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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04/30 19:30:13 |
Name |
PoeticWolf |
Subject |
장인어른 처음 뵙던 날 |
- 반말체 죄송합니다... ㅜㅜ -
아침 8시면 새벽도 아닌데 산자락은 아직 축축하고 차가웠다. 처남은 방치된 채 비를 듬뿍 먹어 한껏 자란 풀 사이로 난 희미한 길의 흔적을 잘도 찾아내면서 이미 저만치 앞장서 걸어갔다. 그 뒤로는 오늘 같이 일하실 아저씨 두 분이 삽과 괭이를 들고 따랐고 내가 바로 그 뒤를 헐레벌떡 쫓아가고 있었다. 돌아보니 장모님과 아내는 아직 이끼가 여기 저기 껴서 미끄러운 돌바닥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었다.
아내라는 존재가 생기면서 식구가 봄철 야산의 풀처럼 갑자기 불어버렸다. 그만큼 오늘 같은 가족 행사가 전에 없이 듬뿍이다. 하지만 달력 빈 칸에 들어가 있는 가족 모임보다 더 부담스러운 건 갑작스러운 ‘가족’이라는 의미 자체다. 아내야 연애 이전부터 봐온 사람이고 지금 앞뒤로 같이 걷고 있는 처남이나 장모님이야 ‘작업’ 범위 안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정이 들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끔 있는 가족 행사 때만 보는 친척들은 얼굴만 겨우 익힌 낯선 사람들이라 ‘내 식구’라는 공식 이름표만으로는 정을 주고 받는 것이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낯을 무척이나 가리는 성격이라 아내의 친척들을 보면 몸 가짐 만큼이나 마음 가짐이 고민이 된다.
게다가 ‘가족’ 자체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더 깊이 하다보면 궁금증은 ‘가족애’ 내지는 ‘사랑’에까지 다다르기 마련이다. 도대체 ‘뭘’ 사랑하는 것일까. 아내를 사랑하고 내 식구들을 사랑하는 건 결국 그들의 껍질이나 피부를 뚫지 못하는 야트막한 감정의 한 종류인 건 아닐까. 피부라는 게 걷혀진다면, 사람의 내부라는 그 끔찍한 광경도 난 사랑할 수 있을까. 아내가 단지 미인이라서 내 인생 전부를 홀딱 약속해버린 걸까. 솔직히 비위가 약해 공포 영화나 슬래쉬 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자신이 없었다. 과학실 인체도를 상상했을 때 당장 아내의 얼굴 피부 밑에 있는 근육의 모습까지 사랑한다고 난 말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의 한계는 겨우 피부의 두께 정도일뿐인 것이었다.
그런 한계를 알게 되면서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한 것 같은 죄스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가족들에게 더 신경을 쓰려고 하고, 오늘과 같은 가족 행사에서는 발걸음을 바삐하는 것으로 그때 그때의 면죄부를 샀다. 돌아가신 장인어른 이장하는 오늘, 고작 과학실 인체도에 사랑을 타협할 정도로 비위가 약한 내가 아침부터 인부 아저씨들의 엉덩이에 코가 닿을 듯이 쫓아가도록 재촉하는 것도 대부분은 그런 맥락이었다.
무덤은 가운데부터, 관이 들어갈 크기 정도로만 파기 시작했다. 면죄부의 유효 기간은 땀의 양과 비례하는 법인데 아저씨들이 삽을 두 자루만 가지고 오는 바람에 난 우두커니 아저씨들이 점점 무덤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덤 파는 일을 맨 정신으로 하기 힘들다는 아저씨들에게 가끔 허연 막걸리 따라드리는 것만이 내가 부지런을 떨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가끔 처남이 뺏어갔다. 나는 자기 아빠의 유골을 그대로 보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내를 산 아래로 먼저 내려 보냄으로서 면죄부의 효력을 늘렸다.
아직 산속이 추웠는데도 아저씨들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흙먼지가 목에 걸리는지 아저씨들은 허연 막걸리 같은 침을 툭툭 뱉기 시작하셨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길이 이리 고됐는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자의 땀이 뚝뚝 혹은 똑똑 죽은 자의 관을 두드렸다. 장인어른의 아랫목이 흙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한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셨어라?”
“한 13년 되았지요.”
“그라요? 그라면 관도 다 썩었어야 하는디?”
그러더니 전화기를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어 난디, 유탈이 다 안 된 거 같은디? ... 어... 어. 대나무? 그라체. 그걸 여서 구하기 힘든디. 자네 좀 올라나? 나가 다시 전화할게.”
