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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4/24 20:20:32
Name 페가수스
Subject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스토리 - 17. 염종석의 멈추지않았던 17년간의 도전
염종석. 자신의 오른팔과 롯데의 2번째 우승을 맞바꾼 사나이, 슬라이더의 명인 중 한 사람, 염슬라, 염라대왕, 신인왕,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 1회 수상

하지만 그가 남긴 기록은 너무나도 초라합니다.

통산 93승 133패. 통산 다패부문 3위.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오른팔과 어깨에 남은 끔찍한 수술자국들.

200승을 기록할 줄 알았던 그의 모습은 데뷔시즌에서 있었던 엄청난 혹사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결국 그를 비운의 투수 중 한명으로 남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염종석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히 자신을 갈고닦으며 17년간 - 뛰었던 시즌은 16시즌 - 끝없이 자신과 싸워나갔습니다.

1992년, 한 명의 야구선수가 롯데의 고졸우선지명을 받고 프로무대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1973년 3월 20일생, 양상문과 박동희를 배출해낸 부산고의 투수인 염종석은 계약금 1500만원, 연봉 1000만원을 받고 프로무대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191cm라는 거대한 키와 91kg의 당당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묵직한 직구도 예술이었지만 너무나도 완벽한 슬라이더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데뷔전이었던 vs OB베어즈전에서는 2.2이닝 4실점(2자책점)으로 약간 부진했습니다. -

마운드위에 앳된 얼굴이지만 당당한 체구를 지닌 염종석이 올랐을때, 그리고 그가 정신없이 상대 타자들을 직구와 슬라이더로 윽박지르며 롯데에게 승을 안겨주면서 롯데는 가을야구, 심지어 우승의 가능성까지 환히 보인 상황이었습니다.

팀이 위기에 처할때마다 구원투수로도 등판, 그 상황에서도 상대 타자들을 제대로 윽박지르며 위기를 해소하며 내려온 그.

특히, 2번째 등판이던 vs LG트윈스전에서는 1실점 완투승을 기록하며 3번째로 어린나이에 완투승을 기록했고 6번째 등판에서는 완봉승을 기록하며 쌍방울의 김원형에 이어 2번째로 어린 나이에 완봉승을 기록합니다. - 김원형과의 나이차이는 불과 이틀 -

게다가 그가 처음에 거두었던 9번의 승리는 모두 완투승이었습니다.

일단, 신인으로서 첫 다승왕 그리고 1986년, MBC의 김건우가 세웠던 신인 최다승 기록인 18승을 넘어서는데 도전할 수 있었지만 염종석은 시즌 막판에 관리(?)를 받으며 17승에 머무릅니다.

그러나 염종석은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을 차지하며 선동렬이 7년간 계속 수상해왔던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을 빼앗아옵니다. - 이 해에 선동렬은 건초염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한 상황 -

참고로 선동렬은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을 독식해오는데 이 1992년만 염종석이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승과 구원부문을 동시에 차지한 빙그레의 송진우, 18승을 기록한 해태의 이강철, 팀 선배인 윤학길등을 제치고 투수부문 골든 글러브까지 차지했으며 당연히 신인왕까지 수상했습니다.

이 해에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오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선수는 바로 염종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92 염종석 : 35등판, 22선발, 13완투, 2완봉, 204.2이닝, ERA : 2.33, WHIP : 1.01, 17승(15선발승, 2구원승) 9패 6세이브, 승률 0.654, 피안타율 0.229, 피출루율 0.270, 127삼진

최다 등판 13위, 최다 선발 14위, 최다 완투 3위, 최다 완봉 4위, 최다 이닝 4위, 평균 자책점 1위, WHIP 1위, 다승 3위, 최다 선발승 3위, 최다 구원승 21위, 다패 10위, 세이브 9위, 승률 8위, 피안타율 8위, 피출루율 1위, 탈삼진 6위

염종석이 전천후로 활약하며 마운드를 이끌어준 덕택에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팀 삼성라이온즈를 상대로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투수는 바로 염종석. 염종석은 삼성의 타선을 무득점으로 틀어막으며 승리를 기록합니다.

