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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24 00:35:51
Name 마샬.D.티치
Subject [일반] [세월호]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네요. 이 속보를 학교에서 아침에 처음 들었고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들었을 때 이런 인재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의 희망과는 다르게 하루가 갈수록 사망자 수만 늘어나고 있는 이 현실이 그저 길었던 악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말하고 싶습니다, 승객분들한테, 특히 학생들한테, 미안하다고...

사건이 발생한 후 언론과 여론의 모든 분노는 처음에 승객을 버리고 도망친 무책임한 선장과 선원들 및 미숙한 대처를 보여준 정부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이후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여준 국가 고위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 엉터리 보도 및 몰상식한 질문을 던진 언론들, 이런 참사가 발생하였음에도 SNS를 통하여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두 번이나 밖은 일반인들,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경의 실수까지... 적절한 초동조치가 있었으면 희생 없이 마무리되었을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그동안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암적인 부분들이 전부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언론, 여론, 그리고 전문가들이 하나 되어 말하기를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인재 그 이상의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졌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모두 알았지만, 그러나 그저 우리의 편리함을 위하여 눈감아왔던 문제들이 마치 오랜 시간 곪은 여드름이 터진 느낌이었습니다. 이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예로 이쯤에서 덮자, 직무유기,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남에 대한 배려 無 등.. 우리의 자그마한 행동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하였다고 생각되네요.

이번 사건 초반에는 저는 그저 모든 책임을 선원들과 선장에게 돌렸습니다. 교신내용과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충분한 골든타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중요한 임무를 망각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은 어떠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을 통하여 전달한 것은 사형선고와 같은 '그 자리에 계속 있어라' 였고 결국 학생들과 교사분들의 생사를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아직도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검은 바다 밑에 신음하였을 분들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검찰로 달려가고 싶지만 가족분들의 상심이 더 크기 때문에 참겠습니다. 꼭 국민과 법의 심판을 받아서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선장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종묘사직 보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였던 왕조였지만 고려의 무신정권은 원나라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강화도로 천도하였고 조선의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평양, 그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갑니다. 하지만 단순히 왕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전쟁 발생 직후 국군의 패전은 승전으로 거짓 방송하고 한강대교를 폭파했고 결국 피하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전부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이준석 선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본인이 살기 위해서 책임져야 할 고귀한 생명들을 뒤로한 채 도망갔습니다. 분노를 억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며칠이 지나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지금까지 항상 책임 있는 행동을 하였는가. 안타깝게도 자신 있게 YES라는 답을 지금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헌병으로 하였습니다. 주 임무는 관련 지역 이동 군용차량 검문검색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부대원들은 처음에는 성실히 임무수행을 하였지만 인근 부대에서 지나친 검문검색으로 불만이 계속 나왔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대원 역시 편안함을 위해 임무를 망각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근무를 섰습니다. 제 군 생활이 끝날 때까지 이와 관련하여 아무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제오늘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만약 저의 과실로 세월호의 아이들과 같은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다면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겁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길거리에서 불씨를 끄지 않고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 남의 눈과 cctv를 피해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돈을 벌기 위해서 양심을 파는 사람들, 지나친 욕설을 하는 사람들,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 등 자신의 무의식적 '관행'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속된다면 제2의 12번 16번 체널이 생길 거고 우리는 적재화물을 계속 묶지 않을 것이고 승객이 몇 명인지도 모를 겁니다.

아직 인생을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저 역시 법적으로 '어른'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번 일주일만큼 성인으로서 부끄러운 때가 없었습니다. 선진국이라 자칭하는 우리나라는 과거와 다르게 명품가방을 살 수 있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진정한 선진국은 한 실종자 가족분의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에 두 끼만 먹더라도 안전불감증에서 해방된 삶을 보장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무책임한 자세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았습니다. 수많은 어린 송아지들을 잃었으니 이제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합니다. 부주의함으로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서 해병대캠프에서 죄 없는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번에는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극단적인 예상을 해보면 더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언론의 말을 항상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거처럼 직무유기를 택한 선원들 가운데 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숨진 故 박지영 씨,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숨진 故 남윤철 선생님과 故  최혜정 선생님, 그리고 이 시간에도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찾기 위해 추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잠수부분들과 같이 아직 아름다운 모습을 행하는 분들이 있어 희망의 끈을 놓기는 시기상조입니다. 아직 '대한민국'호는 완벽히 침몰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수업을 듣기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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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4 08:49
수정 아이콘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라는 생각은 상당수가 하고 있던거 같더군요. 사고당시 저만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었는줄 알았는데...
덕분에 저도 무단횡단을 일삼는 어른놈들에게 훈계질을 하기 시작했네요.
마루가람
14/04/24 10:31
수정 아이콘
대한민국이 배라면 잘못된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다는(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성적표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공동체가 역량을 모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내지 못한다면 희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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