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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1/29 16:15:36
Name 이걸어쩌면좋아
Subject (혐?) 7년전에 편의점 강도 당했던 이야기
0.
08년 3월말에 전역을 하는 바람에 칼복학도 못 하고 알바하면서 복학공부도 하고 했었습니다. 편의점 알바는 9월쯤부터 했었고, 세 군데 면접을 봤었는데 마지막으로 갔던 곳이 점장누나(당시 20대후반..)가 이뻐서(...) 거기로 일하기로 했었습니다. 야간이었고, 시급은 요즘에 그렇게 주면 노동부에 당장 고발당할 수준이었지만 전 용돈벌이겸 공부할 생각으로 하는거라 크게 상관은 없었죠.

1.
08년 겨울(정확한 날짜는 언급을 안하겠습니다. 죄송..)에 평소와 다름없이 인수인계하고 물건 들어온거 검수해서 진열하고 있었는데 새벽1시쯤에 키가 저보다 머리하나는 더 큰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어서오세요~하면서 일어났는데 칼을 꺼내네요? -_-;; 날이 30센치정도는 되보이는 소위 사시미 비슷한 칼이었습니다. 금고에 있는거 다 꺼내라면서 비상벨 누를생각말라고 위협했습니다.

2.
편의점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카운터의 비상벨은 눈에 잘 안띄는 곳에 하나,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위치에 한두개 더 있습니다. 강도에게 말걸면서 시간끌고 비상벨을 몰래 누르려고 시도를 했죠(나중에 cctv 확인해보니 어버버버..-_-;;) 어찌저찌 비상벨은 눌렀는데 빨리 돈 안꺼내고 뭐하냐고 칼을 휘두릅디다. 전역하고 한참 운동할때라 무의식중에 피해서 손목잡고 몸싸움 좀 하다가 칼을 뺏었습니다. 칼 뺏기자마자 뒤도 안 보고 왕복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더군요..

3.
사람이 극도의 흥분상태가 되면 통증을 못 느낀다던데, 그걸 그날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비상벨을 눌러놨던지라 사설경호업체에서 제일 빨리(3분정도 걸렸던것 같네요) 왔는데, 직원들이 몸싸움하느라 다 부서진 카운터를 보고 멍..때리더니 제게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네 괜찮은데요..했더니 손에서 피가 많이 난다고.. 몸싸움하다가 칼에 손을 좀 베였는지 카운터 바닥에 피가 흥건하더라구요. 그제서야 아 다쳤구나..싶어지면서 통증이 느껴지는데, 많이 아팠습니다.. -_-;;

4.
비상벨 하나에 연락되는 곳이 참 많구나..하는걸 알게됐습니다. 경호업체에서 제일 먼저 오고, 순찰중이던 경찰들이 오고, 119 구급차도 오고, 당직서던 형사들에(경찰서가 차로 3분거리..) 편의점 슈퍼바이저도 오고 점장누나와 공동으로 편의점 운영하시는 형님들도 오셨습니다. 실수로라도 잘못 누르면 큰일나겠구나 싶더라구요. 비상벨 하나에 몇명이 오는거야 싶기도 하고..

5.
아침7시까지 하는 야간알바였던지라 119에선 손 베인 곳 응급처치만 해주고 날 밝으면 병원가서 치료받아라..라고 해줬습니다. 날 밝으니 경찰분들이 계속 들락날락거리면서 cctv 복사해가고 지문 채취하고 뺏었던 칼은 증거품이라고 회수해가고.. 계속 경찰들이 가게안에서 그러고 있으니 손님들이 들어오려다 경찰들때문에 안 들어오는걸 보고 슬펐던 기억이 나네요..-_-;; 오른손 두 군데를 크게 베였는데, 한 군데는 손등이라 괜찮았지만 다른 한 군데를 잘못 베여서 집게손가락쪽 인대가 다쳤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젓가락질이나 글씨쓰거나 할 때 남들이 보면 쟤 뭐야..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하게 됐지만, 힘이 잘 안들어가는걸 어쩌겠어요(...)