그 경기에서 염종석은 5피안타, 5삼진, 무사사구, WHIP : 0.56의 완벽투를 선보입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롯데는 해태타이거즈를 만나게 됩니다.

염종석은 1차전에서 윤학길의 승리를 지켜주기 위해 구원등판하지만 박정태의 실책이 터지면서 윤학길의 승리를 날려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해태의 타선을 3이닝동안 철저히 틀어막으며 결국 롯데의 승리를 가져오게 됩니다.

롯데는 2차전에서 패배, 그리고 3차전에서 믿었던 박동희가 무너지는 바람에 위기에 몰리게 됩니다.

결국, 롯데가 믿을 카드는 염종석뿐이었습니다.

4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염종석. 하지만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큰무대에서의 중압감은 전혀 없었고 결국, 6번의 우승을 기록한 해태를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하게 됩니다.

염종석의 완봉투로 한 숨 돌리게 된 롯데는 승부를 5차전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염종석은 선발투수로 나선 윤학길의 리드를 지켜주기 위해 등판, 또다시 3이닝동안 해태의 추격을 봉쇄해버리며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염종석은 이 플레이오프에서 1, 4, 5차전에 등판, 1차전에서 구원승, 4차전에서 완봉승, 5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했고 총 15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점 0.00, WHIP : 0.93, 11삼진을 기록하는 완벽투를 선보입니다. - 1차전에서 1실점하지만 그것은 비자책점입니다. -

그러나...........

염종석의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고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0이닝 투구. 게다가 13번의 완투와 선발, 계투, 마무리를 오가는 정신없는 등판.

선발로 나섰을 때, 그는 평균 115개의 공을 던져야 했습니다. 그나마도 데뷔전에서 2.2이닝만에 강판된 것을 제외하면 경기당 평균 118구. 12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적이 5번, 그 중에서 130구 이상은 3번, 140구 이상 1번, 150구 이상 투구 1번.

연투도 빈번했습니다. 심지어 구원 등판한 다음날 선발로 나선 경우도 2번이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구질 구사비율은 최악이었습니다.

팀 동료였던 윤학길의 경우, 그는 자신이 선발로 등판하면 완투를 할 것을 예상했기에 코너웍으로 맞춰잡으면서 투구수를 줄였고 어깨와 팔꿈치에 무리가 덜 가는 공을 많이 던졌습니다.

그러나 염종석은 직구와 슬라이더의 구사비율이 거의 6 : 4에 가까웠을 정도로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고 - 특히 5회까지는 직구를 많이 던지다가 그 이후 슬라이더의 구사비율을 7할로 높이면서 완투를 한 경기도 있었습니다. -

(슬라이더는 어깨와 팔꿈치를 심하게 갉아 먹는 구질입니다. 선동렬이 1992년에 건초염을 앓았던 이유도 잦은 슬라이더 때문이고 조용준 역시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면서 어깨와 팔꿈치가 심하게 망가져 버렸습니다. - 물론 조용준의 투구폼 자체도 엄청난 부담이었지만.....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종석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4번 등판, 2번의 완봉, 24이닝을 투구한 것입니다.

이미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완봉 후, 그의 오른손 검지손가락의 끝은 차마 보기 힘들정도로 살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 상황속에서도 플레이오프에서 3번 등판, 그리고 5차전에서 구원등판하던 도중 염종석은 팔꿈치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염종석은 한국시리즈를 맞게 된 것입니다.

4차전에 등판하게 된 염종석.

그나마 5회까지는 어찌어찌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상황, 하지만 결국 그의 어깨와 팔꿈치는 더이상 버티지 못했습니다.

6회에 접어들면서 4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너져 버린 염종석.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염종석은 2번 등판, 1번 선발로 등판했지만 6.2이닝동안, ERA : 6.75, WHIP : 1.80, 1승, 4삼진을 기록합니다.

