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이 네 가지의 기본 상호작용(fundamental interaction)으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어떤 힘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이는 게이지 보존에 의해 매개되는 소립자간의 상호작용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까놓고 말해서 뭔 말인지 이해하시는 분 별로 없으시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저 네 가지 힘이 이 세상 모든 힘의 근원이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가시면 될 것 같아요.

  여하튼 네 가지 상호작용들은 제각기 이름이 있습니다. 강력(강한 핵력), 약력(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인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마지막에 나온 이름을 보고 안도하셨을 겁니다. 아, 중력 말이지. 이건 나도 알아! 하고요.


  그런데 이 중력이란 놈이 좀 독특합니다. 첫째로, 다른 세 개는 어째서 그런 힘이 생기는지 원리가 밝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은 아무도 원리를 모릅니다. 아니 거 영국출신 동정남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발견했잖아! 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뉴턴이 발견한 것은 중력(만유인력)이 있다는 사실과 그 힘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 힘이 어떤 원리에 의해 생기는지는 밝히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직도 아무도 모릅니다. 중력자라는 놈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할 뿐이지요.

  둘째로, 중력은 다른 세 개에 비해 매우 약합니다. 어느 정도로 약하냐 하면, 가장 강한 힘인 강력의 1/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의 힘이며, 그나마 약한 힘인 약력과 비교해도 1/0000000000000000000000000에 지나지 않는 위력입니다.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드시죠? 중력의 세기을 1로 놓으면 강력은 10^38, 전자기력은 10^36, 약력은 10^25가 됩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약한 힘이죠. 그런데 왜 강력이니 전자기력이니 하니 뭔지도 모를 놈들은 당최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째서 약해빠졌다는 중력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느냐? 그건 중력이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니 태양이니 하는 것들이 워낙 터무니없이 크다 보다 중력도 그만큼 커 보이는 것이죠. 사과 한 개도 자신의 중력을 지니지만 그건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잖습니까. 사과는 질량이 작으니까요.

  게다가 중력은 더욱 터무니없는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력의 세기는 두 물체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약해진다는 겁니다. 이건 고등학교 공통과학 수준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것이 무얼 의미하느냐?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중력의 세기는 아주 약해질망정 0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즉 중력의 작용거리는 무한대입니다. 제가 지구에 서 있고 집을 나간 아내와 딸내미가 명왕성에 가 있더라도 우리 가족 간에는 여전히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거죠. 직관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전자기력도 역시 작용거리가 무한대입니다)


  이런 중력의 독특한 면모는 물리학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이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들은 그 수식이 간단하고 명료할수록 그걸 ‘아름답다’고 느낀다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4가지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약력과 전자기력은 이미 통합되었고, 강력도 아직 실험적 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얼추 어느 정도 통합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력입니다. 중력이란 녀석이 워낙 기묘하다 보니 도저히 다른 힘들과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운 거죠.


  이 중력이라는 힘은 그래서 매력적입니다. 다른 힘들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한 힘이고,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다른 힘들과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쓸쓸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나를 잊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기특한 녀석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병약한 미소녀 콘셉트네요.

  그러나 중력은 질량에 비례해서 커지다 보니, 아무리 작은 힘이라 해도 모이고 모이고 또 모여서 결국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강력이나 약력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약한 사람 여럿이 모여 결국 강한 사람을 이겨낸다는 건 참으로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주제잖아요? 게다가 더군다나 질량을 정말정말 많이 모아서 아주 좁은 곳에 꾹꾹 우겨넣다 보면 그 농축된 중력이 마침내 강력조차도 이겨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탄생하는 것이 바로 그 이름도 멋진 블랙홀이죠. 이쯤 되면 그 동안 자신을 약하다고 괄시해 왔던 강력이니, 약력이니, 전자기력이니 하는 녀석들 귀싸대기를 맛깔나게 후려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한테 당하고만 살 줄 알았냐? 인생은 실전이야 이것들아~ 하고 외쳐 주면서 말이지요.  




여유가 되면 다음에는 상대성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써 볼까 합니다. 아니면 사기꾼들과 열역학 법칙에 대해 쓰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사실 피지알에서 물리 관련 글을 쓰는 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 글은 어디 보자...... 2013년 1월에 썼네요. 이 추이대로라면 다음 번 물리 글은 2016년 초가 되겠군요. 제가 이렇게 게으릅니다.

기담 언제 쓸 거냐! 라고 물어보실 분들에게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