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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12/13 12:23:47 |
Name |
PoeticWolf |
Subject |
손님 맞이 |
1.
손님이 옵니다. 귀한 손님입니다. 그냥 저희 집에 오신다는 것만으로 귀합니다. 아침부터 일어나 청소를 합니다. 첫 인상을 만들 현관을 정리합니다. 겨울 외투를 걸 작은 방 옷걸이를 비웁니다. 손부터 씻으실지 몰라 변기통이며 세면대를 닦아놓습니다. 집을 둘러보다 불쾌한 냄새를 맡게 될까 창문을 엽니다. 창문을 연 김에 청소를 시작합니다. 베란다로 나가 빨래를 돌립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이 평화롭습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조금 있으면 밥솥이 쌀 냄새 담뿍 밴 김을 내뿜을 겁니다. 도마가 송송 소리 내는가 싶더니 어느 덧 냄비에서 자글자글하는 소리가 납니다. 시간이 잘도 갑니다.
2.
손님이 집 근처 역에 도착합니다. 들어오는 길이 복잡해 걱정이 됩니다. 최대한 길을 자세히 가르쳐줍니다. 한 번에 길을 다 말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구역 구역으로 오는 길을 나눠서 한 구역이 끝날 때마다 전화를 달라고 합니다. 손님은 버스에서 내려서 전화, 큰 마트를 찾고 나서 전화, 골목 초입에서 전화, 약국 앞에서 전화를 합니다. 전화가 올 때마다 마음이 더 조급해집니다. 음식이 잘 익었나, 혹시 어디 먼지라도 붙어 있나 둘러봅니다. 아무리 확인을 해도 아쉽고, 아무리 점검을 해도 마지막이란 게 없습니다. 손님이 문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마지막입니다. 참지 못하고 문밖으로 나가 멀리서 오고 있는 손님을 확인합니다. 손을 흔듭니다. 설렙니다.
3.
순식간에 좁은 현관이 복작복작합니다. 잠깐 밖에 있었을 뿐인데, 안으로 들어오니 안경에 김이 서립니다. 손님 코 끝과 양 볼도 얼어서 발그레합니다. 다행이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집안이 따듯합니다. 특히 다 익은 음식들이 향 좋은 온기를 채워놓았습니다. 손님이 외투를 벗어 식탁 의자에 걸어놓습니다. 조용히 집어 들어 아까 비워둔 옷걸이에 반듯이 겁니다. 목도리며 장갑도 겁니다. 작은 옷걸이가 복작복작합니다. 집이 아늑하다며, 손님이 거실에 자리를 잡습니다. 상을 차립니다. 음식을 내옵니다. 한 식구 늘었을 뿐인데 좁은 식탁이 복작복작해집니다. 어느 덧 창문 밖 운동장에도 아이들이 몰립니다. 한낮의 세상은 집안이나 밖이나 생명이 가득합니다.
4.
그러고 보니 무슨 음식이 준비되었는지 미리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향에 약간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습니다. 집에서 제일 큰 냄비가 뚜껑이 닫힌 채 식탁 한 가운데 자리 잡습니다. 궁금하지만 미리 열지 않습니다. 맛있는 김이 먼저 새버리면 안 됩니다. 아내가 와서 한 켠에 앉기를 기다립니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 초보 주부인데, 손님이 귀한 줄 아는 마음은 같은가 봅니다. 손님도 시장기를 얼른 다스리고 싶은 눈치입니다. 준비가 완료되고 아내가 큰 냄비의 뚜껑을 엽니다. 식사가 시작됩니다. 아내는 뚜껑을 바닥에 뒤집어 놓습니다. 소매를 걷습니다. 그리고 불쑥 냄비 안으로 두 팔을 집어넣습니다.
5.
아내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커다란 물고기였습니다. 처음 보는 종류입니다. 그게 뭐야, 라고 묻습니다. 잉어,라고 답을 합니다. 잉어라고? 당신 비린 거 못 먹잖아? 되묻기도 전에 아내가 살을 한 입 베어 뭅니다. 두 입, 세 입 계속 뜯습니다. 그럴 때마다 육즙이 뚝뚝 떨어집니다. 너무 맛있게 먹어 손님과 전 그냥 구경만 합니다. 같이 먹자는 말도 하지 못합니다. 어허, 웃음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 합니다. 커다란 잉어가 어느 덧 반도 남지 않습니다. 냄비를 들여다보니 잉어는 지금 아내 손에 있는 놈 한 마리뿐입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아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잉어에 몰두합니다. 손님은 당연하다는 듯 다른 반찬으로 밥을 먹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 거 같습니다.
6.
웅장한 알람 소리에 잠이 깹니다. 암막 커튼 사이로 아침 빛이 새고 있습니다. 잉어를 맛있게 먹던 아내는 옆에서 뒤척입니다. 알람 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모양입니다. 여느 아침입니다. 잉어의 비릿한 향과 갓 지은 쌀밥의 배부른 냄새는 없고 겨울 냉기가 맨살에 닿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꿈 이야기를 합니다. 꿈에서는 당신 먹성이 좋더라. 뭘 먹었는데? 잉어. 그것도 아주 큰 놈. 손으로 다 발라 먹데. 아내가 젓가락질을 멈춥니다. 잉어? 되묻습니다. 응, 잉어. 아내는 갸웃거리며, 잉어는 태몽이잖아, 라고 합니다. 눈이 마주치고 식탁이 조용해집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이구동성입니다.
7.
점심 시간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옵니다. 테스트 해봤는데 아니라고 합니다. 전화를 했더니 안심하셔, 라고 너털 웃습니다. 그랬구나, 알겠어, 답을 하고 끊습니다. 오전 내내 두근거리던 것이 사실 설렘이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건 반가운 일 아니겠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꿈에서 본 아내 역시 손님 맞이에 스스로 분주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그 손님을 깨끗하고 푸근하게 맞이하려고 벌써 좋은 음식 챙겨먹고, 좋은 책 읽고, 좋은 음악을 듣는 아내를 알기 때문입니다. 언제 ‘갈께요’라고 할지 모르는 그 손님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마음은 그야말로 이구동성이기 때문입니다.
8.
도시의 공기가 너무 탁합니다. 점점 노동의 강도가 세지고 있습니다. 예비 엄마들의 몸은 피곤하고 약해집니다. 뭐든 빽빽한 이곳에서는 쉴 곳이 없습니다. 손님이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자연히 조산이 늘고 유산이 증가합니다. 새로운 생명을 손님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부부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함께 손님 자리를 마련하고, 쓸고 닦는 부산을 떨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손님에게 많은 이들이 거절을 당하는 건 이 도시가 그런 손님 맞이에 다 같이 동참하고 있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손님을 기다리다보면 남의 손님이 소중한 줄 알게 됩니다. 남의 손님이 소중하면, 내가 하루 동안 더럽힌 흔적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실질적인 기대가 나의 준비가 됩니다. 그렇게, 아직 손님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은 남의 손 귀하게 여기며, 내 손님 맞을 연습을 합니다.
9.
손님을 기대합니다. 귀한 손님입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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