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먹으면서 아내에게 안부카톡을 보내는데 답이 'ㅠㅠ' 로 왔습니다. 무슨일이야? 하니까
'나 지금 수사받고 있어. 누가 내 명의 도용했대'
라고 답이 오는겁니다.
(지금에서야 보이스피싱이라는 알고있으니 이대목부터 이상하지만 처음엔 전혀 의심을 못했죠.)

그래서 '헐... 수사? 경찰서야?' 하니까 '응' 이라고 대답이 와서 저는 경찰서에 불려가서 조사받는줄 알았죠.
그런데 알고보니 그건 아니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전화로 조사중이라고 했습니다.
경찰과 통화를 하면서 저랑 PC로 카톡을 주고받는 상황이었죠.

경찰의 말로는 '사건번호 형제 5005 김정호 명의도용사건' 이라고 하고, 제 아내의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서 6000만원을 사기를 친 사건이 발생해서 조사중이라는 겁니다.
이 때문에 명의를 도용당한건지 제공한건지 조사를 위하여 계좌를 동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통화중이라고 하면서, 그쪽에서 보냈다는 위 파일을 보내주었습니다.
(이걸 받자마자 좀더 꼼꼼하게 봤어야 하는데...아니 꼼꼼하게 읽는다고 읽긴 했는데 저는 진짜 사건설명 및 조치사항들을 설명해놓은 것인줄 알고 의심없이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 아내에게 당황하지 말고 진정하라고 하고 통화가 끝나면 연락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전화가 30분이 넘어가도록 계속 길어지는겁니다. 무슨 전화로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하나... 싶었는데 일단 저는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침착하게 생각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카톡이 오는데 '지금 현재 계좌는 동결하고, 현재 계좌에 있는 금액은 인출해서 다른 곳에 입금시켜야 한다' 라고 말하는겁니다.
이때부터 응???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워낙 당황한 것도 있고 해서 의심을 확신하지는 못하고 그때서야

'거기 부서가 어디야? 내가 전화좀 해보게.'
'뭔가 이상한데 담당자 이름이랑 부서 말해봐.'

까지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답이 없어요.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뭔 전화를 이렇게 오래해? 경찰 맞아?'

를 보냈는데, 더 이상 카톡 확인을 안하는거에요. PC 카톡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자리를 떠나서 어디론가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아차 싶어서 구글에 검찰청 사기전화 등등을 검색해보니 보이스피싱 관련정보가 줄줄이 뜨는겁니다...!

여기부터 환장하는거죠. 카톡으로 그거 보이스피싱같다고 외치듯이 메세지를 보내도 확인을 안하는겁니다.
이미 ATM 으로 걸어가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떠올라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통화는 계속 그 보이스피싱 작자들과 하는 상황이고요.

연락할 수단이 없자 그때부터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말부부라서 차타고 2시간 넘는 거리에 있거든요. 어떻게든 막아야겠다 싶어서 직장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받는 곳이 행정실같은 곳이라 모조리 통화중이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겁니다. (딥빡...)
그러다가 이건 비상상황이라는 생각에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는 상황같은데 연락이 되지 않아 계좌를 동결시키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죠. 그러자 경찰쪽에서 바로 주거래은행 쪽으로 통화를 넘겨서 조치하게끔 하는겁니다.

한시가 다급한 상황이라 바삐 주거래은행 직원과 통화를 해서, 지금 아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ATM 에 가고 있는 상황같다, 거래를 빨리 정지시켰으면 좋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아내의 주민등록번호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것을 말해주니  인터넷뱅킹과 카드거래 정도를 정지시킬 수는 있더군요. 하지만 계좌 자체를 정지시키려면 계좌번호를 다 알아야하는데 그것까지는 제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일단 그렇게 조치는 해 놓았는데 지금 이미 송금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불확실한 상황... 여전히 아내와는 통화가 되지 않고... 그러다가 아까 통화했던 경찰쪽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 직장 위치를 말해주면 그 근처 지구대에 연락을 넣어 출동하겠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경찰까지 출동을 했습니다.


후... 그런데 그때 아내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ATM 까지 그 보이스피싱 작자하고 통화를 하면서 가다가,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전화기를 확인하니 제가 보낸 카톡을 보게 되었다고요.
그래서 중간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 진짜 성질도 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미묘하더라고요.
일단 급히 다시 경찰에 전화를 해서 다행히 송금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출동을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속하게 출동하셨을 경찰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게 바로 아까 오후 2시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아내는 지금 일이 있어서 더 구체적인 상황은 나중에 더 들어야겠지만, 지금은 마음을 좀 정리하니 이제서야 이상했던 구석이 하나 하나 보이더군요.

개인정보 유출이 이렇게나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 첨부파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화번호를 알고 이름과 주민번호만 알아도 그럴듯한 사기자료를 만드는게 가능합니다. (지워놓은 부분이 실명과 주민번호) 실명과 내 주민번호가 적혀 있는 자료를 들이미는데 솔직히 당황 안할수가 없겠더군요.
물론 잘 아시는 분들은 위 첨부파일만 해도 용어나 양식 같은게 이상한 부분이 한두군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문외한이라면 속아넘어갈 수 밖에 없지요. 웃긴건 대검찰청이라고 하면서 아래 홈페이지는 법무부 홈페이지....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검찰총장 싸인도 깨알같이 다르더군요)

좌우지간 일단은 그렇게 무사히 사건을 잘 넘겼습니다. 아내가 평소 좀 순수하기는 해도, 절대 눈치가 느리거나 어리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직업도 전문직이고요. 그런데도 사람이 당황하면 눈에 보이는게 잘 없습니다. 진짜 보이스피싱 무섭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와 별개로 개인정보 보호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과, 사실 보이스피싱과는 별개이긴 한데 명의도용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명의로 휴대폰 개설하는 등의 문제도 심각하더군요;

이런 '명의가 도용당해서 계좌를 정지해야한다' 수법의 보이스피싱이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것 같으니 주의하시고, 비슷한 류의 전화가 왔을때 항상 당황하지 않고 대처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겠다... (이미 공공재이지만;) 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사건이었네요.

덧붙여서 침착하게 해야 할 일들과 대처법을 알려주신 경찰공무원분들, 은행 직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