 그 인해장막에 시달리던 한국도 얼마전부터 바둑 선수촌 개념을 도입해서 국가대표 기사들을 좀더 강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유창혁 기사가 고생해주시는 듯.... 앞으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물론 한중간의 치열한 대권 다툼, 그리고 일본의 희망 이야마 유타를 비롯한 일본 기계의 분전까지도 겹쳐서 흥미진진해질 것 같습니다.
WAAAGH!!
15/08/01 19:29
수정 아이콘
진짜 바둑의 신이 있다면 그 신과 가장 가깝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전성기때 이창호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바둑이 수천년전에 생긴 이래로 역사상 최고라고 생각됨...

내 목숨을 걸고 한명한테 바둑을 두게 하려면 이창호.. 다른사람은 생각이 안남.
닉네임을바꾸다
15/08/01 19:46
수정 아이콘
뭐 한때는 이창호에게 지는건 한국에게 지는게 아니라 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거라 했으니...
15/08/01 19:50
수정 아이콘
사실 농심배 5연승 이전에도 중국바둑계나 바둑팬들은 이창호를 신처럼 취급(?)했습니다. 그게 2005년 농심배 신화를 통해서 절정에 달했던 것이죠. 중국이 무협의 본산인 만큼 바둑기사들이나 표현도 무협지를 보는 듯한게 많은데 그들의 눈에 이창호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절대고수였으니...
솔로10년차
15/08/01 19:55
수정 아이콘
사실 세계기전으로 위상이 가장 달라진 사람은 서봉수겠죠. 변방인 한국바둑, 일본에서 최고를 기대받다 돌아갔던 조훈현을 제외하고는 무시당했던 한국바둑이었는데요. 하지만 그 조훈현과 단 둘이 두다시피했던 것이 무려 10년... 조훈현의 응씨배 제패만해도 '조훈현'이 잘났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서봉수의 응씨배 제패는 정말 '한국바둑'의 지배를 선언하는 사건이었죠. 그것도 이미 괴물 이창호가 시야에 들어온 시기였는데.

저도 바둑은 전혀 못 두는데도, 이 시기의 바둑사를 읽는 것만으로 얼마나 재밌는지 모릅니다. 장르소설같아요.
라라 안티포바
15/08/01 20:12
수정 아이콘
이창호 선수의 마지막 불꽃은 응씨배 4강 vs 박정환 이었다고 봅니다. 1국 다 잡아놓고 박정환 선수의 신들린 흔들기에 미친듯이 흔들려서 내주고...2국 완패 ㅠㅠ
그때 응씨배 우승을 못한 박정환 선수가 얄밉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언제 또 이창호 선수에게 이런 기회가 올까하는 마음이 제일 아쉬웠는데
결국 그 후부터는 시드가 아니고서는 세계기전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네요. 국내기전은 매해 한개정도는 4강에 안착하긴 합니다만...
기세파
15/08/02 00:07
수정 아이콘
저는 씨에허를 이기고 결승에 갔을 때가 가장 아쉽네요. 바둑 내용도 너무 좋아서 드디어 이번에는 우승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어제의눈물
15/08/01 23:20
수정 아이콘
왜 신산의 위엄 속에 쎈돌의 강력함이 느껴지는 것인지....
닉네임을바꾸다
15/08/02 00:36
수정 아이콘
포스트 이창호의 선두주자다보니...
인공지능모기
15/08/03 19:38
수정 아이콘
콩샤오춘 눈물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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