1993년, 염종석은 작년의 염종석이 아니었습니다.

1993 염종석 : 33등판, 22선발, 158.1이닝, ERA : 3.41, WHIP : 1.28, 10승(9선발승, 1구원승) 10패 7세이브, 피안타율 0.284, 피출루율 0.322, 89삼진

선동렬과 맞먹을 것이라던 염종석은 결국 너무나도 커다란 혹사로 주저앉아버린 것입니다.

그나마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2년간 염종석은 조금이나마 어깨와 팔을 쉴 수 있게 됩니다(?) - 기록을 보시면 알겠지만 방위병으로 복무했다고 쉰 것은 아닙니다. -

1994 염종석 : 14등판, 13선발, 102.1이닝, ERA : 3.69, WHIP : 1.31, 4승(3선발승, 1구원승) 8패, 피안타율 0.287, 피출루율 0.327, 42삼진
1995 염종석 : 18등판, 18선발, 127이닝, ERA : 2.98, WHIP : 1.20, 7승(7선발승) 7패, 피안타율 0.257, 피출루율 0.308, 56삼진

1995년, 염종석이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홈 경기에만 등판했으면서도 롯데의 선발진을 어느정도 이끌어 준 까닭에 - 그리고 롯데가 팀 도루 220개를 앞세운 무서운 기동력을 선보였기에 - 롯데는 1992년에 이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됩니다.

롯데자이언츠는 LG트윈스를 4 : 2로 물리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합니다.

염종석은 1경기에 선발로 등판했지만 승패없이 ERA : 6.75, WHIP : 1.35, 5삼진으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선발투수로 나온 선수는 다름아닌 염종석이었습니다.

염종석은 17승을 기록한 OB의 에이스 김상진을 상대로 전혀 주눅이 들지 않으며 오히려 6이닝동안 OB의 타선을 무득점으로 틀어막았습니다. 그리고 1차전 승리투수가 됩니다.

이어 6차전에서 선발로 등판, 롯데의 우승을 결정짓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강판당하고 맙니다. - 솔직히 18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는데 127이닝을 던지며 규정이닝을 넘겼다는 자체가...... 평균을 내보면 대략 7이닝을 던졌다는 소리인데....... -

염종석은 1차전과 6차전에 선발로 등판, 8.2이닝을 던지며 1승 1패, 평균 자책점 5.19, WHIP : 1.62, 6삼진을 기록합니다.

또다시 혹사를 당한 염종석은 결국 1996년을 통째로 쉬게 됩니다.

1997년, 염종석은 1년을 쉬고 다시 롯데의 선발투수로 활동합니다. 하지만 지독한 혹사를 겪으며 예전과 같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지는 못합니다.

1997 염종석 : 23등판, 23선발, 133.2이닝, ERA : 3.84, WHIP : 1.29, 6승(6선발승) 9패, 피안타율 0.251, 피출루율 0.324, 71삼진
1998 염종석 : 27등판, 27선발, 163.2이닝, ERA : 3.90, WHIP : 1.23, 7승(7선발승) 15패, 피안타율 0.245, 피출루율 0.312, 108삼진
1999 염종석 : 18등판, 16선발, 86이닝, ERA : 3.31, WHIP : 1.22, 5승(5선발승) 5패, 피안타율 0.251, 피출루율 0.310, 49삼진

염종석이 혹사로 인해 시들었던 사이, 롯데의 에이스 자리는 주형광과 문동환이 차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또다시 염종석은 한 해를 거의 쉬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1999년에 염종석은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에 구원투수로 등판, 2.1이닝을 던졌지만 1피홈런 포함 2실점(2자책점)으로 패전을 기록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염종석은 평균 자책점 7.71, WHIP : 1.71을 기록합니다.)

