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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22 14:58:46
Name 김제피
Subject [일반] 내 의지로 서 있고 싶은데, 설 수가 없어
보통 회사 이메일로 다양한 거래처 업무를 처리한다. 대부분의 업무를 이메일로 처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팸메일도 많이 본다. 가끔은 너무 많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스팸의 양은 많지만 종류는 심플하다. 99%가 발기부전 치료제. 즉, 비아그라 판매 광고이기 때문이다. 입사 초에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스팸을 걸러내려는 시도를 했다. 스팸 차단은 어마어마한 양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했다. '중년'과 '발기'를 검색하면 모조리 걸렸다. 예외는 없다.

차단하면 안 오겠지.

천만에. 순진한 생각이었다. 비아그라 광고는 발딱 세워준다는 그들의 달콤한 멘트처럼 혹은 스스로 서고 싶어 하는 중년들의 소망처럼 지워도 지워도 끝없이 들어왔다. 지금은 결국 차단을 포기했다. 대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훌륭한 어른의 문턱을 넘은 그들도 '신체적 자립'은 별개의 문제였구나. 그들의 서글픈 '자립 불가'는 쏟아지는 스팸으로 상쇄되고 있었다.

신체적 자립이 비교적 잘 되는 젊은이들에게는 다른 고민이 있다. 그들에게 온전한 자립이란 언젠가부터 꿈 같은 이야기가 됐다. 많은 이유로 그 시기가 늦어졌지만 역시 '경제적인 자립' 문제가 가장 크다. 아무렴. 경제적 자립이야말로 온전한 자립의 요소 중에서도 핵심이니까.

애석하게도 경제적 자립은 중년을 5분 만에 발딱 세워준다는 광고처럼 신통한 방법이 없다.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고 스펙을 쌓던 젊은이도,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던 젊은이도 혹은 밤하늘 별처럼 많아진 각종 청춘 멘토들의 쓴소리와 위로를 자양분 삼아 이겨내던 젊은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엇 하나 신통치 않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위엄을 드러내는 신체적 자립과는 달리 경제적 자립은 요원하기만 하다.

여자친구와 애인 앞에서는, 사실 여자친구와 애인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발기'할 수 있지만 집값이나 결혼 비용 그리고 학자금 대출 따위를 생각하면 지나친 게 아닐까 걱정되던 젊은이들의 그것도 중년의 그것처럼 오그라든다. 집 사려면 내 월급을 100만원씩 저축해도 몇 년이지? 따위의 의문을 가졌다가는 안 그래도 떨어진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경제 지식으로 무장한 일부 젊은이들이 호기롭게 펀드을 오가지만, 그 뿐이다. 어떤 것도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괜히 불끈불끈해져서 주식하다가 안 그래도 서글픈 잔고가 오그라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젊은이들의 경제는 20대부터 이미 발기 불능이다.

중년도 청년도, 내 의지로 서고 싶은데, 설 수가 없어.

5분 만에 설 수 있다는 그들의 광고를 믿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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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그김
14/09/22 15:04
수정 아이콘
재택근무 500만원 보장.. 이런거라도 믿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 말이죠.

제대로 서려면 필연적으로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은 비눗물을 뿌려놓은 대리석 바닥같아서, 서기도 힘들 뿐더러 넘어지면 많이 아프죠.
그래서 너나할것 없이 보행기를 끼고 아장아장..
사악군
14/09/22 15:16
수정 아이콘
비유가 너무 적절하네요..
다다다닥
14/09/22 18:39
수정 아이콘
통찰력에 감복하고 갑니다.
레드칼리프
14/09/23 04:05
수정 아이콘
굿입니다. b
14/09/22 15:22
수정 아이콘
본문은 둘 중 하나만 안되는 사람들 얘기지만, 현실은 항상 상상보다 잔혹하지요. 둘 다 안되는 사람도 제법 있을 걸요?
김제피
14/09/22 15:25
수정 아이콘
하, 그것 참. 제가 경솔했네요.

본문에 젊은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비교적이라는 말을 추가 했습니다.
14/09/22 15:29
수정 아이콘
반농이었는데 수정까지 해주시니 제가 민망하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솔직히 한국 남자들은 경제력 좋은 고자할래 정력 절륜한 백수할래? 하면 대부분 전자를 택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근데 이게 글의 주제가 아니잖아!
14/09/22 15:33
수정 아이콘
'10억 받기 vs 고자되기' 라는 유명한 질문이 떠오르네요
켈로그김
14/09/22 15:39
수정 아이콘
그래서 나온 것이 고(자)부(자) 갈등이라는 말이지요.
동양문화권에서 비교적 심하다고는 합니다.
김제피
14/09/22 15:54
수정 아이콘
통찰력에 탄복하고 갑니다.
김제피
14/09/22 15:35
수정 아이콘
저도 농으로 받았다가 생각해보니, 당사자들 중에 저도 포함되는 것 같아서 심각해진 마음으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전자입니다. 고자도 세운다는 광고도 봤습니다. 허허허.
BetterSuweet
14/09/22 15:41
수정 아이콘
글 되게 재밌게 읽히네요.
김제피
14/09/22 15:55
수정 아이콘
발기가 내용에 있다면 논문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크크.
헥스밤
14/09/22 16:18
수정 아이콘
절대로 아닙니다. 발기와 성병과 섹스와 파트너링이 한 문단에 한번씩 나오는 논문을 수백 편 읽고, 비슷한 내용이지만 퀄리티는 훨씬 후진 논문 두 편을 써본 입장에서 장담합니다...

쉽고 재밌게 읽히는 건 김제피 님 필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크크.
방심하고 피지알 들어왔다가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제피
14/09/22 16:48
수정 아이콘
와, 과거 군대 인트라넷 책마을 시절은 물론 피잘을 알게 된 후에도 추게와 자게를 오가며 헥스밤님의 글을 탐독했는데, 이런 칭찬을 들으니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음 정말 발기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옛날에 읽었던 글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책마을 시절인데 헥스밤님이 쓰신 '담배 한 개피를 달라는 말에 대하여'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담배를 '갑'으로 빌린다는 발상이라니. 얼마나 정의로운가요 크크.
14/09/22 18:19
수정 아이콘
흐음. 이 두 분이 서로 칭찬하시는 걸 보니 왠지 좀 수상하네요.
이렇게 막 서로 칭찬하시다...
막 서로 사주시다가...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아 안됩니다! 곰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들을 생각하셔야죠 ㅠㅠ
노틸러스
14/09/22 15:49
수정 아이콘
서긴 참 잘서는데 미래는 정말 불안하네요..
자게니까 이정도 댓글은 괜찮겠지..
영원한초보
14/09/22 18:01
수정 아이콘
담배가 해롭답니다
공상만화
14/09/22 15:58
수정 아이콘
결혼을 안 할거라 전자는 상관없는데 후자는 심각합니다...
opxdwwnoaqewu
14/09/22 16:04
수정 아이콘
결혼 안해도 중요한데...
14/09/22 16:10
수정 아이콘
짧은 글인데 좋네요.
14/09/22 18:52
수정 아이콘
이런 좋은 서다 에 관한 고찰이라니
王天君
14/09/22 21:25
수정 아이콘
오오 재미있네요
냉면처럼
14/09/24 01:16
수정 아이콘
책을 얼마나 읽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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