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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02/17 10:40:00 |
Name |
PoeticWolf |
Subject |
거기까지 도대체 언제 가나 |
패닉의 <달팽이>를 듣다보면 그 주인공 달팽이가 과연 바다에 도착할 것인가가 궁금해집니다. 늘 궁금해 하기만하다 오늘은 간단히 달팽이의 이동 속도를 찾아보았습니다. 대략 2mm/s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걸어서 한 바퀴 걷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800년이 넘는답니다. 껍질도 껍질이지만 한 몸에 암수를 다 가지고 있는 거 되게 무거운 일인가보다, 싶습니다.
자웅동체라면 지렁이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지렁이의 이동 속도도 알아보았습니다.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cm/s이라고 합니다. 껍질이 없어서인지 달팽이보다는 꽤나 빠릅니다. 하지만 역시 느리긴 마찬가지입니다. 지구 한 바퀴를 언급하기에 너무나 초라한 속도입니다. 한 몸에 암수를 다 가지고 있는 거 되게 무거운 일인가 싶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현대화 시절부터 다 같이 영차영차하던 정서가 남아서인지, 어디서나 야외 이벤트를 하면 꼭 2인 3각을 하고 함께 발을 맞추는 것에 대한 사회자의 훈훈한 설명을 마무리로 듣는 것이 흔했습니다. 그러나 동행'이니 '함께 호흡하는 것'이니 하는 거창한 공동체 정신을 배우기에는 경주 거리가 너무나 짧았고, 그 거리 안에서 터득할 수 있는 건 어깨동무라는 한 가지 방법과, 옆 사람과 강제로 묶이는 것이 얼마나 걸음을 무겁게 하는가 정도입니다. 같은 단체 경주인 릴레이와 비교해 두 사람이 동시에 함께 가는 거 되게 어리석고 효율이 떨어지는 - 즉 무거운 - 일이구나 싶습니다.
결혼을 하면 나와 너는 없고 부부라는 2인 3각 자웅동체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 아낌과 헌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달팽이나 지렁이처럼, 2인 3각하는 구식 야외 이벤트처럼 두 사람의 존재는 상대 인생의 급브레이크가 되는 걸 발견합니다. 화성인과 금성인이라는 유명한 비유에서 낱낱이 밝혀진 암수의 차이도 있고, 각자의 성장 문화가 껍질처럼 무겁기 때문입니다. 연애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부부는 지옥과 천국을 오갑니다. 자연히 걸음이 흐트러지고, 느려집니다. 초속 2mm는커녕 며칠 연속 '빽도'만 걸립니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보면 두 다른 사람이 함께 거하는 거 되게 버거운 일이구나 싶습니다.
조금만 정치 이야기를 하다보면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서로 날부터 세우고 봅니다. 다른 나라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보수’는 그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려 애쓰는 옹졸한 꼰대들이고, ‘진보’는 빨갱이에 종북 세력입니다.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달팽이 속도까지 찾아본 오늘만큼은 이 두 단어를 안 찾아볼 이유가 없습니다. 찾아보니 보수는 보전하여 지킨다는 뜻이고, 진보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고 높아진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키려는 세력과 앞서가려는 세력이 한 땅에 함께 있으니, 우리나라 정치판도 자웅동체이고 두꺼운 허벅지 가진 두 사람의 2인 3각 경주입니다. 부대끼고, 느립니다. 끈을 푸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대만 없으면 달음박질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한 사회에서 사는 거 되게 무거운 일이구나 싶습니다.