2000 염종석 : 6등판, 0선발, 9.2이닝, ERA : 4.66, WHIP : 1.86, 1세이브, 피안타율 0.366, 피출루율 0.409, 8삼진

그렇지만 염종석은 끝없는 수술과 재활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또다시 마운드에 돌아왔습니다.

2001 염종석 : 24등판, 16선발, 89이닝, ERA : 3.94, WHIP : 1.33, 6승(6선발승) 9패, 피안타율 0.261, 피출루율 0.324, 52삼진

그리고 2002년. 롯데가 35승 97패 1무를 기록하며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해. 그 해에 롯데를 이끌어 갔던 투수는 염종석이었습니다.

2002 염종석 : 31등판, 30선발, 159이닝, ERA : 4.36, WHIP : 1.36, 8승(8선발승) 14패, 피안타율 0.286, 피출루율 0.339, 108삼진

이 해에 롯데가 기록했던 35번의 승리 중 8번의 승리가 염종석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도 39승 91패 3무를 기록했던 롯데안에서 염종석은 그나마 롯데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주던 대들보였습니다. - 정말로 쓸데없고 돌맞을 상상이지만 2002년과 2003년에 염종석이 없었다면 롯데는 어떠했을까요? -

2003 염종석 : 24등판, 24선발, 123.2이닝, ERA : 5.17, WHIP : 1.45, 7승(7선발승) 14패, 피안타율 0.282, 피출루율 0.358, 85삼진

그 후로도 몇년간 염종석은 계속해서 롯데의 선발투수로 있었습니다.

2004 염종석 : 21등판, 21선발, 102이닝, ERA : 4.59, WHIP : 1.40, 3승(3선발승) 6패, 피안타율 0.284, 피출루율 0.340, 55삼진
2005 염종석 : 22등판, 20선발, 107.1이닝, ERA : 3.77, WHIP : 1.18, 3승(3선발승) 9패, 피안타율 0.256, 피출루율 0.321, 58삼진
2006 염종석 : 25등판, 25선발, 128.1이닝, ERA : 3.72, WHIP : 1.38, 6승(6선발승) 9패, 피안타율 0.295, 피출루율 0.340, 62삼진
2007 염종석 : 14등판, 14선발, 71이닝, ERA : 4.94, WHIP : 1.48, 4승(4선발승) 8패, 피안타율 0.289, 피출루율 0.346, 30삼진

2007년에 염종석은 초반 3연승을 질주했지만 5월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위와 같은 성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한편, 2007년 6월 24일, vs 삼성라이온즈전에 선발로 등판한 염종석은 이 경기에서 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1000개의 삼진을 기록합니다. - 경기결과는...... 1.2이닝동안 5실점하며 패전투수로 기록이 됩니다. -

2008년, 염종석은 롯데와 재계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서에는 "20경기 이상 등판해 8승이상 거둘시 3000만원을 받지만 8승을 못 거둘 시 은퇴한다" 라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2008 염종석 : 21등판, 0선발, 24.2이닝, ERA : 3.65, WHIP : 1.46, 1패 3홀드, 피안타율 0.283, 피출루율 0.349, 16삼진

한편, 롯데는 2008년에 비밀번호를 끝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합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라이온즈와 대결하지만 0 : 3으로 패배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합니다.

염종석은 1차전에 구원등판해 2이닝동안 무실점으로 삼성을 막았고 3차전에서도 구원등판 0.2이닝동안 삼성의 타선을 막으며 1홀드를 기록합니다.

17년간 롯데에 몸담아왔던 염종석.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가며 끊임없이 나아갔지만 결국 그도 은퇴를 맞게 되었습니다.

2008년 12월 1일, 염종석은 지바 롯데 마린스로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4월 5일, 사직에서 벌어진 롯데의 홈 경기에서 염종석은 공식적인 은퇴식을 갖고 역사의 한 편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상대팀은 히어로즈였고 그는 1992년에 롯데의 우승을 함께 했던 히어로즈의 외야수 전준호의 포옹을 받게 됩니다.