아직 장인어른의 몸이 뼈만 남은 상태는 아닌 모양이다. 아저씨는 그럴 땐 식구들이 대나무로 된 칼로 뼈에 아직 붙어 있는 살들을 도려내야 한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셨다. 그리고 두 분은 관을 열기 시작하셨다. 오래된 관이 끼익끼익 소리를 낼 때마다 아직 각오가 안 된 내 마음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난 뭘 보게 될까. 공포 영화의 온갖 장면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아침밥이 위에서 슬슬 역류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돼았으...”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관이 열렸다. 아까 전화를 한 아저씨가 무덤 밖으로 재빨리 나오더니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미리 먹어둔 막걸리도 소용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한참을 무덤 곁으로 가질 못했다. 다른 아저씨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더니 이 정도면 대나무칼 쓸 필요 없다고 했다.
한편 나는 관이 열림과 동시에 무덤 봉우리 위에서 누워 계신 장인을 처음 뵈었다. 유골은 반듯하고 똑바른 자세였다. 아직 갈비뼈가 있는 쪽은 그러나 덜 유탈된 살들이 붙어 있었다. 희한하게도 난 아무렇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코를 틀어막고 뼈를 꺼내고 있었지만 나에겐 넉넉히 젖은 흙냄새만 났다. 아저씨가 신문지를 펴놓고 유골들을 하나하나 올려놓기 시작했다. 처음 뵌 장인어른을 두 손으로 받아야 할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건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는데 처남이 덤덤히 그 뼈들을 받기 시작했다. 토악질을 하던 아저씨가 진정이 됐는지 솔잎을 따다가 우리에게 주었다.
“흙 깨끗이 털어드려. 솔잎으로 닦는 거여.”
허벅지 뼈가 올라오고, 엉치뼈가 올라오고, 척추뼈가 일부 올라오고, 아직 이빨이 그대로 붙어 있는 머리뼈가 올라왔다. 관 뚜껑을 보셨을 때부터 흐느끼기 시작하셨던 장모님이 털썩 주저 앉으시면서 통곡을 시작하셨다.
“아이고, 여기 아들이랑 사위 왔어요. 아들이랑 딸이랑 잘 커서 잘 살고 있는데, 이 좋은 거 좀 보다 가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고생만 하다가 먼저가. 불쌍한 사람. 아이고.”
장모님은 한참을 그렇게 우셨고 나와 처남은 계속해서 솔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영차’ 소리와 함께 아직 살들이 붙어 있는 가슴이 무덤 밖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뼈보다는 조금 징그러웠다. 아저씨들도 이런 경우가 생소한지 가슴을 어떻게 할 지 몰라 일단 한쪽으로 치워놨다.
장인어른은 작은 분이셨다고 했다. 오늘 이렇게 몸을 가까이 뵈니 정말 그랬다. 머리뼈도 작으시고 몸도 작으셨다. 난 구전과 흑백 사진으로만 어렴풋이 알아왔던 내 아내의 역사를 발굴한 고고학자의 기분으로 장인어른의 몸 구석구석을 솔잎으로 닦았다. 아직 남아 있는 이빨을 보며, 아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아빠의 미소를 보았고 머리를 닦으며 그 안에 아직 진공 포장으로 남아 있는 딸에 대한 한 아빠의 기억을 가늠했다. 닦다보니 뼈마디 뼈마디가 이젠 내 식구가 되어버린 이 사람들을 오랜 세월 지탱하셨던 굳은살로 그득했다. 조그만 아내를 태우던 목말이, 작은 장남의 탄생에 기뻐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셨다던 장인어른의 취기가 마디마디에 옹골졌다. 그 다부진 기억이 이 뼈들과 십수 년의 세월에도 덜 유탈된 살들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그 안에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담겨 있는 수많은 사연들에 난 감격스러워졌다. 사위와 장인의 깊은 스킨십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장인어른, 저 사위입니다,를 수도 없이 말했다.
그러다 조용한 장모님이 궁금해져서 돌아보았다. 한쪽으로 치워둔 장인어른의 가슴팍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 멍하니 그 가슴을 보시다가 천천히 손끝과 바닥으로 쓰다듬으셨다. 속으로 헉 소리가 나왔다. 유골을 닦아 드리는 것과 그렇게 쓰다듬는 건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감개무량했지만 난 그렇게 덜 썩은 살을 쓰다듬는 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부셨구나,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두 분, 엄마 아빠이기 전에 부부셨어.
다 닦은 뼈를 주섬주섬 챙겼다. 아저씨들은 무덤을 다시 메웠다. 뼈와 가슴을 각각 다른 상자에 담아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난 장모님이 어르신의 오래된 몸통을 쓰다듬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런데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게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에게 죄책감을 주었던 피부 언저리에 머무르는 내 사랑의 한계가, 어쩐지 한 단계 더 깊숙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장인어른과 남다른 스킨십을 하면서 난 그의 혈육인 아내의 존재에 더 깊이 파고들었던 것일까.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무덤 아래로 내려가는 길과 사뭇 달랐다. 면죄부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0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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