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치를 못 먹습니다. 지금이야 먹을려면 먹는데, 영 끌리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제가 편식을 하는 건 아닙니다. 야채나 채소류를 좋아해서 말처럼 당근을 씹어먹으며 아침을 때울 때도 많고 샐러드도 자주 먹습니다. 고기 먹을 때도 꼭 야채를 곁들여먹고 요리할 때는 파, 당근, 양파 삼종신기를 어떤 요리건 넣어서 해먹는 바람에 식비지출과 음식물 쓰레기의 발생이 종종 예산을 벗어나기도 하죠. 야채류를 안먹고 고기나 탄수화물만 먹고 있으면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은 불안함에 좀 챙겨먹을려고 하기도 하구요. 웃기는 건, 저는 김치찌개는 없어서 못먹고 김치전은 거의 환장합니다. 삼겹살 먹을 때도 불판 위에 항상 김치를 구워먹는 편이죠. 다만 생김치를 정말 꺼려할 뿐입니다.

아마 제가 배추란 야채를 별로 안좋아해서 그런 걸까요. 굽거나 볶은 걸 잘 먹으면 또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배추란 야채의 아삭거림과 향, 그리고 생김치가 뿜어내는 발효식품 특유의 냄새가 저를 좀 역하게 만드는(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저는 좀 메슥거리는 걸 느낍니다.)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김장하면서 커다란 김치 조각을 입에 넣는 장면이나, 라면에 김치가 없으면 못 먹는다는 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렁탕에 깍두기를 풀어헤쳐 먹는 장면은 정말 경악스러워요. 멀쩡한 국에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이런 제 식성때문에 어렸을 적에는 참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너그러우신 분들이라 제가 김치를 못 먹는다는 사실에 크게 괘념치 않았지만, 문제는 저희 할머니였죠. 지금 생각해도 어린 저에게 큰 부담을 안기셨습니다. 김치를 먹어야 한국 사람이다, 김치를 먹지 않으면 병에 걸리고 고생할 것이다, 식탁에서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며 하시다가 끝내 김치를 거부하는 저를 앞에 두고 저희 부모님의 욕을 한 바가지씩 쏟아내며 식탁머리에서의 분쟁을 끝마치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퍽퍽한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며 죄책감과 열등감도 같이 삼켰어야 했죠. 반쪽짜리 한국인, 질병을 예약해 둔 나약한 인간, 그리고 수저를 놓을 때쯤이면 빌어처먹은 가정 교육 아래에서 자라난 되바라진 애새끼로요. 물론 항상 질책만 하셨던 건 아니고, 크면 자연스레 김치를 먹게 될 거라고 격려를 해주시는 일도 많았습니다만 글쎄요, 저는 그렇게 격려와 기대 속에서 김치를 먹어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일까요. 볶음 김치가 얼마나 고소한지, 김치찌개가 얼마나 얼큰한지를 깨달으며 언젠가는 생김치 역시도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이게 헛된 희망이라는 걸 비로서 깨달은 것은 바로 군대에서였습니다.

훈련소에서 친하던 동기 형이 자기는 김치를 아예 못 먹는다고 당당하게 말 하는 데서 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치도 못먹는다고 사내다움을 의심받을까봐 식판 위의 김치를 억지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대던 제가 얼마나 한심하던지. 자대에 가고 나서 저는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김치도 못 먹으면 쫄병 때부터 찍힌다고 으름장을 놓던 할머니가 틀렸다는 것을요. (음식을 너무 음미한다고 놀림당한 적은 있었습니다만) 그리고 전 생김치 컴플렉스를 완전히 떨쳐버렸습니다. 김치 역시도 내가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인 반찬 중 하나였던 겁니다. 그걸 못 먹는다고 제가 뭔가 가짜나 반푼이가 되는 건 아니었던거죠. 참 별거 아닌 고민이었는데도 20년 넘게 끌고 왔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보면 좀 서글프기도 하구요.

제가 김치를 못 먹는 건 그냥 제 체질이 정말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제 탓도 부모님 탓도 아니었습니다.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던 거죠. 어느새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그렇게나 걸러내던 당근을 이제는 통으로 쌈장에 찍어먹고, 된장찌개에는 두 그릇도 뚝딱 해치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김치는 그리워해 본 적이 없는 음식으로 남았습니다. 편식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싸가지 있게 밥을 먹기 위해, 아마 오랜 시간 후에도 멀리 할 것 같은 이 음식을 힘겹게 씹어 삼켜야 했던 어린 시절의 고통을 할머니는 아실까요. 그냥도 싫고, 씻어 줘도 싫었던 김치는 지금 먹어도 별로 맛이 없습니다. 안 좋아해서 안 먹는다는 음식을 저는 왜 그렇게 낑낑대며 먹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그 혹독한 식사 시간을 견뎌내며 제가 지금 얻은 건 무엇일까요. 왜 그땐 나트륨 덩어리에, 매운 건 당최 소화를 못시키는 제 위장을 고려하면 김치는 안 먹는 게 좋겠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요.

누가 안 시켜도 이제는 기름진 거, 짠 거, 매운 건 저절로 피합니다. 가급적이면 싱싱하고, 조미료가 덜 들어가고, 야채가 듬뿍 들어간 음식들을 찾아 먹지요. 그렇지만 이런 저를 보며 그 누구도 칭찬하거나 제 인격을 높이 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까탈스럽게 군다는 또 다른 핀잔만 받을 뿐이죠. 김치 조각을 앞에 두고 못 먹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저 아이를 보니 어린 시절의 제가 떠올라 서글퍼집니다. 정말로 안되는 일을 왜 저렇게 당장 해결해야 하는 걸까요. 그 조금이 그렇게 힘들고 진저리나는 일인 걸 몰라주는 어른들이 이 악물고 삼키던 김치를 가지고 10년 후에는 사과하거나 자랑스러워 해주지 않던데. 지금도 김치 먹이기에 그렇게 혈안이 된 어르신들이 있을까 싶지만, 김치 가지고 설마가 사람 잡을까봐, 여리디 여리던 유년기에 지워지지 않을 김치 자욱이 생길까봐 걱정됩니다. 김치 못 먹는 거, 정말 별거 아닙니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라면 다른 방법과, 다른 식품들로 대안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