염종석이 선수생활을 하면서 남긴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산 356등판, 291선발(4위), 1791.1이닝(13위), 31완투(30위), 6완봉, 846실점(9위), 748자책점(9위), ERA : 3.76, WHIP : 1.28, 93승(24위), 89선발승(15위), 4구원승, 133패(3위), 3홀드, 14세이브, 승률 0.412, 피안타율 0.268, 피출루율 0.323, 1016삼진(21위), 476피볼넷(27위)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포스트시즌

12등판, 6선발, 51이닝, 19실점, 17자책점, ERA : 3.00, WHIP : 1.20, 5승 2패 1홀드 1세이브, 35삼진, 11피볼넷

올스타전

2등판, 0선발, 2이닝, 0실점, 0자책점, ERA : 0.00, WHIP : 0.50, 0승 0패 0홀드 0세이브, 0삼진, 0피볼넷

혜성과 같이 나타나 선동렬과 맞먹는 투수라는 인정을 받았고 롯데의 2번째 우승을 이끌어낸 투수.

하지만 그 우승은 자신의 오른팔과 맞바꿔야했고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염종석은 남은 선수 생활동안 끝없이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했습니다.

비록 100승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승보다도 더 많은 패를 쌓아야 했지만 그 기록속에는 염종석이라는 한 명의 선수가 17년동안이나 쉬지않고 자신을 괴롭힌 부상과 싸워나가며 멈추지않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했다는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염종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1992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나는 나의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던졌을 것이다."

이러한 투지를 지녔던 선수였기에 염종석은 그 끔찍한 수술과 기나긴 재활에 결코 굴복하지않고 무려 17년동안이나 마운드위에 섰던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윤학길편에서 이런 말로 결론을 냈습니다.

롯데 최고의 에이스는 최동원, 롯데의 영원한 에이스 윤학길.

하지만 이 문장을 수정하려 합니다.

롯데 최고의 에이스는 최동원, 롯데의 영원한 에이스는 윤학길, 롯데의 아련한 추억의 에이스는 염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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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펠라
10/04/24 20:32
수정 아이콘
오..염종석!!

하필 92년에 등장해서 빙그레 팬인 저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선수군요..
어린 마음에 정말 미웠는데... 레전드는 확실하죠..

그나저나 다음편은 상군매직이군요...
10/04/24 20:54
수정 아이콘
염종석 = 불꽃남자 =정대만
Old Trafford
10/04/24 22:10
수정 아이콘
염슬라 92년과 선수생명을 바꿔버렸죠
Daydreamer
10/04/24 22:18
수정 아이콘
바로 그겁니다. 염종석 선수는 92년과 선수생명을 바꿔버렸죠.
그러나 이 양심없는구단 롯데는 그 한해와 올해에 이르는 긴긴기간을 바꿔먹었다는거... 어흑ㅠ

아직도 84년 강병철 감독이 최동원을 불러 했던 얘기가 잊히질 않습니다.

"동원아, 우짜겠노. 여까지 왔는데"

...조정훈에게 진심으로 안경을 씌우고 싶은 요즘입니다. ㅠㅠ
10/04/25 04:40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L = Lawliet
10/04/25 09:40
수정 아이콘
“사직에서 고향 분들의 응원을 업고 마운드에 오르는 기분이 어떤지 아십니까? 저는 사직이 좋습니다. 롯데를 떠나면 야구 그만 해야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등판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그때 그렇게 던진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저는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중

다른팀에서 봤을때는 어떤 선수일지 모르나 롯데를 오랫동안 봐온 팬으로써는
염종석 선수는 정말 짧지만 강한, 오른팔과 92년의 우승을 맞바꾼 위대한 에이스입니다...
여담이지만 염옹은 92 시즌이 끝난후 앞두고 강병철 감독이 수술을 시키려 했으나 구단에서 반대를 했다더군요. 다음 시즌 성적때문에..
만약 그때 수술을 받았더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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