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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7 16:54
와 글쓴이의 의도를 이런 식으로 무참히 폄훼하는 댓글도 존재할 수 있군요.
글쓴이 님이 이리님하고 싸우려고 이 글을 쓴 걸로 보이시나 봅니다.
14/02/27 16:58
말씀 감사합니다. 지식이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전문지식밖에 없어서 여러모로 대비가 됩니다만, 그렇다고 이리님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쉴드도 몇번 치곤 했던.. 반대로 이리님을 싫어하는 분들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변화시켜야 할 의무도 권리도 없지만 이런 제 생각도 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글, 아마 그런 목적으로 글을 쓴것 같네요.
14/02/27 17:00
이게 바로 첫플의 중요성이란 거군요.
개인적으로 호불호를 따지면 불호에 가까운 분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댓글이 필요했나엔 ???가 되네요.
14/02/27 17:02
좋은 글에 나쁜 리플, 그 예시네요. 김성수님의 입장은 이리님의 입장과 '다른' 것이지만, 뀨뀨님의 리플은 그냥 보편적인 기준으로 봐서 '틀렸'어요.
그 차이를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14/02/27 16:43
토론 배틀을 하건 그냥 수필을 쓰건, 정보 전달을 하건,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향기를 남기는 사람(유저)이 좋습니다.
사람은 이성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PGR을 찾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4/02/27 16:56
다른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견만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는 궤변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설령 그 주장이 맞다고 하여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 머리에도 온갖 똥지식들로 가득차있는지 저와 반대되는 다른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보다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한살 두살 나이먹어 가는 이의 바른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4/02/27 17:03
예의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이야기하자면, 차리면 좋고 어떤 의미에서는 좀 당연하다고 해도 될만한 미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더 로우레벨에서, 특히 '소통'의 문제를 놓고 예의를 이야기한다면 필연적으로 '넌 예의가 없어'라는 비판을 에둘러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당장 어제 오늘의 논쟁에서 자주 보인 모습이죠. 이 경우의 '예의'를 미덕의 연장선에서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논리가 궁하고 할 말이 떨어진 사람의 악에 받친 인격 모독의 도구로 예의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커뮤니티에서의 예의는 매우 심플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대해 논하고 평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 당신의 인격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 '당신이 나의 생각에 대해 논하고 평하고 비판하는 것을 나의 인격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겠다'. 양쪽의 쿵짝이 맞을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겠죠.
14/02/27 17:31
레지엔님 댓글은 항상 제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댓댓글 남기기가 힘들기도 합니다만.. 좋은 말씀해주셨으니 적어보자면, 예의라는 단어의 남용은 저도 자주 봐왔습니다.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정당한 것인가? 에 대한 문제는 갸우뚱 하기도 합니다. 감정이 우선시되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존재하고 많은부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오해가 동반하지 않나 싶습니다. 상대방은 나에게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난 그렇게 받아드린것. (물론 레지엔님 말씀처럼 벼랑끝을 느끼고 상대방과 같이 죽기 위한 방도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공격적으로 싸우자는 글을 달고, 누군가는 분명히 내 글에 대한 비판을 싸우자는 것으로 듣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런 글과 아닌글의 명확한 판단이 불가능하고, 감정이 앞서서 판단을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오해가 없으면 얼마나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판단을 하는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차근차근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면 어느정도 해결이 되겠지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니 말이죠. 저는 이런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 같고, 레지엔님은 원인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것 같네요.
14/02/27 17:42
어.. 어려워서 죄송합니다(..)
저는 예'의'라면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진지한 내적 측면이 진지하게 충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상호간의 예의가 잘 갖춰진 모습은 사우나에서 홀딱 벗고 만나서 '저는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습니다'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에피소드에서 빌려왔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의문을 가졌던 부분은 예'의'와 예'절'이 좀 혼용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14/02/27 17:55
정확히 어떤 의도로 그 말을 했을지는 짐작이 안 갑니다만, 저도 사회에서 서로 싸우면서 토론해도 서로가 진심으로 존중을 다 했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던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도 예의를 잘 지킨 범주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맥락과 닿아있는 말씀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그런 토론이 효과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에게 그런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요. 아무래도 저 또한 예의라는 말의 범주가 애매하다고는 느끼긴 했습니다만, 모두에게 일관적이지 않은 감정에도 존중으로 더 많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것을 얘기 했다고 생각해주시면 될것 같습니다.. ^^;
14/02/27 17:45
논리가 궁하고 안 궁하고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의'라는 게 상대방과의 소통(그것이 논쟁이든, 하하호호식의 대화이든, 타협이든 무엇이든)과의 절대적 전제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예의 없는 사람'과 소통하여 나빠지는 기분으로 인한 효용 감소가 소통으로 인한 효용 증가보다 크다면 절대적 전제 조건이 아니라도 지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울러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예의의 '내용'적 부분만을 의미하고, '형식'적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내용에 따라 예의를 평하기로 이해했다손 치더라도, 내용으로 판별하기 어려운 때는 형식이 보조적으로 판단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형식에 의해 내용의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형식에 대한 기준도 필요하겠죠.
14/02/27 17:50
형식에 대한 기준이 들어간다면 예의보다는 예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첫문단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소통의 장애 그 자체라고 봐도 좋겠고요.
14/02/27 17:12
뜻하는바가 다행히 전달이 잘 된것 같습니다. 원래는 댓글 쓸때는 댓댓글로 바로바로 달아드리는데, 막상 글을 써보니 댓댓글 적어드리기가 어렵네요. 잘 읽었다고 감사를 표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14/02/27 17:19
돌이켜보면 제가 오프라인에선 거의 예의범절킹입니다. 소위 말하는 '싸가지'가 저처럼 이쁘게 자리잡힌 사람도 보기 드물지 않을까 마 그런 자뻑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온라인에서 해소..는 훼이크고, 아마도 그렇게 오프라인을 통해 소통하는 것에 대해 지닌 태도와, 온라인을 통해서 소통하는 것을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저는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때문에 오프라인에서도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온라인과 똑같이 행동하고, 온라인에서도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오프라인과 똑같이 행동하지요. 결국 무엇을 위한 소통이냐가 제게는 중요한 문제인것 같습니다. 예의는 그에 부차적으로 따라다니는 것 같군요.
14/02/27 17:27
그렇다고 오프라인에서 '제가 온라인에선 키워킹입니다' 이러시진 않을 것 같은데;
예의와 자뻑은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제가 볼 땐 이리님은 자뻑만 줄이셔도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안 들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리님께서 요즘 피지알에서 보여주시는 정도의 예의 정도면 제게 있어서는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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