6.
담당형사분은 제가 일하는 시간에 하루 한번씩 찾아와서 전과자들 사진을 쭉 보여줬습니다. 이 중에 있느냐..하면서요. 한 2주를 그러다가 닮았는데요..하니 형사분이 오케이 알았어 하고 다음날 연락이 옵니다. 신병확보했으니까 와서 확인하라고..-_-;; 닮았다고만 했는데 데려오는걸 보고 죄짓지말고 착하게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대질심문도 했는데 이 사람 아닌 것 같은데요..하니 잡혀온 분은 저 아세요??!! 이러고 형사들은 옆에서 조용하라고 윽박지르고.. 경찰서가 아니었으면 생활하는 사람들로 보일정도였습니다. 아니라는게 확인되고선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길래 못잡나보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시간지나서 복학하고 편의점 알바도 그만두게 되고.. 그랬었네요.

7.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 이젠 술자리등에서 나 예전에 편의점 알바할때 강도가 들었었는데~ 하면서 얘기하는 정도였는데, 조금 전에 경찰서에서 당시 담당형사분께 전화가 왔습니다. 그때 채취한 지문과 기타 증거품들로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했는데 그때 그 강도가 맞는지 확인하러 오실 수 있겠느냐..네요. 7년전 사건인데 아직도 수사하시냐고 했더니 '사건은 계속 생기고 수사하다보면 새로운게 나오고 하니까요~ 공소시효 아직 안 지났어요~ 허허'하시네요. 다음주 수요일까지 출장인지라 그 이후에 가기로 했습니다.

8.
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때마다 가끔 생각나던 일이었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적어봤습니다. 당시 점장형/누나와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주라면 줘 무식한놈아'라고 꾸중을 한바가지 들었고 저도 나이먹고 생각해보니 그땐 젊어서 눈에 뵈는게 없었구나..-_-;; 싶습니다. 형사분들도 강도들면 달라는대로 다 주고 나중에 잡는게 낫다고 그러구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도 꾸물꾸물하고 예전 일이 생각나는 날이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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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가는곳
15/01/29 16:21
수정 아이콘
안산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 많은 새벽에 짱 조용한 주택가 야간알바 7개월 했었는데 내심 강도한번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경찰공부하는데 경찰서한번 가보고싶어서..) 안오더라구요. 근처다방에서 살인사건1번, 다른편의점 강도1번이 끝. 제 인상이 무서워서 안왔나..흐규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0
수정 아이콘
당시엔 경찰들이 하도 들락거리고 물어보는게 많았던데다 경찰서까지 두번 왔다갔다해서 좀 끝냈으면 좋겠다..싶었습니다..크크
집요하게 캐묻더라구요. 그러는 직업이긴 하지만..
15/01/29 16:22
수정 아이콘
어우...칼을 뺏으시다니;;
저같으면 그냥 돈 다주고 덜덜떨었을것같은데...용감하시네요......크게 안다치셔서 다행입니다 ㅠ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1
수정 아이콘
용감..보다는 객기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_-;; 어디 안 잘리고 멀쩡한게 천운이었던 것 같아요..
켈로그김
15/01/29 16:23
수정 아이콘
감기는 조심안해도 강도는 조심할께요 ㅡㅡ;;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1
수정 아이콘
요즘 감기 독해요!
15/01/29 16:31
수정 아이콘
와 근데 칼들고 있는 강도하고 싸워서 칼을 뺏으시다니 용기가 진짜 대단하시네요.

손에 힘도 안들어갈 정도로 베이셨는데 ㅠㅠ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3
수정 아이콘
마우스 클릭까진 되는데(안될때가 더 많긴 합니다) 글씨쓸 때 고역입니다. 젓가락질이야 디오씨의 노래처럼 젓가락질 못해도 밥 잘 먹으니까요..
오클랜드에이스
15/01/29 16:44
수정 아이콘
닉값하는 이야기네요 크크