아내와 한 집안에서 며칠 째 냉전 중인지라 도대체 왜 세상 섭리가 이렇게 자웅동체를 양산하는가 궁금합니다. 자웅동체의 장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암수를 찾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수만 남아도 종이 살아남을 확률이 크답니다. 반면 한 몸에 두 가지 성을 다 유지해야 되니 자웅동체가 아닌 생물들보다 생식에 들어가는 에너지 소비가 크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온전히 살아남는 것 자체에 에너지를 소모하려고 다른 에너지 분출구를 최대한 자제하니, 당연히 오래 살아남기에 유리한 구조가 돼버린 것이겠지만, 그만큼 이동 속도라는 값을 치렀구나 싶습니다. 암수가 한 몸에 들어있다는 거, 생존이라는 엄숙한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전 릴레이 경주에 한 번도 참가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주자들이 번갈아가며 자기 몫을 달리는 릴레이는 여러 명이 힘을 합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긴 거리를 정복할 수 있는 단체 경주의 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의 마지막에 하고, 그렇기 때문에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 소수만이 참여하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릴레이 주자가 되지 못했던 건 다름 아니라 느린 발 때문에 대표성을 갖지 못하게 된 때문입니다. 그러나 2인 3각은 싫어도 좋아도 행사장의 모두를 그 짧은 경주 코스나마 밟게 합니다. 겨드랑이와 어깨에 땀이 차 옷이 축축해지더라도 일단 누구라도 한 사람 가깝게 안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몸을 묶어야 하는 이 촌스런 경주를 아무리 무거워도 하는(혹은 했었던)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토라져 있는 아내를 떠올립니다. 마음이 상해 있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같이 가정을 만들어가기도 바쁜 때에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조건 상대가 옳다고 하자니 서운함과 화가 쌓이고, 무조건 반대하자니 유치합니다. 서로가 불완전한 사람인지라 '사랑'이라는 말로는 모든 걸 다 덮어버리고 해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내와 저의 '자웅동체'는 달팽이나 지렁이의 생존 방법만큼이나 절실합니다.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나 화나는 마음이 생겨도, 2인 3각의 끈을 풀어버리는 건 지렁이 몸을 암과 수로 갈라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비싼 발목 끈을 묶으면서 자웅동체를 우리의 생존 방법으로 삼기를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어깨동무한 채로 걸어오면서, 아직도 절뚝이지만, 어쩐지 서로의 무게에서 희미한 버팀목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싸운 채 보내는 시간이 괴롭고 지옥 같지만, 그래도 버팀목을 발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무거운 걸음에도 다 이유가 있겠지 싶습니다.
한국이란 나라도 화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가정 하나 화목하게 유지시키지 못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달팽이 걸음에 바다처럼 멉니다. 40년 언론인으로 살아오신 어떤 작은 언론사의 사장님께서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보수, 남을 대하는 태도는 진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 또한 오랜 공부와 싸움 끝에서야 겨우 나온, 이상의 자웅동체와 같은 결론입니다. 지금 이렇게 양편으로 갈라서 아옹다옹하는 모습, 그런 공부의 과정이겠거니 합니다. 안 그래도 똑똑하기로 유명한 한국 사람들, 그 공부를 통해 무엇을 지킬 것인지 명확히 하고나면 무엇을 향상시켜야 할지를 분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정치가 몇 년씩 느린 걸음에 뒷걸음만 무겁게 딛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겠지 싶습니다.
그 달팽이가 바다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 않습니다. 1초에 2mm 남짓 간다는데, 어떤 외부의 도움 없이는 바다에 못 갈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그 달팽이는 한 가수에게 느릿느릿 멋진 영감을 주었고, 지렁이는 지금도 느릿느릿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세대의 2인 3각을 프로그램 안에 넣은 레크레이션 강사 때문에 어떤 이는 평소 좋아하던 누군가와 어깨동무라도 할 수 있거나, 평소 싫어하던 사람과 의외로 호흡이 잘 맞는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엊그제부터 말 그대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저희 부부 역시 상대의 약한 부분이나 민감한 부분을 이제 머리뿐 아니라 마음과 몸으로 아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겠죠. 맑시즘에 대해 오랜 시간 철저하게 분석하고 논쟁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영국은 마르크스를 추방하지 않고도 맑시즘의 도래를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의 지금 암수합치 과정도 보약이 되리라, 싶습니다. 이미 충분히 가속이 붙은 상태에, 속도쯤 잠깐 포기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정작 속력을 내야 할, 아내한테 쓸 반성문마저 느릿느릿해 큰일입니다.
-바람 공장-
바람 공장 주인이 또 날아들었다.
틈이 생긴 모든 문 뒤로, 창문 뒤로 날아와
새 공장을 차리고
윙윙 찬 바람을 뽑아내기 시작할 때
먹다 남은 숭늉 한 잔에
수고한다는 메마른 말 한 숟갈 섞어
드르륵 문틈을 벌리면
미련 없이 윙윙 소리까지 챙겨
노크 없이 문을 열어버린 날 지나친다.
바로 문 뒤에 답을 두고
난 여전히 바람의 근원이 궁금하다.
너와 나의 틈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윙윙하는 소리와 시린 바람이
어디에서부터 나온 건지도 여전히 궁금하다.
또 다시 바람 공장장 문 뒤로 날아들면
빈 손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련다.
틈 사이를 조용히 들여다보기만 하련다.
* 어제 급한 ‘놀아줘’ 요청에 기꺼이 시간 내주신 열두 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니터에 절하고 인증샷 올리고 싶었는데, 제가 팬티바람이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흑. 유부남과 놀아주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 그나저나 참 많이도 아내를 주인공 삼아 포스팅을 했었나봅니다. 싸우고 나니 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슨 누구를 위한 마무린가...)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2-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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