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름이 제게 준 의미는 큽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만질 수 없는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만질 수 있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다만 브루드 워는 공허의 유산보다 UI가 불편해서 플레이하기 힘들고, 사소한 이유로는 UDP 시스템을 위해 봉쥬르 서비스를 이용하니 윈도우 내에 있는 이벤트 뷰어에 뜨는 게 싫어서 자주 플레이하지 않을 뿐, 시간이 흐른 지금도 참 흥미로운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면 늘 같은 답에 당도하게 됩니다.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물론이겠지만, 그것을 배가시켜준 것은 다름 아닌 리그라는 결론입니다.
학창 시절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했기에 그 시기에 흔히 하는 이른바 반항이나 일탈 같은 건 꿈에도 못 꿨던 그때. 평범함과는 이별해야 했던 제 인생에서 놀 거리는 컴퓨터였고 게임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에서 스타크래프트로 이어진 혁명적 역사는 하는 게임이 전부였던 시대에서 보는 게임도 가능했던 시대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임요환 선수의 2 연속 우승을 목도하고 나서 더 이상 환희가 아닌 꿈과 현실로 만들고 싶었던 그 날들을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게는 온게임넷 스타리그라는 무대는 큰 산과도 같았죠. 요환이형과 예선전 현장에서라도 만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는 바람을 품었던.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실제로 뛰는 선수들 때문에만 꿈의 무대가 가능했을까 싶습니다. 리그를 중계했던 캐스터와 해설자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휑했을 것 같습니다. 중계진의 중심에 언제나 계셨던 용준 형님. (이렇게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네이트 스타리그 때야 정일훈 캐스터의 아류라면서 비난이 쇄도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 바보 같은 일이었고 부질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색깔이 다르실 뿐 두 분 모두 멋지시죠. 어쨌든 모두의 우려를 꽤나 빨리 종식시키고 스타리그의 보이스가 되셨던 전용준 캐스터는 나중엔 그의 목소리 없이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티빙 스타리그 이후로 스타크래프트 중계에서 물러나셨죠.
제가 게임과 e스포츠 때문에 눈물 지었던 때가 몇 번 있는데 에버 스타리그 결승전 對 최연성 전때와 슈퍼파이트 1회 대회, 황제 포레버 그리고 2012 티빙 스타리그 결승전 피날레 이렇게 4번이거든요. 그런데 티빙 때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브루드 워의 역사가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훌륭한 중계진이 버티고 계시긴 했지만 갈수록 꼰대화 되어 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첫 정 들인 그 터가 사라지니 같은 걸 하고 놀아도 그 기분이 안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사실 브루드 워로 치러진 리그는 자주 보지 않았습니다. 더 가감 없이 말씀드리면 *[1]OGN GG투게더 때도 반짝하고 말 거란 걸 직감해서 별 감흥이 없었고, ASL도 이제 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1]고 볼멘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 [1] 작자 주 : 지금 열리는 리그들과 선수들, 중계진들의 열정을 낮게 보지 않습니다. 다만 요즘 보게 되지 않았던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한데 이번에 김봉준 선수가 주최하고, 블리자드와 신한금융투자가 후원하는 MPL 시즌 2에 전용준 캐스터가 해변 킴 해설과 함께 합류하신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도 전 반신반의했습니다. 설마 잘하겠어? 예전만 하겠어?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냥 만담 하실 때는 보통 아저씨 Feel인데 분명 어딘가 억지 피우는 듯한 냄새가 나는데 [ex) 학수야!! 같은…] 그런데 재미있네 하고 말이죠. 게다가 게임이 시작되면 정소림 캐스터나 전용준 캐스터 할 것 없이 모두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풍기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번 MPL 시즌 2의 가장 베스트 에피소는 임진묵 선수 대 이제동 선수의 대결이 아니라 전용준 캐스터가 처음 MPL 시즌 2에 오신 회차가 아닌가 싶습니다. 또 4강이 완료되고 난 후 소감을 밝히실 때 저같이 여린 팬은 캐스터 님께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금 울컥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가 재미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그 날의 그 기억을 다시 꺼내어 만지기가 두려웠을 뿐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전용준 캐스터! 그리고 와꾸대장도요
마지막으로 전용준 캐스터 님! 아니 용준이 형! 잠깐 동안 마주치고 만 거라서 기억 못 하시겠지만 안녕하세요. 인터뷰했던 요환동 회원입니다. 되게 조심조심 사려 깊게 대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