저같아도 그상황에 가게 충성도고 나발이고 일단 저부터 살고 보려고 했을텐데 용기있으시네요.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4
수정 아이콘
갓 전역했던때라 객기충만했던 것 같습니다..크크
지금 하라면 있는 거 다 줄 것 같아요.
15/01/29 16:47
수정 아이콘
헐 칼든 강도랑 싸우시다니 ㅡㅡ;; 엄청나시네요
저로선 상상도 못할...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5
수정 아이콘
뭔가 칼든폼이 어설퍼서 뺏을수도 있겠는데?? 싶어서 덤볐던건데 평생 쓸 운을 거기에 다 쓴 것 같습니다. 젊을 때의 객기도 있구요..-_-;;
이 분이 제 어머
15/01/29 16:50
수정 아이콘
돈은 일단 주고 나중에 잡는게 낫죠...;;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6:56
수정 아이콘
알바 첫날 포스기 조작법, 인수인계때 할 일 등등 업무에 관한 것만 배워서 일단 주고 나중에 잡는다는게 낫다는걸 몰랐던지라..흐흐
15/01/29 17:21
수정 아이콘
지금은 보험을 들어놔서 철금고안에 있는돈이 털리지 않는이상
포스기 금액정도는 보험이 되죠 흐흐

금고 비밀번호를 모르는데 알바한테 물어봐야..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9:27
수정 아이콘
포스기에는 얼마있지도 않은데 그걸 털려고 하는게 참..흐흐
보험이 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진작 알았더라면...
눈시BBand
15/01/29 18:07
수정 아이콘
다행이고 대단하시기도 하고;;;
보고 나니 기억나는 게 집 앞에 편의점에서 알바(겸 손님 ( ..))했는데 어느 날 동갑인 알바가 다른 사람이랑 담배 피우고 있더군요. 그 사람은 가고 적당히 시간 떼우다 갔는데 알고보니 그 때 그 사람이 돈 내놔라고 했었다고; 제가 구해준 거라고 했던 적이 있네요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9:27
수정 아이콘
그 동갑 알바분도 위험했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눈뜬세르피코
15/01/29 18:19
수정 아이콘
아니... 그냥 불러다가 얼굴 맞냐고 물어보고 대질 심문을 합니까? 이러니 나중에 보복을 당하지;;
영화에 나오듯이 어디 가둬놓고 미러 창(이쪽에서만 보이는)으로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cadenza79
15/01/29 18:59
수정 아이콘
본문에는 "그냥 불러다가 얼굴 맞냐고 물어보고 대질 심문을" 한다는 말은 없는 것 같은데요?
본인이 자백하면 대질이 필요 없고 단지 확인만 할 거구요. 다투는 경우라면 범인식별절차를 밟죠.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9:34
수정 아이콘
올수있겠느냐->와서 봐라->잘 안보인다하니 밖으로.. 였습니다. 그후엔 조서쓰고 나왔는데 이후엔 연락이 없었습니다.
cadenza79
15/01/30 15:16
수정 아이콘
저는 앞의 건은 범인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고, 아니라고 해서 풀려난 사람이 보복할 리는 없는 것이라 별 문제가 없을테니, 눈뜬세르피코님께서 말씀하신 건 당연히 이번 것이라고 생각했네요. 아직 경찰서 가지도 않으셨는데 무슨 말씀인가 싶었습니다.
이거 몇 년 전에 범인식별절차 안 거쳤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이 우수수 나온 다음에는 수사관행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가시면 좀 바뀌었을 겁니다.
이걸어쩌면좋아
15/02/02 21:58
수정 아이콘
경찰서 갈일이 다신 없을줄 알았는데.. 범인식별절차니 하는것도 댓글달아주셔서 알았습니다. 이번에 가보면 달라진 점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이걸어쩌면좋아
15/01/29 19:32
수정 아이콘
본문에는 안썼는데, 처음엔 신병확보했는데 올수 있겠느냐고 했었습니다. 가겠다고 하니 미러창? 같은데 들어가서 보라고 하더군요. 잘 안보인다하니 절 용의자 앞에 데려가서 자세히 보라고 했고.. 아닌것 같다했는데 그러면서 저런겁니다. 앞으로 데려나가는데 제 의사는 안 묻구요.
지금 생각하니 위험하네요 이거..
마세영
15/01/30 19:58
수정 아이콘
헐.. 칼든 강도랑 몸싸움을 하시다니 ㅠㅠ 크게 안다치신게 다행이네요 !!
이걸어쩌면좋아
15/02/02 21:56
수정 아이콘
조금만 잘못 베였어도 손을 못쓸뻔했다는데 정말 천운인 것 같습니다..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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